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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7. 2024

스님이 '땡중' 되는 순간

자기 좋아하는 말만 들으려는 사람들과 세상

주말에만 겨우 내려오던 이웃이 요즘 자주 보입니다. 아마 좋은 계절이라 그럴 겁니다. 마당 꽃나무들이 한참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나들도 어느새 초록잎을 달고 있고요. 보기가 참 좋습니다.

   

아니면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를 준비 중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사업하기 정말 힘들다고 은연중에 몇 번을 얘기했거든요. 예전 같지 않다고…

 

내려와 있을 때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이따금 부릅니다. 매번 뺄 수 없어 이따금 갑니다. 삼겹살 굽고 소주 내 오고…


그런 게 입맛에 잘 안 맞아요. 난 막걸리에 두부나 나물, 부침개 같은 것을 좋아해 김치만 들고 깨작거립니다. 잘 차려 놓은 주인 입장에서는 그러고 있는 모습이 당연 불편할 수도 있을 거고, 신경도 쓰일 겁니다. 불쾌할 수도 있고요. 잘 먹어줘야 하는데…


안 먹는다고 이따금 구박도 해요. 그럼 죄 없는 고기 토막만 들었다 놨다 몇 번 하다 취해 버립니다.


몇 번 그랬더니 요즘은 오라 해 가면 두부도 구워놓고 전도 붙여놓고 그래요. 나 좋아한다고요. 저야 고맙지요.


오랜만에 만나면 묻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요. 다들 그러지 않나요? 습관적으로 말입니다.


"요즘 잘 지내?" "요즘 뭐 하고 살아?" "요즘 뭐 하며 지내?"


전화상으로 그러면 "그냥 잘 살고 있어!"라 대답하고 끝낼터인데 같이 앉아 있으니 대답이 구체화됩니다. 이런 것도 하고 이런 공부도 하고 이런 생각도 하고 뭐 그렇게요.


사실 같이 앉아 술을 마셔보면 딱히 할 얘기가 없잖아요. 어떤 목적이 있거나 주제가 정해져 있는 거라면 열심히 설명하고 듣고 반박하며 침을 튀기겠지만, 그런 게 아니고 "편하게 밥이나 먹자!"라고 앉으면 말부터 편하지 않습니다. 침묵이 민망해 그런 저런 말들만 쭈뼛거리며 주섬거리게 됩니다.


그러다 간혹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이건 재미있겠다 생각하고 아는 체를 합니다.


하루는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더워져 온도가 올라가고, 온난화로 이상기온이 생기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길래, 어디서 본 것이 생각 나 아는 체를 하게 됐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는 흥미로운 얘기였거든요.

     

“나사인지 어딘지 기억은 안 나는데요. 거기서 남극의 얼음을 뚫어 연구를 해보니까요. 지구는 약 30만 년 주기로 빙하기가 오고,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를 간빙기라 하고, 그 간빙기 사이에 인간이 생겨나 약 5만 년을 살다 빙하기에 사라지고, 다시 간빙기 때 인류가 생겨나 살고, 그래서 지구는 30만 년을 주기로 더워졌다 추워졌다를 반복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생인류는 그 5만 년 간빙기에 나타나 살고 있다는 겁니다. 지구를 사계절로 따지면 겨울과 봄을 지나 이제 한 여름으로 들어가는 시기라 하던데요. 그러니 환경오염도 문제지만 우주 질서가 원래 그렇게 돼 있는가 봐요.”


뭐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다 보면 벌써 상대방은 인상 찡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복잡한 얘기 하지 말라는 표정입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십니다. 갑자기 자신이 믿는 종교 얘기를 하길래 내가 그랬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카페에 단골로 오는 노스님이 계시거든. 이분이 소싯적에 어느 유명한 절 독방에서 생식만 하며 100일 기도를 하던 중 영양실조인지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죽었다 장례를 치르는 날 다시 살아났다고 하더라고. 그 절에서는 유명한 얘기래.”

     

나는 흥미롭게 들은 이야기를 끝까지 하려고 말을 꺼냈는데 듣던 상대가 그럽니다.     


“야! 그런 일이 어떻게 있어! 똘중이 얼마나 말을 잘했으면 네가 그걸 다 믿을까?”


공부 많이 하고 인품도 괜찮고 인지도도 있는 스님이신데, 친구는 본 적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이 바로 '땡중'을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이 얘기가 먹히면 임사체험이나 사후세계니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초장에 끝장이 납니다. 그냥 쓰잘데기 없이 술 먹는 얘기만 하다 취합니다.




여기 저기 쫓아다니던 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는 횟수를 줄였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합니다. 산속에서 도를 닦는 중이니 언제 도통해 하산하면 그때 보자고 농담을 합니다.


매번 똑같은 얼굴들이 모여 아무 말 대잔치로 떠듭니다. 하루는 역사 얘기가 나오길래, 환단고기란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우리 상고사가 어쩌고 하다 보니 누가 그럽니다.


“그런 골치 아픈 얘기는 하지 말고, 재미있는 얘기 좀 해봐!”     


그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는 ‘빠따’ 잘 치던 개고기 선생 얘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 아는 것까지만 들으려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그렇게 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기울고, 편향적이고, 진실인지 사실인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선동돼 몰려다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럽니다. 그러고 있는 나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도,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면, 몇 초의 참을성도 없이 눈을 돌려 버립니다.


세상이나 나나 점점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 무서울 때가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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