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민 Jan 09. 2025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빨리 도착하기가 아니라, 안 넘어지고 멀리 도착하기

나는 프로 사부작러다. 그만큼 취미가 많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매년 목표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 운동하기, 책 읽기 세트는 물론이고 거기다 추가해서 체스, 춤, 노래, 요리 등등. 잘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고, 나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직장인이 아니니까) 루틴을 짜는 일도 그만큼 쉽지 않다. 일 년을 통으로 놓고 보아도 계절마다 일하는 시간이 다르고, 심지어 날씨마다 계획이 달라진다. 어떤 일을 안 하게 되면, 다른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고,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일들도 있으니 나의 루틴은 늘 단기적이고 그렇다 보니 생긴 능력이 바로 ‘작심삼월’.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월. 뭔가 시작하고 나서 100일 정도 쉬지 않고 그 취미를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면 ‘푸쉬이이 이- ’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거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친다. 그런데 또 욕심은 많아서, 매일 글도 써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돈은 또 돈대로 벌어야 하니 제대로 나를 돌보는 것이 맞는 건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몰아치다가 한번 엎어지게 되면, ‘이때’가 바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다.


나를 엎어지게 하는 것과 엎어졌을 때, 이 둘의 상관관계는 닭과 달걀만큼이나 심오하다. 물론 사람들은 SNS의 하이라트만 보니까, 내가 항상 바쁘고, 그 모든 걸 해내며, 늘 부지런하다고 칭찬한다. 실상은 정기적인 엎어짐 위에 세운 모래성인데 말이다. 요즘 같이 중독될 만한 것들이 천지에 깔려있는 세상에서는 잠시만 방심해도 엎어지기 일쑤다. 예전에는 내가 엎어졌다는 판단이 빨랐다. 혹은 엎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눈치채고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뭔가 흐름을 바꾸는 행동을 할 여유가 있었달까. 그런데 요즘 내가 엎어졌는지 한참을 모르다가 깨닫게 된다.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릴스’나 ‘쇼츠’를 무한대로 보고 있는데, 이 행위가 바닥난 체력을 더 끌어서 쓰는 일이라 다음 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정말 심각한 것은 엎어졌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태가 악화되기가 너무나도 쉽다. 답은 늘 알고 있다. 뻔하고 옳은 방법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좀 걷는다거나, 누굴 만난다거나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디 사는 게 마음대로 되던가. 당장 이불 밖으로 다리를 내밀기도 쉽지 않은데. 언젠가 ‘짠한 형’에 나온 비비가 누워있을 땐 아래쪽에 있던 우울감이 머리로 흘러들어온다며 ‘꺼지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누워있는 시간이 길 수록 없던 우울까지 끌어안게 된다.


‘그 순간’이 없었으면 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가 아니라 예방해야 한다. 점점 나이가 들고 체력은 약해지고, 몸의 반응과 회복도 느려진다. 얻어맞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패기 같은 건 이미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이제는 예방해야 한다. 나의 사용설명서를 읽고, 환경의 변화와 내 심리를 예측해서 대응해야 한다. 나는 대문자 P라는 핑계는 이제 더 이상 대고 싶지 않다.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미리 여유를 가져야 한다. 비싼 자동차의 쇼바가 너그러운 것처럼 내 하루 중 계획된 여유가 존재해야 한다. 차체가 고물이면 쇼바가 피해를 흡수해야 하니까. 하지만 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딜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기 너무 쉽다. 아마 멍 때리기 대회 최초 탈락자가 될 테지.


지금 쓰고 있는 방법은 동료를 만드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지속하기 위해 인스타나, 당근을 통해서 함께 할 사람을 구한다. 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인 게 상대 역시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바가 있어서, 말없이 둘 다 그만두는 일이 생긴다는 것(정말 웃긴 타이밍). 두 번째로 고안한 방법은 되도록 이런 상태나 고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자주 말하며 상기하고 인식한다. 사실 그들이라고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끼친다. 어떤 좋고 옳은 방법을 제시해도, 슬럼프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과 나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에 무력감에 잠식될 정도만 아니라면 자주 상기하는 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오늘 이 두서없는 글을 적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처럼 엎어져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