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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10. 2024

무릎에 보내는 할머니의 신호

주꾸미 숯불 스탠딩파티 후 무릎이 아프다! 늙어가는 걸까?

뒷집 부부가 주꾸미를 사 왔다며 막거리 한 잔 하자고 부른다. 즐겁고 기쁜 일이다.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올려 양념한 주꾸미를 굽는다. 새로운 맛이다. 자기들도 처음 시도해 보는 숯불구이란다.


이럴 때는 젓가락과 막걸리잔을 들고 서서 먹는 게 제맛이다. 두서너 시간을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무릎이 아프다.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많이 사용한 것들부터 슬슬 고장 나는가 보다.


강의 요청을 받아 사람들 앞에 서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을 많을 때는 4시간떠든다. 듣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챙기고 말하는 것에도 신경 쓰고 하다 보면 자연히 서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못 느꼈는데 요즘엔 끝나면 무릎이 굳어 잘 걷질 못한다. 한걸음 씩 뗄 때마다 무릎이 아프다. 좀 걷고 나면 풀린다.

     

나이가 드는 증상일 거라 생각하는데, 어제저녁 주꾸미 숯불 스텐딩파티를 끝내고도 신호가 왔다.

 

꼭 그때처럼, 내 다리를 누군가 잡아당겼다 놓은 것 같이 무릎이 아프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오래전에 쓴 시다.          



바람의 끝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 끝의 끝에서

수천수만 갈래의 바람으로

까마득히 잊혔던 그가

별빛처럼 내 뜰을 서성이다

밤새 가지 끝의 바람으로

서리었는지 모르겠다


추워지면 발목 시리던 사람이

그립다


식은 아침볕에 쪼그리고 앉아

등 얇은 식탁을 차리고

김 오른 밥 한 그릇을

앙상한 입김으로 덮

사람이 보고 싶다


문살 칸칸이

모눈의 창호지를 바르며

마른기침으로 긴 겨울을 나던

그가 오늘 아침 참 보고 싶다


참빛으로 허기를 쓸어

가난한 삶의 가르마를 타

곱게 쪽을 지던 그 사람

그립다.



볕 참 좋은 시골 아침 뜨락, 조그만 대야에 맑은 물을 받아 쪼그리고 앉아 세수를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고 싶어 쓴 시다. 세수할 때는 쪽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기시고, 거울 앞에 앉아 또 참빛으로 가지런히 빗어 넘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에 돌아오면 손자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아랫목 이불속에서 따뜻한 밥공기를 두 손으로 꺼내 았다. 그래서 더욱 보고 싶다.


바깥 생활을 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갔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고 전통식으로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방에 영정을 모시고 일가친척들의 조문을 받는다.


멀리 있는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마을 사람들도 모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을 몇 잔 하고 나는 영정 앞에서 밤을 새우다 잠이 들었다.


아침 눈을 뜨니 가족들이 또 문상을 왔던 친척 어른들이 나를 보고 밤새 무슨 꿈을 꾸었길래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잤냐고 묻는다. 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오른쪽 다리가 누가 잡아당겼다 놓은 것처럼 아프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 하며 일주일 정도를 절룩거리며 다녔다.


이상한 일이다 정도만 생각하고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무릎이 아픈 경험을 하며 그때의 일이 자꾸 떠오른다.


할머님의 제상 아래서 밤새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잠이 들었던 것, 내 다리가 무엇인가 잡아당겼다 놓았다 생각할 만큼 이유 없이 아팠던 것이 혹시 할머니가 떠나시며 나한테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닐까? 할머니 영혼의 말씀은 아닐까? 무릎에 보낸 할머니의 어떤 신호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살다 보니 세상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정신적인 세계,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자주 보고 듣고 경험한다.


지금도 할머니는 내 무릎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아마 생전처럼 늘 “착하게 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실 게다. 오늘도 착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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