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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11. 2024

근면강박증은 버려! 좀 게을러도 돼!

게으른 정원사 가을 민들레 보고 게으른 농부 늦가을 치커리 쑥갓꽃 보고

“그만 좀 뽑아내라고! 풀만 뽑지 왜 꽃까지 다 뽑고 그래! 이건 쑥이 아니고 구절초라고…”


“그만 좀 잘라내! 왜 꽃나무를 자꾸 잘라내냐고!”


안주인이 호미를 들고 땀 흘리며 일하는 남편 뒤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지른다. 이따금 보는 풍경이다.


뒷집 마당에는 풀 한 포기 없다. 부지런한 남편이 화단 관리를 너무 잘한다. 꽃나무는 물론이고 돌까지 정리 정돈 돼 있다. 낙엽이 떨어지면 이내 쓸어내고 꽃나무 가지가 휘어지면, 시든 꽃이 보이면 바로 쳐 준다. 지저분한 꼴 보이는 족족 단정히 이발을 해 준다. 그렇게 마당을 열심히 가꾸는 사람의 머리도 그렇다. 언제나 단정하다.


그 집 나무들은 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창고에 연장은 당연히 종대 횡대로 줄을 맞춰 각을 잡고 있다.


바깥어른이 마당에 있는 풀을 너무 열심히 뽑다, 안주인이 심어 기르는 구절초를 잡초로 알고 뽑았다 잔소리를 듣는 중이다. 꽃 순이 나올 나뭇가지가 삐죽삐죽 크는 것이 보기 싫다며 잘랐다 혼이 난다.

     

그이가 이따금 내 마당으로 놀러 와 관리 좀 하라며 잔소리를 한다. 게으름이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나무도 정리하고 풀 뽑기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풀 한 포기 없이 반질반질하게 정리 정돈된 것보다 어느 정도 제멋대로 키운 정원이 좋다. 편안하다. 더 운치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스스로 위안이고 변명인지는 모르겠다.

    

마당 잔디 속에서 철 지난 민들레가 보인다. 냉큼 뽑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면 가을에 민들레의 노란 꽃을 본다. 계절을 달리해 피는 꽃을 보는 재미는 크다.


텃밭에 쑥갓이나 치커리를 심으면 쌈채로 좋다. 상추와 깻잎, 고추 등과 함께 많이들 기른다. 너무 잘 자라 먹을 새가 없다. 그냥 묵혀 두면 꽃대가 올라오고, 쑥갓은 노랗게 치커리는 보라색 꽃을 피운다. 화초보다 예쁘다.




근면강박증이 있는 사람들


게으른 정원사가 가을 잔디밭에서 민들레꽃을 본다. 게으른 농부가 늦가을에 쑥갓꽃을 보고 치커리꽃도 본다. 그것이 삶의 여유가 될 수 있다. 다른 삶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런 일탈과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고, 마당에 풀이라도 뽑고 있어야 하고, 나뭇가지라도 치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가꾸고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뭔가 잘 못 될 것 같고 뒤처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이런 근면강박증, 부지런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부터 열심히 삽질이라도 해야 잘 사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들 알고 있다.


하지만 살아보니 좀 게을러도 된다. 그러면 남들 못 보는 쑥갓꽃도 보고 가을 민들레꽃도 볼 수 있다.     

     

뒷집 아저씨는 오늘도 마당에 풀을 뽑아 손수레에 싣고 둑방까지 가져다 버리고 온다. 마당 한쪽에 쌓아놓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늘 손수레에 싣고 멀리까지 내다 버린다. 그렇게 뽑아버린 잡초들 속에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야생화도 꽤 있을 거다. 너무 열심히 살아 그 귀한 꽃을 못 본다.

       



마당은 사람입니다. 만든 사람의 마음이고 인격입니다. 사는 사람의 품격이고 가치입니다. 마당을 보면 그것을 만들고 가꾸어 사는 사람의 성품이 보입니다.

마당은 기도입니다. 하루하루 정성으로 올리는 지극한 두 손 모음입니다. 흙을 골라 풀을 뽑고 꽃을 심어 가꾸는 하나하나가 기도의 삶이고 마음을 닦는 수도입니다.



옆 동네에 정원 가꾸는 재미로 사는 아주머니가 있다.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이다. 그이의 집 정원도 타샤 정원만큼이나 사철 꽃으로 가득하다. 화려함은 그 이상이다. 화려하고 비싼 꽃들이 줄을 맞춰 서 있고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다. 시든 잎이나 가지는 보이는 족족 정리해 밴질밴질 윤이 난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집 정원에 가면 뭐든지 잘해야 할 것 같다. 잘 못하면 실수할 것 같고 혼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정원에서 숨이 막힌다.


그 이가 정원 사진을 찍어줄 수 없냐며 타샤 튜더의 책에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 집 정원은 사진을 찍으면 이런 분위기가 안 나요? 카메라가 나쁜 건지 사진 실력이 없는 건지…”


“그건요. 너무 잘 가꿔 놓아 그래요. 타샤의 정원은 제멋대로 자란 나무도 있고 시든 꽃잎도 있어 그런 분위기가 나는 거예요. 잡초도 그대로 뒀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거예요. 풀 한 포기 없이, 시든 낙엽 하나 없이 너무 열심히 가꾸지 마시고, 자기들 멋대로 크고 자라게 놔두시고, 그늘에 흔들의자나 하나 갖다 놓으시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자다 보면 이런 분위기가 날 거예요."

    

그 이는 아마 오늘도 새벽부터 꽃밭에 앉아 풀을 뽑고 시든 꽃잎을 따고 늘어진 나뭇가지를 치며 타샤의 정원을 꿈꾸고 있을 거다. 마당에 풀과 시든 꽃잎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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