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의 손길은.. 싫지가 않은 건데..
결국 지난번 짬바리는 가지 못했다.
나도 일이 늦게 마치긴 했지만 규진 씨도 일이 생겨서 결국 무산되었지..
그 이후로는 나름 서스름 없이 카톡은 다 같이 주고받고는 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보다는 좀 더 편안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첫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아직은 어렵긴 하다.
"서희씨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지요?"
벌써.. 수요일이었나 보다.. 거진 반년 동안 이야기도 잘해보고 핑계도 대보면서 약속을 회피하고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되나 보다 오늘 정확하게 한번 더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
"네 괜찮습니다"
"우와! 그럼 어디로 가실까요?"
"네?.. 먼저 말씀하셨으니까 알아서 하셔도 돼요"
"에이~ 그래도 서희씨 가고 싶은 대로 가요~"
내가 잡은 약속도 아닌데 왜 나한테 책임을 전가하는지 모르겠네..
순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선배님이 가자고 하신 거니까 선배님께서 정하시는 게 맞는 듯합니다 지금 근무 중이라 바빠서 나중에 뵐게요"
의사만 정확하게 전달하고 자리를 피했다.
괜히 일하는 시간 내내 속닥속닥하는 거 다른 동료들에게 보여주기도 싫고 오해도 만들기 싫었기도 했다.
이곳에 입사한 지 이제 2년 차 정도...
1년 전부터 계속 눈치가 안 좋더니 6개월 전부터는 계속 근무 외 시간에 만나자고 사람을 귀찮게 하고 있다.
분명 다른 남자친구 있다는 핑계도 대 보고 남자를 만날 생각도 없다고 했음에도 너무 귀찮게 굴어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거절만 하다가 오늘 제대로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 약속에 응했는데 뭔가.. 엄청 들뜬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데.. 규진 씨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는 뭔가 천진난만한 느낌이 들었는데..
저 사람은 뭔가 가식처럼 느껴진다..
"오늘 이 과장이랑 데이트한다면서?"
오후가 되어 마무리를 할 무렵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
"오늘 이 과장이랑 데이트한다던데? 아니야?"
"하아.. 데이트가 아니고 그냥 밥 한 끼 먹는 거예요 계속 이야기하셔서요"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서희씨가 먹자고 이야기했다던데~"
이게.. 또 어떻게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거야?
"그런 적 없습니다"
짜증 나는 마음을 뒤로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다른 검사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이 과장이 보였다.
나를 보자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 과장..
왜 이렇게 가식적으로 보이지.. 요즘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아님 차장님 말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는 이 과장
"오늘 제가 약속 잡았습니까?"
이상하게 말에 날이 서서 거침없이 튀어 나갔다.
"아.."
내 말에 당황한 채 주변을 둘러보는 이 과장..
그러고는 내 옆으로 바짝 붙더니 나에게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한다.
"아니 차장님이 자꾸 물어봐서 저도 모르..."
"이 과장님이 약속 잡으신 거면서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네요 전 이만 집에 가 보겠습니다 제가 잡은 약속도 아니니 굳이 자리 지킬 이유는 없겠네요"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일까.. 이런 오해가 너무 싫었다.
이 상황에서 가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세요 하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약속 잡고 내가 그런 말 하는 미친년이 되어 있겠지..
오늘은 여독이나 풀 겸 드라이브나 시원하게 다녀와야겠다
탁-!!!!
입구를 나서는 내 손을 거칠게 잡아채는 누군가 덕분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니.. 이건 아니죠 약속까지 했는데!!"
내 행동에 짜증이 났는지 나를 거칠게 잡아채는 이 과장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주 변 직원들은 구경만 할 뿐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아씨.. 따라와!"
"아니!..."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아귀힘이 너무 강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지금 뭐!! 하는 행동이냐고요!"
차에 다 다가왔을 때 이 차를 타면 위험하겠다 싶어 거칠게 뿌리치고 멀찍이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문제야?"
"그럼.. 지금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짓말한 게 잘하신 행동이십니까?"
"그게 뭐 어때서? 사람이 당황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리고 남자가 보자 한 거보다 여자가 보자고 한 게 모양새가 더 낫지!"
"하.."
이 과장의 말에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비웃었어? 어? 이게!!"
내 비웃음이 기분이 나빴는지 가까이 다가오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사람 진짜 미친놈인가 보다
"어이어이 이 과장 ~ 사랑싸움은 들어가서 해야지~ 그런 사이인 줄 몰랐네~"
아니.. 이 사람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 전부 다 이상한가 봐
"아.. 차장님.. 하하.. 아무래도 좀 부끄러웠나 봐요 갑자기 이러네요"
"지금 무슨 말하시는 겁니까?"
"아씨.. 그냥 좀 가만히..."
탁-!!!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더 이상의 왜곡을 막고자 이야기를 하니까 또다시 가까이 와서 팔을 잡길래 거칠게 뿌리쳤다.
"지금 뭐 어떻게 이야기를 하셨나 모르겠는데 이 과장님이랑 저랑 아무 사이도 아니고요 저 남자친구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거 사내성추행인 거 아십니까? 왜 계속 제 몸에 손 대세요?"
"하- 뭐..? 뭐? 사내 성추행?"
