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국제 아동축제에 다녀와서(2)
*1권이 30회로 연재가 끝나 2권으로 넘어왔습니다. 1권을 아직 못 보셨다면 정주행 일독을 권합니다 :)
공연 시작보다 조금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안내원이 아이들을 미리 들여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응당 보호자와 함께 앉힐 것으로 생각했는데 부모가 뒤에 같이 앉길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을 앞자리부터 빼곡히 앉혔다. 시야를 감안한 배려이자, 또래들과 함께 느끼고 반응하기를 바라는 주최 측의 의도인 듯했다.
"Sometimes when watching Fear Tur things are funny it's okay to laugh out loud. (Yeay! and Don't Be Judge!) The important thing is to enjoy yourself and let others around enjoy it too.So sit back, relax and let your imagination soar."
"공연을 보다가 무섭거나 놀랄 수 있는 장면이 나올 때, 그게 웃기면 소리 내서 웃어도 괜찮아요. 이건 우리들의 축제니 까요!! (그리고 누가 웃는다고 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기!) 중요한 건 자신도 즐기고, 주위 사람들도 함께 즐기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편하게 앉아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세요."
첫 공연 관람인데, 시작 전부터 안내 멘트가 나를 콩콩 때린다. 여러 아이들의 목소리로 녹음된 공연 전 매너 알림이 아, 벌써부터 무언가 다르다.
아이들의 축제. 내가 기억하는 한국에서의 아이들의 축제가 어떠했더라? 우선 솜사탕이며, 핫도그 같은 먹을 것을 파는 트럭이 몇 십 개는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비눗방울, 풍선, 피에로가 속속들이 등장해 줘야지. 그리고 주머니를 여러 번 다시 열게 할 만큼 눈이 휘둥그레질 굿즈도 있어야지. 한마디로 도떼기시장이 바로 연상된다.
여기 에든버러 아동 축제? 그런 거 일절 없다. 누가 공연의 도시 에든버러 아니랄까 봐 철저히 공연 위주다. 전시도 주로 참여형 전시로, 어린이나 유치원 단체가 아니면 관람 자체가 불가인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공연 중에 마음껏 웃고 느끼라니... "관객 여러분, 공연 중엔 조용히 해 주세요"만 들었던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하다. 그래도 괜찮은가? 공연에 방해되지 않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으려나? 일전의 장애인극단 공연 때가 잠시 다시 떠오르면서 이 축제에서 '관객'은 누구이며 '공연자'는 어느 위치에 존재하는가가 다시금 궁금해졌다. 어린이 축제인데. 공연 성격도 당연히 어린이들의 활동과 성격에 맞추어지는 게 맞지. 그간의 어린이 축제가 5살부터 12살을 데려다 놓고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마! 입도 꾹 다물어! 였던 것이 새삼 폭력적이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한 마디. 앞, 뒤 옆에서 누구가 신나서, 혹은 참지 못하고 즐거워서 웃음을 터트린다고 해도 함부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 하지 말 것. 와... 어린이 축제에서 이 정도 울림을 준다고? 아니, 잠시만. 나 또 편견에 휩싸였었네. 어린이 축제는 왜 수준 높으면 안 되나? 어른 축제는 왜 방정맞고 재미만 추구하면 안 되지? 관람객에서 어른과 아이를 나누는 기준인 '나이'는 여기서 얼마나 중요하지?
공연 시작도 전에 벌써 "오오..."를 연발하고 있던 나. 어디에라도 이 감정을 적어놓으려 안절부절하는 나와는 달리 앞자리를 그득히 채운 아이들은 자기 또래들 목소리가 안내로 나오니 꺄르륵 신나서 난리다. 그래. 부럽다. 부러워.
Tangram Kollektiv
첫 공연은 탠그램 콜렉티브의 <Shades if Shadows>였다. 단 두 명의 퍼포머와 아주 다양한 광원, 그리고 단순한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이 공연을 맨 처음에 보길 정말 잘했다. 그림자극이라고 하면 솔직히 좀 식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 모든 그림자 극이 그런 게 아니었다. 빛(광원)을 멀리, 혹은 가까이, 혹은 퍼포머가 직접 다루거나 멀리서 쏘이거나 하는 다양한 위치 변화와 질감 변화를 주면서 배우들은 말 그대로 그림자와 소통하고, 뛰놀았다. 막 뒤에서 앞쪽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서로의 (무언의) 의사 전달과 방향, 그리고 크기 맞춤이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 정말 많은 연습이 있었겠구나... 하고 숭고해졌다.
Shades of Shadows Tangram Kollektiv
공연을 보다 보면 여전히 즐기지 '만'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자꾸 나도 이런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꿈틀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무대를 참 사랑했었지. 아니, 여전히 사랑하지.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의 Q & A 시간이 되었다. 흠. 뭐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뭘 물어봐야 하지???
아이들이 열심히 손을 든다. 아서라. 너희에게 마이크가 갈 것 같지는... 어랏, 아니네?
