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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3. 2024

고비와 잔도

잊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며 고만고만 살아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산간마을, 대관령에 조그만 집 짓는 일을 시작했다.


공예작업 하는 사람들이나, 집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당한 공간은 어떤 게 좋을까를 고민하다 내린 답이다. 마당에서 살아본 경험치로 고심한 공간이다.

     

대관령은 리조트와 스키장이 있는 유명 휴양지다. 겨울철 스키 시즌이면 국내는 물론, 동남아 등 많은 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조그만 산마을은 다국적 언어의 향연을 펼친다.


2018 동계올림픽의 메인스타디움이 있던, 올림픽의 마을이기도 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이곳서 열렸다. 강원도(지금은 강원특별자치도다) 평창군 대관령면이다.

     

요즘은 겨울보다는 여름 휴양지로 뜨는 것 같다. 열대야가 없고 모기가 없다. 그래서 더위를 피해 오는 휴양객들이 많다.


대관령은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올해는 겨울 끝자락에서 엄청 많은 눈이 내렸다. 이곳서 오십 년 넘게 산 사람조차, 올처럼 내린 눈은 평생 처음 본 경험이었다 한다.


“여기 살면서 포클레인으로 눈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에요! 집 밖을 못 나가고 갇혀 산 사람들도 많아요!”


'집 밖을 못 나가고 갇혀 사는 고립의 행복'은 작업을 하거나 집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암튼, 그곳에 작업하고 집필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생각해 시작한 집짓기 공사다.


하루 ‘노가다’를 끝내고 대관령면소재지인 횡계의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한다.

     

대부분의 면소재지에는 저녁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 초저녁이면 문을 닫고 불을 꺼 암흑천지가 된다. 하지만 대관령 횡계는 다르다. 밥집도 많고 술집도 많다.

     

같이 일하던 노가다꾼들과 이 얘기 저 얘기하던 중 어떤 이가 현장 공사하는 일이 참 힘들고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지긋한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일을 다니시는 목수 형님이 화제를 바꾼다.

     

“TV에 보면 세계테마기행인가? 뭐 그런 거 있잖아! 거기에 보면 벼랑으로 길을 만들어 놓은 게 있던데... 그 공사를 인간들이 했을까? 참 믿기지 않아? 정말 인간이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아마 여러 명 죽었을 거야.”     


“형님, 그걸 잔도라 해요.”     


“아~ 그래?”     


목수형님은 나와 제주도에서 했던 잔도 얘기를 잊었나 보다. 다 그렇게 잊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며 사는 거다.


살다 보면 맺히는 것도 있고 흘러가는 것도 있다. 맺히기만 한다면 속 터져 죽을 거다. 목수형님처럼 힘든 일을 할 때는 흘려서 잊히는 것들도 많아야 살 수 있다.


몇 해 전 제주도에 일이 있어 목수형님을 불러 같이 갔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한 겨울인데 제주도는 유채꽃밭이었다.

     

“형님, 제주도 봄 구경이나 가시죠?”


“좋지, 한번 가보자고.”


그렇게 떠난 제주 일이었는데 봄비 때문에 '고립의 여행'이 됐다.


빌려 쓰는 집에 둘이 앉아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신다.


데면 데면 나누었던 이야기를 거두어 썼던 시다.




고비와 잔도


빌려 쓰는 집 양철지붕에 오후 내내 댕그랑 비가 내리는 날


칠십 평생 망치 들고 남의 집만 짓다 정작 내 집 지을 짬이 없었다는 목수형님과 앉아 식은 막걸리를 마시다

마당에 매화처럼 굴러다니는 빗방울과 간간이 돌 틈을 넘는 비린 파도에 목이 말라 낡은 양은 잔을 또 채우고

눈이 마주치면 먼 산처럼 앉아 고비에 갈 거라고 돈 벌면 그 사막에 꼭 가 볼 거라고 말하는 남의 집만 짓다 늙은 목수 형님


"고비에서 낙타 타고 싶어서요?"


"고비가 정말 고비인지 보고 싶어서!"


"고비가 고비지 고사리겠어요?"


"그 고비가 내 고비 정도 되나 보고 싶어서!"     


비는 점점이 유채꽃이다

들판 가득 출렁인다     


"그 땅 어디쯤에는 잔도가 있다지요?"


"벼랑 끝으로 난 길 말인가?"


"저는요 그 길을 걸어보고 싶어요. 그 벼랑이 내 벼랑쯤 되나 보고 싶어서!"


오늘 밤엔 아득함 쪽으로 길을 낸 비 오는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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