"내일 공단에 성추행 피해사실 신고 하겠습니다 제 차 블랙박스에 다 찍혔을 겁니다 끌려 나오고 함부로 제 몸에 손대는 거요 그리고 이 이상 제 앞길 막지도 제 몸에 손대지도 마세요 그럼 경찰 바로 부를 테니까"
공단이야기를 하니까 그제야 다들 우쭐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난 겨우 그 자리를 피해서 나올 수 있었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쉬워 보였으면 이런 행동을 했을까..?
평소에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듣긴 했었다.
굳이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서 묵인하고 지내왔던 거지..
아무래도 검사원은 나 혼자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마음도 강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도가 너무 지나치잖아?
지 이이 이이이 잉-
"응"
"엥? 목소리가 왜 그래?"
"아니야 왜? 무슨 일인데?"
"오늘 일찍 마쳤을 텐데 뭐 하나 싶어서~"
"이제 퇴근이야"
"딱 봐도 뭔 일 있네~ 어디야? 언니랑 맥주 한잔 콜?"
"후우..."
난 시동을 걸고 폰을 거치대로 옮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부글부글 한데..
"내가 갈게 집 앞으로 나와"
드라이브는 물 건너갔구먼..
"에에에??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대? 그래서 그냥 온 거야?"
"그럼 어떻게 해.. 거기서 뭐 더 해 봤자 좋은 꼴 본다고"
"이야.. 나 같았음 머리빡을!!"
테이블이 갈라질 듯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열받았어! 를 연신 표현하는.. 독립하고 처음 출가해서 공장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친구 수정이
난 2년 정도 근무하고 퇴사했지만 수정이는 여전히 공장에 계속 있어서 지금은 어엿한 관리자가 된 거 같고 난 검사원으로 빠지는 바람에 이제는 직장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한 달 두어 번은 함께 맥주 한잔 하며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다.
"너도 참.. 그러게 그런 일을 왜 해서 혼자 끙끙대냐?"
"뭐.. 어쩌겠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고.."
"차가 뭔 재미가 있다고.. 에효.."
"너는 그럼 거기 왜 계속 있는데?"
"나야 뭐~"
내 말에 몸을 베베꼬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수정이..
내가 퇴사할 무렵 들어온 과장님이 너무 잘생겼었지..
지금은 뭐 5년 동안 열애하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나마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데 제일 잘 사는 애이기는 하다.
"나 같으면 이제 그런 거 지긋지긋해서 진짜 결혼이라도 할 거 같은데.. 아직도 결혼 맘 없어?"
그때 또 훅치고 들어오는...
엄마도 안 하는 잔소리를 얘가 다 하는 거 같다
어우.. 결혼이야기 지긋지긋해..
"우리 나이에 결혼은 금기어 아니니?"
"너는 제외야~ 요즘엔 마음에 드는 남자 없어?"
"흠.. 마음에 드는 남자라.."
왜 지금 이 순간 규진 씨가 생각날까..
금사빠는 아니라서 애정이나 그런 건 없는데.. 그냥 궁금하다.. 어떤 사람일지..
"오~ 뭐가 있나 본데?"
"그냥.. 궁금한 사람은 있어"
"궁금한 사람? 야야~ 그게 시작이잖아!"
내 말에 눈이 초롱초롱 해지더니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며 히스토리를 들려달라는 듯한 애절한 눈빛이 느껴졌다.
"그냥 아직 바이크 한 번밖에 안 타봐서.."
"응? 라이더야?"
"응.. 주혁이 오빠가 불러서 갔다가 본 사람인데.. 그냥.. 뭐.. 아직 별 그건 없어"
"오오.. 라이더들의 사랑이 꽃피는 거야?"
"아니야.. 뭐.. 한번 본 게 다이고 그냥 궁금한 게 다야"
내가 알기로는 그 사람 결혼한 거 같던데..
종종 애기들 사진 올리던데 딱히 그거 보고 누구 애인지 묻기는 어렵고..
이거 말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그게 사랑의 시작이라니까? 원래 호기심으로 시작해~"
인간들은 참 신기해.. 자기 일도 아닌 남의 일에 더 재미를 느끼고 즐기는 거 같아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화장실이 급해서 이동하는데 화장실 입구에 엄청 큰 덩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저기.."
"어?.. 서희씨?"
길 좀 터 달라고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나를 아는 듯한 사람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취기가 돌아서일까..? 누구인지 잘 모르겠는데..
"형 ~ 서희씨인데요?"
누구인지 기억하려는 나를 뒤로 하고 그 사람은 뒤를 바라보더니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누군가에게 알리는 듯 보였다.
누구지.. 나를 아는 걸까?
나는 보이지 않는 뒤 사람을 보기 위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전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 다음에 봐요~"
아..! 승기 씨구나.. 술기운이 도니까 며칠 전 본 사람도 빨리 기억이 안 나네..
난 움찔한 채로 화장실에서 금방 나왔는지 안으로 몸을 향하는 승기 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우와.. 사복은 또 다른 느낌이구나..
"지금 애들 다 모여있는데.."
"아.. 죄송해요 제가 술을 마셔서.."
스윽-
몸이 기우뚱하게 된 채로 인사까지 한다고 더 엉성한 자세가 되어 불안했는데 갑자기 규진 씨가 내 팔을 살며시 잡아 나를 벽에 기대게 하더니 똑바로 세워 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 손을 뿌리치는 게 아니라 팔을 잡아버렸다.
"뭐지.. 싫지가... 않네..."
아까는 너무너무 싫었는데 이 손길은 왜 싫지가 않을까..
나의 속삭이는 듯한 말에 점 점 그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순간이.. 이상하게 싫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