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안 07

SF소설

by 시휴

내 직장 후배였다는 그와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퇴직 후에 계속 일할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소멸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인생 마지막에 다다른 것 같았다.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2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녀석과 나는 같은 영혼을 반씩 나누고 있는 것일까? 내 기억이 소멸된다면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로 사후 세계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몸이 죽을 때 가는 것일까? 영혼은 없는 것일까?’

그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한동안 퇴근 후에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고민들도 사라져 갔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S전자를 은퇴 전까지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 고속승진의 추세만으로 보아도 부사장까지는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전무 진급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하여 퇴근하려 하고 있었다.

“전무님, 저희는 보안팀 김명진 상무입니다. 잠깐 얘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순간, 출장 시 가족동반이 적발되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나? 아니면 그냥 단순한 보안 위반인가? 보안팀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상념이 머리를 지나갔다. 나는 불현듯 생각이 들어 사원증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나 오늘 사표 썼다. 미리 얘기 못해 미안하다. 예원 엄마하고는 이미 예전부터 얘기하던 거야. 예원 엄마 뜻이니까. 따라줘라. 부탁한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 상황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회의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자 보안팀 상무가 말을 꺼냈다.

“방금 사원증을 보시던데 혹시 사직하셨다는 메시지가 있으셨나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신 바와 같이 오늘부로 전무님께서는 퇴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회사 안으로 들어가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제가 왜 퇴사를 하게 된 거죠?”

“저희도 사실 당혹스럽습니다. 조금 있으시면 부사장으로 진급하게 되실 거고 사장까지 바라보실 수 있는 분이 퇴사를 결심하시다니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가정 문제가 있으신 것 같긴 한데. 오히려 제가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회사 안의 나와 아내가 자주 통화를 하기는 하는데 사실 제가 집에서 아내와 대화가 별로 없어서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자면 3일 전 갑자기 퇴사 의사를 밝히셨고 사장님이 극구 만류하셨지만 퇴사 입장을 밝히신 분에게 기술유출 우려가 있는 외부 기술협력 업무를 계속 맡길 수도 없다 보니까 사표 수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갑자기 결정된 거군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나요? 퇴사 후에도 3년간 기본급 수준의 연봉이 지급된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혜택을 못 받는 것은 아닌가요?

보안팀 상무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건 아마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저희가 따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중국의 ‘시나 퓨처’사에 입사가 약속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중국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후배가 제안을 하였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시나 퓨처사가 최근 우리 회사 직원들을 많이 빼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미 이직한 직원들로부터 제안을 받으신 것으로 저희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회사의 기억을 살려서 가겠군요? 그러면 회사에서는 어떤 법적 절차를 밟으실 건가요?”

“이미 대충 아시는군요. 말씀해 주셨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회사 안의 전무님은 기억을 살리는 시술을 받은 후 중국으로 가시겠다는 계획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중국 업체와 출장 중에 은밀히 협상을 했겠죠. 돈을 이미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살리시게 되면 저희와 크게 소송을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기억 보안 시스템 해킹 이후 천문학적 금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따라 형사고발도 이어집니다. 민사 소송액은 중국 업체에서 대주신다고 해도 형사처벌을 피하시기 힘드실 겁니다. 이미 이런 사례가 여러 건 있었는데 초기에는 집행유예로 끝났지만 지난번 최민석 상무 건은 1심에서 징역 3년이 나왔습니다. 항소를 하셨는데 아직까지 구속 중입니다. 괜히 감옥에서 고생하실 필요 없으시잖아요?”

보안팀 상무가 말을 이어갔다.

“길게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기억을 안 살리신다고 서명을 하시면 현재 퇴직금의 3배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타시는 차량도 무상으로 명의를 바꿔드리겠습니다. 기억 재생 포기 서약을 하시고 2달에 한 번씩 회사를 방문하여 시술을 안 받았다는 사실을 검증받기만 하면 됩니다. 편하게 사실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괜히 고생하지 마세요. 저는 사실 전무님이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저는 회사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지금 서명하시는 것이 좋으신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희의 지금 조건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보안팀 김상무는 반 협박조로 압박하였다.

“협조한다지 않습니까!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김상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내일까지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회의실을 나와 퇴근 차량에 몸을 실었다. 녀석은 내가 우려했던 대로 내 기억을, 영혼을 소멸시키려고 하고 있다. 둘의 기억을 모두 살리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부작용이 심하다고 들었다. 더구나 회사 안의 나와 밖의 나는 전혀 다른 인격의 사람이었다.

‘두 개의 인격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건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제3의 인격이 되는 걸까?’

나는 녀석과 뇌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녀석이었다. 분명히 녀석과 인격이 합쳐지면 정신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회사를 퇴사하고 나면 녀석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힘든 나날을 버텨왔다. 수백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동안 차량이 집 앞에 도착했다. 아내가 문 앞까지 나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아내가 오히려 나에게 먼저 퇴사 얘기를 물었다.

“퇴사했다는 얘기 들었어?”

“사원증 메시지를 통해서 확인했고 보안팀 임원하고 면담도 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이상한 데 서명하고 그런 것 아니지?”

아내는 꽤 자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서명은 아직 안 했어. 근데 내일쯤 할 것 같아.”

“들어와서 얘기 좀 해”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밥 먹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8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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