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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8. 2024

정말 작은 것! 정말 큰 것!

"작고 작아져 진액만 남아야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휴일을 맞아 조그만 주말주택을 지었다는 지인의 집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가는 길에 다른 일까지 보려 욕심을 냈는데 파투가 났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해 시간이 어정쩡합니다. 식사 준비하는 주인장 옆에서 도와줄 것 없냐고 하니, 집 이름이나 하나 써 놓으라 합니다.


일도 못 하는 것이 옆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한 것이겠죠. 눈치를 채고, 시키는 것이나 하자며 어떻게 쓸까를 고민했습니다.


준비해 간 것은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작정하고 집 이 써 달라며 주인이 뭘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니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얼렁뚱땅 급조하는 것은 이미 경지를 넘은 수준이라 마침 창고에 집 짓다 남은 판자와 페인트가 보였습니다. 나무판자를 닦고 모양 내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 당호를 하나 써주었습니다.

     



얼마 후 지인의 집에 친구 부부가 다니러 왔습니다. 집 이마에 붙어 있는 글씨에 꽂혀 “무슨 뜻이냐? 누가 썼냐?” 물었고, “뜻은 이러저러하고 어디에 사는 깡촌 놈이 써주고 갔다” 뭐 그랬다 합니다.


그래서 “나도 하나 부탁하면 안 되겠냐?”라고 해, 지인이 그 친구 부부를 굳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친구 부부는 남녘 어디에 살고 있는데 교사로 퇴직했다 합니다. 취미로 도자기를 만들어 왔는데, 퇴직 후 좀 더 배우고 싶어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 도자기 전공을 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나 봅니다. 퇴직하고 취미로 하던 도자기를 전문적으로 해 보려고 대학에 진학해 다시 도자기를 공부하고….


맘대로 쓰고 그리고 찍는 내가 잠시 부끄러웠습니다.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글 쓰기도 그렇고, 글씨 쓰는 것도 내 맘대로입니다. 한 때는 싸구려 사진기를 들고 사진 찍는다 돌아다녔는데 그것도 내 식대로 찍었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어용인가 봅니다.

     

지인의 친구는 퇴직 후, 다시 대학 졸업 후, 공방을 차렸습니다. 제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공방에 붙일 이름이 필요하니 하나 써달라는 겁니다.     


“족보 없는 글씨인데…, 공방에 걸만할지 모르겠네요.”

     

나의 부끄러움에는 아랑곳 않고, 꼭 나뭇가지로 써달라 합니다.     


정한 이름이 있느냐 물었더니 없다고 합니다. 알아서 하나 만들어 써 달랍니다.


부탁 받고 남에 일 하는 입장에서는 “알아서 잘하라!”는 말이 가장 어렵고 무섭습니다. 아무리 알아서 잘해도 상대가 알아서 잘한 것이 아니면 불합격입니다. 다시 해야 합니다. 손자병법에도 나오지 않는 최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진법입니다.


고인이 된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경영 스타일이 그랬다 합니다.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라!’며 각을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잘해!’라는 지시만 내리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실력을 지켜봤다 합니다. 제대로 알고 하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 억이 있습니다.

 

암튼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알아서 잘해야 할 입장이 됐습니다.


일단 이름부터 지어야 쓰든지 말든지 했기 때문에 “소소(小少)공방은 어떠냐?”라고 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화려하고 폼 나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겁니다. 나이도 들었는데 작고 적고 어쩌고 하면 더 초라해질 것 같다는 겁니다.

     

진작에 그런 가이드라인이라도 줄 것이지 알아서 하라 해 놓고 열심히 알아서 했더니만…     


그래서 ‘알아서 하라!’는 진법은 절대 고수들만 펼친다 한 겁니다. 제갈공명도 뚫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땐 무대뽀(어원이 일본어라는데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고백하지만 전 친일파가 아닙니다. 혹 불편하신 분이 계시다면 어떻게든 튀어서 구독자 좀 늘려보려 피나는 노력 중인 걸로 여기시고 어여삐 봐주세요.^^)로 정면돌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방을 날려야 합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가장 작고 적은 것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한 우주도 실제로는 아주 작고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됐습니다. 138억 년 전 점이 폭발해 우주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커지고 있다 합니다. 빅뱅이론이고 팽창이론입니다. 쓸데없는 것 버리고 버리고, 엑기스만 모을 수 있어야 진정 작아질 수 있습니다.

     

좋은 글은 군더더기를 다 버린 후에 남는 겁니다. 버리고 줄이고 또 버리고 줄이고 나면 아주 좋은 것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줄여 줄여 놓아야 결국 진액이 남습니다. 그 게 폭발하면 어마어마합니다.


불교에서는 ‘먼지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一微塵中 含十方)’고 합니다. 먼지에도 우주가 들어있는데, 그걸 알지 못하니 사람들은 더 크게 보이려고 몸피만 키웁니다. 다 물렁살입니다.


아무리 긴 선도 작은 점의 모임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흔한 말도 있습니다.


우주의 근원은 작은 겁니다. 천부경이란 경전에는 '하나에서 시작해도 시작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끝도 그렇다 했고요. 아무리 커져봐야 결국엔 없는 것으로 수렴됩니다. 잘 모르겠지만 없어질 때까지 작아져야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어슴프레 한 깨달음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것도, 결국엔 작아지는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빼고 덜고 뼈다귀만 남았을 때 명작이 됩니다. 덧칠해 유명해 진 것들도 있긴 하지만요.

     

이름만 떠 올려도 애잔한 화가가 이중섭입니다. 그가 그린 소는 살은 없고 뼈다귀만 있습니다.


선사가 죽을 때 ‘산은 산 물은 물’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도를 깨쳐도 결국 남은 것은 산은 산 뿐이고, 물은 물일 뿐이란 겁니다. 거기에 덧붙일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커 보이려 하고 화려하게 보이려 합니다. 물렁살만 늘려 놓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없는 나의 정공법이 먹혔는지, 아니면 더 얘기하면 상대가 펼쳐놓은 진에 깊숙히 말려들어 전력만 낭비하겠다 생각해, 작전 상 후퇴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름은 ‘소소공방’으로 정해졌습니다.


결국 은퇴 후 폼 나게 시작하려 했던 도자기 공방은 ‘작고 적다’는 ‘소소(小少)’란, 소소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공방입구에 하나 걸고 대문에 하나 걸고 싶다 해 공방입구에 거는 건 나뭇가지로, 현관에 거는 건 글씨가 커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나무판에 붓으로 써 보냈습니다.


보내면서도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며 찜찜한 나날을 보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나에게는 '크고도 크다'는 뜻인데 말입니다.


주인이 싫으면 크고 큰 다른 이름을 걸겠지요. 손자병법에 없는 수라 방법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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