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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23. 2024

다시 집을 짓는 다면

신발 신고 다니는 집, 단순한 집, 창고 큰 집

집보다 일이 먼저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집도 맞춰 지어야 한다. 어떤 목적으로 쓸 것인가가 정해져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도시 사람들의 집은 아파트 구조가 좋다. 방범도 잘 돼 있고 관리도 편하다. 하지만 시골서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집은 도시생활 할 때처럼 지으면 많이 불편하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짓겠다 고민을 많이 하지만 현관문 열고, 신발 벗고, 중문 열고, 실내로 들어가는 동선 구조는 거의 똑같다. 몸은 시골에 있지만 도시에서 처럼 생활할 생각이면 이렇게 짓는 게 맞다.


하지만 시골서 전원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은 마당일이나 텃밭일도 즐긴다. 목공 등 자기만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그런 집이 많이 불편하다.


살면서 마당에 하나씩 새로운 공간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살다 보니 창고도 필요하고, 손님이 오면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도 쉽게 담소할 마당 정자도 필요하다. 나중에 보면 본채는 잘 사용하지 않고 마당에 있는 공간에서만 논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우선 잘 정리해야 한다. 이따금 다녀가는 주말주택으로 쓰겠다 생각하며 살림집처럼 지으면 건축비도 많이 들고 관리도 힘들다. 잘 지어놓았는데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경제적 손실도 크다.




시골서 집을 짓고 산 지도 꽤 오래됐다. 남의 집 임대해 살아도 보고 오래된 시골집 구해 고쳐서 살아도 봤다. 시골집을 고쳐 카페를 하다 매매도 해 보았다.


토지를 구입해 허가받고 공사해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도 만들어 보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그렇게 만든 마을 중 하나다. 직접 토지를 구입해 허가받아 건축공사까지 했다. 옆에는 조그맣게 카페를 지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처음 집을 지을 때는 남들 짓는 것을 따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의심이 없었다. 막상 살면서 관찰해 보니 불편한 것, 필요 없는 공간들이 하나하나 보였다. 사람에 따라 공간을 사용하는 활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 나같이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 기준으로 다시 집을 짓는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신발을 벗고 드나드는 공간을 최소화할 것이다.


신발 신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겠다는 얘기다.


등산화를 챙겨 신고 등산을 가다 배가 고파 식당에 들렀다. 주인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면 불편하다. 다들 신발 신은 채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을 것이다.


카페를 하다 보면 신발을 단단히 챙겨 신고 오는 손님들이 많다. 등산 모임도 있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위해 트레킹화로 무장한 사람도 있다. 요즘은 평상시에도 등산화나 작업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분들이 오셔서 자리가 없을 때 다락방이나 별채를 권한다. 다 신발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열에 아홉은 그냥 돌아선다.

     

“에이~ 신발을 벗어야 하잖아요!”     


시골 사람들은 신발 벗는 게 불편하다.


미국 개척시대 서부의 건맨들은 신발을 신고 자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말이다. 언제 나쁜 놈이 나타날지 모르니 대응하기 빠른 복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신발을 신고 있어야 안전했다.


시골살이는 적이 나타날 일도 없지만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편하기 때문에 그런 신을 많이 신게 된다.


시골서 집 짓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당일이나 텃밭일에 빠져 있다. 취미가 되든 돈벌이가 되든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시골서 재미있게 산다.


이들의 복장을 보면 대부분 완전무장이다. 장화를 신고 있거나 작업화를 신고 작업복을 입는다. 흙도 묻어 있고 톱밥도 먼지도 낀다.


이러다 밥 먹으려고 현관문 열고 신발 벗고 중문 열고 거실과 주방으로 들어가려면 흙과 먼지도 털어내야 하고 신발도 벗어야 한다. 게을러서 그런지 일하다 신발 벗는 일이 참 귀찮다. 엄청 불편하다.


그래서 마당이나 밭 또는 작업장에서 신고 있던 신발 그대로 드나들며 생활할 수 있는 집이 좋다. 신발 신고 커피 타고 밥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 검색도 하고 메일도 보내며 지내다, 잠잘 때만 신발 벗고 씻고 샤워하고 잠자리에 드는 집을 짓고 싶다. 다시 집을 짓는다면 말이다.


그러려면 주택 실내에서 신발 신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면 된다.


생각해 보면 신발을 벗지 않고 사용해도 되는 공간은 의외로 많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은 신발 신은 채 드나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카페가 그렇다. 카페의 홀이 거실이라 치고 카운터가 있고 머신이 있는 공간을 주방이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거기는 신발을 신고 다닌다.


다만 밤에만 이용하는 침실과 욕실은 그럴 수 없다. 그럼 침실과 욕실 빼고 신발을 신고 생활해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주택이면 달라야 하는가? 결정은 각자의 몫이다.


신발 신은 채 생활하는 공간에는 바닥 난방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운치 있는 벽난로나 그것도 귀찮다면 온풍기 등을 이용하면 따뜻하게 살 수 있다. 건축비용도 줄일 수 있다.





살아보니 신발을 벗고 옷 갈아입기 불편해 생기는 일 중에 이런 경험이  있다.


때때옷 빼 입고 외출 했다 돌아와 차를 세우다 보니 창고 추녀 밑에 구멍이 생겨 참새가 드나드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두면 더 커질 것 같아 우레탄폼을 찾아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쉽게 구멍을 막고 내려왔다.

