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겠습니다만 처음이 아닌가요?
"사고가.. 났어... 어떻게 해..?"
떨리는 내 목소리에 수화기에서는 침묵만이 흘러나왔다.
".. 살아.. 있어..?"
침묵 뒤에 나보다 더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으응.. 금방.. 병원으로 이송했어.."
"알겠어.."
알 수 없는 미묘한 목소리.. 이게 그 와 나눈 마지막이자 그 아이와의 마지막이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살아있는 건 맞지? 왜.. 그렇게 사라졌니..? 아니.. 누가 널 사라지게 한 거니?
살아 있는 거.. 맞지 서희야?
"우와아!! 멋져요 형?.. 어어어어 어!!!..."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아파트를 들어오는데 귀여운 고딩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형에서 멈추는 놀란듯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의 응원에 화답이라도 하 듯 가볍게 엑셀을 힘주어 살짝 밟아주었다.
그 소리에 더 큰 환호성과 함께 난 아파트에 주차를 끝 마쳤다.
지이이이이이잉-
그 와 동시에 기다리기라도 한 긋 이내 낯익은 이름이 폰 액정에 떴다
"응 오빠~"
"어 서희야 주말에 뭐 하냐?"
"주말에 딱히? 아직 일정 없는데?"
"그럼 포항 갈래?"
"포항?"
"응 너도 아는 사람도 있는데 포항에 바리 가자고 해서"
"그래? 나 아는 사람 누구?"
"규진이라고 나랑 동갑인데 서희 너 아는 거 같은데?"
아... 기억 안 나는데...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또 기억 안 나지? 그럼 그렇지~"
"아 몰라.. 보면 기억 날 수도.. 일단 3일 전에 이야기해 줄게 오빠~"
"알았어~"
내가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한번 마주쳤다고 알 수가...
규진... 누구지... 규진...
바리 전까지 결국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주혁 오빠 친구라면 한 번은 봤을 거고 나도 기억했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보았지만 도무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띠-잉-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나도 모르게 올라타려다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죄송..."
"죄송합니다.."
올려다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너무나도 낯익은 얼굴과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
상대는 나를 보지 못한 거 같았다.
그 사이 난 조용하고 빠르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제일 위층 버튼을 눌렀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불과 며칠 전 함께 바리 한 라이더였다.
밖에서 보던 사람을 아파트에서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놀란 거 같다.
그리고 괜히 취미생활하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마주치는 게 부담되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숨어버렸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35살인 직장인이자 차와 바이크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공과사를 철저하게 구분한다.
직업은 검사원이다 자동차나 바이크 정기검사를 주로 하는데 취미는 튜닝카나 고배기량 바이크로 와인딩이나 라이딩을 즐긴다.. 절대 직업과 취미가 공존되어서는 안 되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이다.
대부분 나의 직업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
이사 오면서 이웃들과의 교류도 딱히 없어서 이곳에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나 자세히 보나 이중적이기도 하다.
낮에는 불법을 철저하게 걸러내는 검사원이면서 정작 나는 소음과 불법이란 불법을 즐기는 사람이니까
지이이이잉-
일하고 있는데 문득 진동이 느껴져 폰을 보니까 주혁오빠였다.
"네에~"
"응 바빠?"
"아니요~ 괜찮아 오빠~"
"주말 바리 어떻게 되었어?"
아.. 맞다 얼마 전에 바리 가자는 약속 답을 아직 안 했구나..
"응 갈 수 있어 오빠~"
"그래 알았어. 같이 간다고 이야기할게~"
"아! 몇 명이나 가?"
"4명 갈 거 같아~ 너랑 나랑 규진이랑 동생 하나~"
"오오 좋다 많지도 않고 알겠어 오빠 주말에 봐~"
"그래"
딱히 다른 약속이 잡힌 것도 아니고.. 원래 가기로 한 바리도 아직까지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니 간다고 해도 괜찮겠지?
전화가 끝나자마자 난 잽싸게 마스크를 올렸다.
