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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0. 2024

마당 전구의 죽음

"그는 갔지만 내 마당은 여전히 밝습니다"

마을 할아버지의 죽음


어제 새벽에도 보았다.


경운기 끌고 논물 보러 가시던 추레한 뒷모습을…


뒷집 할아버지가 오늘 새벽 돌아가셨다 한다.


마을 방송이 마당에 안개처럼 자욱하다.     


그가 돌아가신 것을 애도하거나, 또는 그의 죽음을 축복할 사람들이 있다면 병원으로 모이라 한다.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마당에 꼼짝없이 갇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축복하는 줄에 서서 축하의 순서를 기다린다.


죽어 없어지신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돌아갔을 거라 믿으며...


뒷집 할아버지의 영혼은 본래로 돌아가고 빌려 쓰던 몸뚱이 하나 흙이 되는 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당에 꽃을 심는다.



마당 전구의 죽음



하마터면 그냥 보낼 뻔했다.


추모의 묵념도 없이 아무렇게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쓰레기봉지에 담을 뻔했다.


나의 마당을 밝히고 발등을 덥히던 수없는 나날의 외등 하나, 아무렇지 않게 보낼 뻔했다.


마당의 밤을 밝혀주던 전등 하나가 저녁식사도 마저 끝내지 못하고 갑자기 죽었다.


필라멘트가 끊어진 것을 보니 너무 오래 몸을 혹사시킨 가 보다.


전구의 숨줄은 필라멘트다.


버리려다 멈칫했다.


그동안 나의 밤을 빛내준 고마움에 이미 싸늘히 식은 빛덩이를 신전에 올리고 추모의 묵념을 드린다.

     

"애쓰지 마! 그대 사명은 여기까지고 다른 그대가 와서 나의 밤을 여전히 밝혀줄 터이니 더 이상 애쓰지 마! 네가 흙으로 돌아간다고 태초의 불빛은 없어지지는 않을 터이니 걱정도 하지 마!"


전등이 정말 내 걱정을 하며 떠났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기도했다.




할아버지도 전구도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래도 논에서 벼는 여전히 자라고, 마당의 불빛은 어제와 다름없이 밝다.


갔다고 간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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