     

마당을 어슬렁 거리다 집안에 들어가 옷을 벗는데 바지 엉덩이 부분에 폼이 묻어 굳었다. 조금 전 폼을 쏘다 사다리에 찌꺼기가 떨어진 것을 모르고 엉덩이로 뭉갰던 거다. 허연 자국이 생겼는데 이럴 때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고 누렇게 변한다. 작업복으로 써야 한다. 좋은 외출복이 작업복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긴 작업복이 꽤 된다.


쉽게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바로 변신에 성공했을 거다. 신발 벗고 집 안에 들어가 외출복 벗고 다시 작업복 챙겨 입고 나오는 게 불편하다 보니 외출복 입은 채로 설치다 사고를 친다.


커피 한 잔 들고 창가 탁자에 앉아 멍을 때린다. 마당에 풀 나오는 것도 보이고 나뭇가지 하나가 삐죽 나와 있는 것도 보인다. 그러면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호미 들고 톱을 찾아 달려간다. 잠깐 그것만 정리하려 했는데 손을 대니 길어진다.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신고 있는 신 그대로 설치다 보면 옷과 신발에 이것저것 묻어 있다. 닦아도 빨래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자국이 남는다.


나무판에 페인트로 손글씨를 쓴다. 만만한 판자데기만 보이면 창고에 페인트 통을 꺼내 재미 삼아 붓질을 한다. 간단히 한 두 글자 써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손을 대다 보면 오일스테인 칠도하고, 한 가지 색으로는 아쉬워 여러 색의 페인트 통을 꺼내 놓는다. 조심해서 한 글자 쓰려던 것이 일이 커져 그림도 그린다. 나중에 보면 여기저기 페인트가 튀어있고 옷과 신발에도 묻어있다. 잘 지워지지 않는다. 신발에 페인트가 튀어 좋은 운동화 하나 버리고 좋은 작업화 하나 얻는 순간이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출근해 일하다 저녁에 귀가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씻고 밥 먹고 저녁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 때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런 ‘옷 갈아입기 룰’을 지키기 참 어렵다. 마당이나 텃밭 일하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읍내에 있는 군청에 볼일을 보러 다녀오고, 돌아와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풀 뽑고 집수리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 좀 하려고 작업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날씨도 그렇다. 아침저녁에는 겨울 옷을 입고 낮에는 봄 옷을, 어떤 날은 여름옷을 챙겨야 한다.


많이 불편하다.


마당서 풀 뽑다 갑자기 컴퓨터 켤 일이 있어 방 안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작업복 입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되고 외출복 입고 사다리 놓고 폼을 쏘게 된다.


실내 공간에 신발 신고 드나드는 것까지 고민해야 한다면, 현관 앞에 탈의실을 만들어 두는 것 생각해 볼 만하다. 평상복, 외출복, 작업복을 쉽게 갈아입고 신발도 쉽게 갈아 신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으면 편리할 것이다.





둘째, 공간을 단순화할 것이다.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는 잠자는 방, 화장실, 주방이다. 기본적인 필수 공간이다. 이들 공간 중 칸막이가 필요한 것은 잠자는 방과 화장실이다. 주방도 칸을 막을 필요가 없다.


결론은 방과 화장실만 칸을 만들고 나머지는 오픈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세탁기를 써야 한다. 실내에서 필요한 비품이나 소모품 등은 가까이 두고 써야 하는데 노출시키면 불편하다. 다용도실이 필요하다. 그러면 막아야 한다. 추가로 다용도실 정도는 칸을 막아 만들 필요가 있다.


손님들이 오면 같이 차도 마시고 수다 떨 공간이 필요하다. 주인도 한가할 때는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다 낮잠도 자는 공간, 봄나물이라도 뜯어 오면 다듬으며 TV를 보는 공간이 필요하다. 주방이 있는 앞쪽으로 넓게 터 놓고 카페처럼 탁자 몇 개 놓으면 된다. 이것이 거실이다. 공간구분이 필요하면 이동식칸막이로 할 수도 있다.


손님이 묵고 가겠다면 거실에 접이식 침대 몇 개 펼쳐주고 자고 가라면 된다. 그것도 불편하다고 안 오면 손님 맞을 걱정도 다.


방과 화장실, 다용도실 외에 공간은 칸막이 없이 넓게 터 놓고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하는 거다. 그러면 집의 구조도 단순화할 수 있다. 단순하다는 것은 건축비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공간 구성을 하면 첫 번째 했던 이야기, 신발을 벗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 수 있다.




셋째, 창고에 신경 쓰겠다.


시골에서는 집보다 창고가 더 중요하다.     


살면서 집과 마당, 텃밭을 관리하려면 공구와 도구, 자재들이 필요하다. 자재와 공구만 잘 알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요즘 집은 목수들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재와 공구가 짓는다는 말도 있다.


집을 수리하고 마당을 가꾸고 텃밭 농사를 지을 때 기술자를 부르고 일꾼을 시킨다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결과물이 내 맘 같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직접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공구들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창고 한가득 된다.

    

정리가 잘 안 돼 있으면 이전에 사용했던 공구나 자재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찾지도 못해 새로 사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보면 똑같은 것이 몇 개씩 있다. 그래서 큰 창고가 필요하다.


창고는 공구를 정리하고 자재를 보관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작업실로 변신할 수도 있다.


잠자고 밥 먹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창고처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은 클수록 좋다.


집을 다시 짓는다면 창고가 큰 집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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