이 동네에서는 딱히 라이더 활동을 하지 않지만 간혹 근방 동네에서 많이들 오다 보니 여러 번 위험했던 적이 있었다.
자기 동네에서 검사를 안 하고 여기까지 올 정도면 문제가 있기도 했고 그나마 공단 검사소라서 눈 감아 줄 수가 없을 만큼인 차들은 오지 않지만 그중 애매한 애들은 검사비를 아끼고자 튕겨질 수도 있음에도 종종 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언제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되었다.
바이크는 아직 한 번도 안 부딪혔지만 튜닝카는 아는 사람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숨기 바빠서 죽을 뻔했지..
직장에서도 내 취미생활을 몰라서 그때마다 난감했었다
"서희 씨 오늘 퇴근하고 뭐해요?"
불타는 수요일에 또 누군가가 나의 이 소중한 수요일 오후를 방해하려는 것일까?
"아.. 선배님.. 저 오늘 엄마랑 저녁 먹기로 했어요~"
아주 아주 저렴하지 않은 영업용 웃음 지어 보이며 답을 했다.
대부분 취미 생활하는 사람들은 내가 결혼한 줄 알고 있다.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너무 사적인 공간까지 밀고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나만의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교통정리도 쉽게 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직장동료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진짜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될 때 휴가를 요청해야 하는데 그럼 거짓말인 게 탄로 날 거고 연말정산이다 뭐다 할 때 배우자 정보도 당연히 필요하다 보니 함부로 거짓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남자친구가 있다고도 해보긴 했으나 얼마나 귀찮게 하던지..
결국 얼마 안 가 헤어졌다고 이실직고했었지..
"아.. 그래요? 지난주에 이번 주 수요일에 영화 보자고 이야기했었는데 생각해 본다더니.."
"아..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까먹고 엄마랑 약속 잡아버렸어요~"
"그럼 다음 주는요?"
"다음 주는..."
바로 대답을 하려 했는데 바로 내 말을 끊어버렸다
"다음 주는 무조건 시간 비워줘요 이번 주 약속 어긴 거 대신이에요"
자기 말만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 정도로 거절을 했으면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지난번에 이미 누구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이미 이야기했는데! 왜! 계속 이러냐고!
찝찝하고 불안한 마음에 한 주를 마무리했다.
지이이이이이잉-
천근만근인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벌써 주말.. 어제 먹은 술이 아직 제대로 희석되지 않았는지 온몸이 무겁고 힘들었다.
술 먹고 왔음에도 세나도 충전완료했고 인스타도 충전완료 한.. 이 철저한 라이딩의 본능!
대충대충 준비를 하고 주혁오빠한테 출발한다는 카톡을 남겼다.
이 오빠집과 나랑 1시간 거리인데 오늘 바리는 거진 그 동네 사람들이라 내가 그 동네까지 가기로 하였다.
나에게 여왕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대우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오늘 뭐 해 누나?]
[바리 감요~]
내 가짜 남편 오늘 바리 가는 건 어찌 알고 때마침 카톡을 하네..
[어디로?]
[영덕 갈걸? 포항이라 했는데 영덕이래~]
[조심히 다녀와~ 내일 혹 정모 나올래?]
[어딘데?]
[방장 동네?]
[그래? 알겠어~]
요놈이 거짓말을 잘 못해서 어쩌다 한번 보면 속아 넘어가는데 오랫동안 붙잡고 있음 금세 들통이 나서 가벼운 자리가 아니면 쓸 수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나마 이 놈도 여자친구가 아직 없어서 차쟁이들 사이에서는 안전하지만 여자친구를 만들어버리면 좀 곤란해지기는 하지만 그때는 또 다른 도우미를 구해야겠지
늦을 거 같아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로 도착했다.
아쉽게도 이번엔 내가 젤 마지막에 도착한..
그래도 멀리서 오는 거 알고 다들 이해해 주는
"안녕하세요~"
난 가볍게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왔어?"
