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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건 안 행복해

겨운 자여. 복에 겨운 자여.

by S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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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게 싫다.

웃기시네 해도 어쩔수 없다.

영원히 행복하지 않을거잖아

끝은 분명히 있을 거잖아


그래서 싫다.


행복한 순간을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성격이면 정말 좋을 텐데

배시시 부푼 마음이 어디 하나 빈 공간이 없이 꽈악 들어차는

행복하고, 두근대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바늘로 작게 틈을 내어 피시이이- 하고, 어느새 김을 빼고 있다


이렇게 행복해선 안될 일인데

분명히 끝이 있을 건데

안돼 부풀어 버리면 그 끝은

터지는 것 뿐이잖아


사랑도 그랬다. 끝날 날을 상정한 만남에 순간순간 충실하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떠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을 온전히 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있지도 않을 일을 그리며 저 혼자 스산한 이별을 준비했을까


누군가와의 여행도 그렇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추억이 쌓일 때마다

맛있는 것, 즐거운 것, 행복한 순간들로 시간이 칠해질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황급히 기쁨을 내리눌렀다.

적당히 좋아하라구. 어차피 넌 일상으로 돌아가야하잖아.

허전함이 더 커질 수 있어. 적당히 기뻐해.


뭐야 이게

있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온전히 좋아하지도 못하는 나는

멀뚝이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마음같은 것을 툭 툭 건드려 볼 뿐

남들 처럼 한 껏 잿가루 휘날리며 감정의 쥐불놀이를 할 용기도 없는 것이다.


우매하다.

알면서 또 그러는 것은 더 우매하다.


제 몸까지 태워버리는 행복이란 것에

내 몸을 던져 볼 수 있을까


행복을 행복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도

나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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