진행자가 아예 아나운싱을 한다. "질문은 어린이들을 위주로 먼저 받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성인의 질문도 받도록 할게요". 아니, 그래도 괜찮아? 양질의 질문들이 나와야 도큐멘팅이 되고, 그래야 내년에 예산을 또 따...
그만, 그만.
나라는 인간, 지원사업에 너무나 찌들어 있었나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얼굴이 뽀얀 아이가 앞으로 넘어갈 듯 몸을 기울이며 열심히 손을 든다.
"오늘 했던 장면 중에서 어떤 게 제일 신났어요?"
와우! 방금 전에 했던 '아이들의 유치한 질문을 받을 새가 있을 리가...'라고 생각한 나를 곤장 열 대 치고 싶다. 분명 어른들이면 이 주인공의 탄생비화, 주제의식, 연습기간 뭐 이런 걸 물어보았을 것 같은데.
퍼포머는 적잖이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질문 아닌가? 어떤 한 장면이 신났다고 하면 다른 장면은 상대적으로 덜 신났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니. 그녀는 조금 생각하더니 "너무 좋은 질문이에요. 그런데. 저는... 음. 여러분이 신나 하는 모습이 제일 신났어요!"라고 무난히- 넘어갔다. 하하. Clever!
이외에도 "그림자랑 언제 가장 많이 놀아요?" "그림자도 또 그림자가 생기나요?"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쭉쭉 늘어나는 저 주인공 인형은 무슨 재질이죠’ 같은 질문이나 하려던 내가 너무 민망해서 손을 내려버렸다. 부끄럽기 짝이 없군. 역시 아이들이 우리의 가장 좋은 스승인가.
일찌감치 숙제 하나를 마쳤으니 숙소에 짐을 풀자. 축제기간엔 에든버러 숙박비가 너무 비싸서 이 유학생은(!) 호텔은 그야말로 언감생심. 바로 호스텔에 묵는다. 침대 번호가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음식이름으로 되어있어 흥미롭다. 내 자리는 Deep Fried Mars Bar였는데 우리나라식으로 하자면 '두 번 튀긴 스니커즈 바'라고 보면 된다. 그 고열량 스니커즈를 한번 더 튀긴다고? 웩... 했는데 지나다니면서 이 메뉴를 파는 곳을 실제로 몇 번 보았다. 에든버러 사람들 위장 대단해-.
에든버러 성의 코앞에 위치한 호스텔은 지하로 3층, 지상으로 3층 규모의 꽤나 대형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다음 공연 시간이 다가오니 대충 갈아입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다음은 텅 트위스터.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예매했었다. 우리로 치면 간장공장 공장장 같은 발음연습 놀이를 각 나라의 언어로 하면서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인다. 이런 것도 공연이 될 수 있다고…? 다른 것보다도 오브제의 신박함과 만듦새가 너무 좋아서 연락처를 받아오고 싶었다. (일 생각 멈춰!)
Germany/France
티에벨레 공연에 대해서는 사실 기대치가 컸던 만큼 실망도 다소 컸다. 아프리카 문화와 트라이벌, 리추얼 같은 것을 통해 관객에게 흥을 주입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딱히 문화에 대한 고민은 읽히지 않고 둘이서 아프카 부족의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전통 안료로 유리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사진으로는 참 예뻤으나 현장 관객으로서는 상당한 소외감이 든 공연이다.
<그로운 업>도 꽤 흥미로웠으나 전기톱에 꽂힌 사과를 퍼포머가 받아먹는 장면이나 장난으로 혓바닥에 전기코드를 대보는 등 나의 관점으로는 다소 아찔한 장면들이 많았다. 이거, 괜찮은 건가?
<낫 폴링> 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을 던지거나 해하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종류의 공연에 불편을 느끼는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아이들이 낙하산 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나누어 주었는데 제목과는 연결되지만 공연 자체와의 연결고리가 없어서 다소 의아했다. 그래 다 좋으면 좀 그렇지. 그럴 순 없지.
이래저래 투덜댔지만 결론적으로 시간과 돈을 들여 올 가치가 충분, 또 충분했다.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들과 현장의 관계자들의 수다 엿듣기, 옆자리 사람과 갑자기 공연 평 하하기. 그리고 공연에 집중하는 아이들, 그리고 진지하게 눈망울을 빛내며 질문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던 것 만으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내 작품도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아 볼 수 있으려나.
*부록
그리고는 저번화에 이야기 한 공원에 들렀다. 날도 화창하여 천국이 다시없었다.
정원을 둘러보고 나오려니 여느 박물관이나 전시장들이 그렇듯 도네이션 박스가 눈에 띈다.
가지 끝의 구멍에 동전을 넣으면 가지로 동전이 또르르 굴러 기부가 된다. 재미난 경험도 제공하고, 의미도 있고.
그렇지. <그냥 카드 대고 기부하세요> 보다는 이런 감성적인 기부라면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까?
나도 열었냐고? 아. 그건 비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