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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1. 2024

 나만 자주 틀립니다

분별심을 내는 순간 괴로움!

나의 마당에는 화초가 아닌 잡초도 꽃을 피우고, 조경수가 아닌 잡목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삽니다. 야생하는 것들이라 벌레도 끼지 않고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 자랍니다.


잔디밭에서는 토끼풀이 자라고 질경이, 민들레도 같이 큽니다. 쑥부쟁이도 있는데, 가을에 꽃이 좋아 그대로 둡니다. 남들은 잡초라 하지만 생활에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마당에 풀은 왜 안 뽑고 그대로 두느냐?”라고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기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니 당장 뽑아!”라는 말투입니다. 정원 가꾸기나 농사짓기에 경험 있는 분들입니다.


이건 화초고 저건 잡초란 것, 이건 조경수고 저건 잡목이란 것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이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내 마당에서 자라는 풀이 눈에 잘 띄고 그대로 두고 사는 것에 신경이 많이 쓰일 겁니다. 마당에는 화초를 심고 조경수를 심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신념이 된 사람들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습니다.

     

마당에 곡식을 심어 양식으로 쓸 요량 아니라면 잡초가 자다고 탈 날 것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리스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깨 타작마당으로 쓸 것도 아니고 고추 말리기를 할 마당도 아닙니다.


사당패를 불러 한바탕 푸닥거리를 할 것도 아니고, 멍석 깔고 동네잔치를 열 마당도 아닙니다.

     

딱히 보기 싫고 생활에 걸리적거리는 것들만 치우고 가만히 놓아두면 수시로 꽃도 볼 수 있습니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네 잎 클로버 찾기 놀이도 합니다.


찔레꽃을 모르면 한국 봄의 서정을 모릅니다. 싸리꽃 향기를 맡아보지 않았다면 산촌의 여름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쑥부쟁이를 모른다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가을을 느껴보지 못한 것입니다.


놓아두면 마당에서 그런 계절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 젊은 친구들이 카페에 왔다 마당을 나서며 “와! 이 초록 초록! 제주도에 온 것 같아!” 환호합니다. 깊은 산길을 걷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들이 중구난방인 마당에서 환호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화초인지 풀인지, 정원수인지 잡목인지를 분별할 정도로 식물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보이는 대로 좋은 겁니다.


또 하나는 화초인지 풀인지, 정원수인지 잡목인지를 알면서도 그런 분별심을 아예 일으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실력을 갖춘 사들입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기 눈을 가지고 있는 고수들입니다.


이것은 꽃이고 이것은 잡초라고 분별하는 순간, 좋고 나쁜 것, 옳고 그른 것, 착하고 악한 것 등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깁니다. 굳어지면 신념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불편합니다. 뜯어고쳐야 하고 설득하거나 싸워야 합니다. 폭력이 됩니다.


분별심이 나의 괴로움이고 남에게 강요하면 폭력이 되고 죄가 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며 자신의 것만 옳다 주장하는 반쪽 인생들도 많습니다. 편향된 신념으로 무장한 무리가 따릅니다. 아예 가짜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진짜라 속이는 사기꾼들도 꼬입니다. 그러한 신념의 무리를 이용하려는 한 급 높은 무리들도 있습니다.

    

확증편향된 신념은 폭력이 됩니다. 그런 소식들로 세상은 늘 시끄럽습니다.

     

살아보니 옳고 틀렸다를 가를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의 마당에서는 화초도 옳고 풀도 옳습니다. 정원수도 옳고 잡목도 옳습니다.     


나만 자주 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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