눈이 내리는 시골은 여행의 순간과 같다.
이번 겨울에 몇 번이고 눈이 내렸지만 이렇게 많이 온게 얼마만인지 넋 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조금 전, 입구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조금 쓸어봤지만 금세 다시 쌓여 그냥 두기로 한 거다.
눈이 내리는 날은 비교적 춥지 않다. 그래서 밖에서 눈구경을 해보려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였다. 강화도에서 좋아하는 차완이라는 찻집에서 판매하는 블렌딩차인데,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 이국적이고 무거운 향을 품고 있어 겨울과 잘 어울린다.
눈이 내리니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하늘과 눈이 쌓여 집의 모서리, 나뭇가지와 잎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자연이 넓은 시골은 언제나 전체적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하나씩 세세하게 보이는 것이 새롭다. 마치 처음 가는 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꿈꿔왔던 여행과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에서 눈 때문에 고립되고 돌아가야 할 날짜에 비행기를 놓치는 여행. 랜드마크 관광지 위주의 여행도 좋아하지만 조금은 이색적인 상황을 경험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처럼 과거로 향하는 마차를 파리의 팡테옹 뒷골목에서 기다려보는 것,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키리코 그림처럼 초현실적으로 도시 사진 찍는 것, 제주도에서 돌고래가 나올 때까지 바다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 후지산을 마주하는 숙소를 잡아 몇 날 며칠을 맑은 하늘의 후지산 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시골의 오늘이 나에겐 여행이다. 또 집 앞의 눈을 치우느라 분주한 동네주민들과는 달리 고립된 척,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이곳의 여행자다.
2023.12.30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