익숙하듯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는 주혁오빠와 두 사람은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낯이.. 전혀 익지 않은데?
이 정도인데 저 사람이 날 안다고?
한 명은 딱 봐도 너무 어려 보여서 어린 동생이라는 게 느낌이 확 오고 나머지 한 명은 주혁오빠랑 비슷한 연배인 거 같은데.. 직접 봐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따지지 않고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처음 만나서 어색함도 있었다.
영덕으로 향했을 때 처음에는 어색함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주혁 오빠 말에 호응만 좀 하다가 첫 번째 휴식지에 도착을 하고 내리니 또다시 낯익지 않은 얼굴들이었지만 그나마 한 시간 동안 숨소리를 들어서 인지 조금은 편해졌었다.
"너무 조용해서 심심하지 않았어요?"
"아. 원래 주혁오빠가 말이 별로 없잖아요~"
"그렇죠? 저 놈은 우리랑 달릴 때나 여라랑 달릴 때나 다르지 않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바이크에서 내리면 말이 많아요~"
"아.. 맞아요 그건.. 달릴 때는 말 한마디 안 하다가"
다행히 어색하면서도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갑자기 말을 걸어오길래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주혁오빠 또래의 매너는 나쁘지 않았다.
다른 라이더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다 같이 담배 하나 피고 다시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가는 중간중간 변수로 인해 한 번씩 웃으며 이야기도 하며 다행히 식당까지 도착하였다.
원래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밥을 못 던 성격인데 차와 바이크를 접하면서 점점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니 바이크를 접해서 이겠지? 차쟁이들은 친해진 애들하고만 주로 만나고 거기에 한 명씩 끼이는 구조인데 라이딩은 거진 아는 사람 한 명에 모르는 사람이 우르르 나오는 구조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구조이라 보니..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주혁오빠한테 많이 의지를 했었다.
바이크에서 내리고 담배를 꺼내었다. 다들 긴 라이딩 후 정차인지라 화장실을 먼저 다녀올 거라 예상을 했는데 다들 들어가고 나서 규진님은 옆에 남아 있었다.
"안 들어가세요?"
"한 대 피고 들어가려고요"
"아.. 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듯하기도 하고 뭐 루틴이 같을 수 있으니 내가 방해를 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약간 떨어져 폰을 만지며 딴청 피는 듯 행동하였다.
그 모습에 규진님도 폰만 만지다 담배를 다 피운 후 안으로 이동하였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감에도 다들 주혁오빠 옆자리를 비워주었고 다행히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들 이야기를 하는데 외지인(?)이라 그런지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호응만 가볍게 해주고 말았다.
식사를 끝내고 나와서 카페도 가까우니 바로 이동하자고 해서 담배 한 대 빨리 피고 바로 이동하였다.
말은 카페였는데 울진에 있는 망양휴게소였다. 카페도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은 커피를 사서 휴게소 옆에 있는 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다들 라이딩 히스토리를 풀기 바빠 보였고 나는 그저 조용히 물멍이나 때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규진님이 사진을 찍자며 제안하였고 나도 모르게 같이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헬멧 벗고 사진을 찍은 적은 없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규진님의 얼굴 보며 멍하게 찍은 거 같다.
그렇게 열심히 스노우로 찍을게요 라는 말과 함께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보다 결국 못 이긴 척 같이 찍었다.
그리고.. 커피를 들고 한 모금하는데 당황스러운 규진님의 표정과 X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그게.... 이게..."
"아.. 전 괜찮아요..."
서로의 취맛이 같다 보니 잔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들었다가 규진님의 표정을 보고 나도 순간 잘못 들었구나 느꼈다. 그래... 아껴 먹는 내 습성에 이렇게 가벼운 잔일 수가 없지...
그리고 당황스러운 건지 뭔지 모를 그 사람의 붉어지는 뺨에 순간 어벙벙해졌다.
우리 나이 30대인데 이런 걸로?
당황해하는 표정에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괜찮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는 괜찮아도 상대가 불쾌할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