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회사안의 당신이 얘기하는 건데 시나퓨처하고 얘기가 다 되었대. 5년 임기의 기술개발 사장 자리를 보장해준대. 연봉도 여기하고 차이가 없고 기억보안 정책도 없다고 하던대. 나는 당신이 거기로 갔으면 좋겠어. 애들도 상하이로 가서 외국인학교 다니면 좋고.”
아내가 녀석과 오랫동안 상의해 온 것 같았다. 그녀의 반응을 살필겸 슬쩍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민사소송하면 배상금이 클 수도 있다고 들었어.”
“그것도 중국회사에서 다 내준다고 했어.”
아내는 문제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형사처벌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징역 살 수 도 있대.”
“아……. 그 얘기 들었구나. 운 좋으면 집행유예될 수도 있고 징역도 길어야 2년이라고 하던데. 시나퓨처에서 기다려줄 수 있다고 했어. 조금 고생해서라도 기억을 찾는게 좋지 않아?”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솔직히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것으로 감옥까지 가는건 싫어! 그냥 우리 이렇게 살면 안돼? 모아놓은 것도 충분하잖아! 기억재생 시술 안 하면 퇴직금 3배를 제안했어. 우리 그냥 이렇게 살자. 내가 일을 그만두기에는 좀 이른 나이긴 하지만 애들 교육시키고 여행다니고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내가 노력할게.”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반쪽 짜리와 평생 살려고 그 동안 이렇게 고생한 줄 알아? 당신이 집에 와서 한게 뭐가 있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냐고? 회사 안의 당신 기억만 살리는 방법으로 시술을 받을 수도 있대. 그러면 회사 안의 당신이 감옥에 가는거고 당신은 감옥 갔는지 안 갔는지 느낄 수도 없을거야. 그 동안 고생한 날 위해서 그렇게 해주면 안돼? 난 그 동안 이 순간 만을 기다려 왔다고!”
그녀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 달라고 말했다. 내가 악몽속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현실의 그녀 입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회사 안의 녀석은 아내와 살기 위해 이렇게 위험천만한 도박을 한 것이었다. 시나퓨처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전과자가 되고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 있는 것이었다. 녀석이 S전자에서의 성공을 포기하고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아내를 깊이 사랑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날 아내는 밤이 늦도록 나를 윽박지르고 울면서 사정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집요하게 요구할수록 아내와 녀석에 대한 증오만이 솟구쳐 올라왔다. 어쨌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어떤 말을 하던 기억재생은 하지 않을거야. 내일 회사에 가서 안하겠다는 서명을 할거야. 더 이상 긴말 필요없어.”
“그럼 이혼이야. 애들도 평생 못 만나게 할거야. 가족도 없이 10년전 기억만 가지고 평생 살아봐. 어디 취직도 못할거고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고 무시 당할거야.”
아내는 분노에 찬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이혼을 원하면 해줄게.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회사 안의 나를 영원히 볼 수 없을거야.”
그 말을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밖으로 나왔다. 등뒤에서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고 나오는데도 집밖까지 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슬픔이 가득찬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복수했다는 희열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잔인한 내 자신이 너무 불편했다.
재산의 80%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이혼에 합의하였다. 아이들이 풍족하게 살기를 바랬다. 그리고, 나는 그리 큰돈이 필요 없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가정법원을 함께 나오면서 나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왜 혼자 되었냐고 물으면 사별했다고 얘기할거야. 당신이 죽인거야.”
“그렇게 해. 틀린 얘기도 아니니까.”
“아이들은 앞으로 볼 수 없을거야.”
양육권은 아내에게 넘겼지만 자녀 면접권을 보장받았기에 그녀의 말은 억지에 불과했지만 괜히 말 섞기가 싫어서 그렇게 하겠다 하고 헤어졌다.나는 그 후 소규모 투자로 스타트업을 시작하였다.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했지만 10년간의 공백을 메우기는 어려웠다. 40대의 노련함도 없고 30대의 열정도 없는 애매한 사람이 되었다. 결국 재산의 반을 날리고서야 사업을 접을 수 있었다. 한번 실패하고 나자 겁이 생겨 더 이상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나머지 반이라도 지켜야 노후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직장을 구해보았지만 기억보안에 대해 대부분 기업이 알고 있다보니 S전자에서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집에 쳐박혀 있는 삶을 선택하였다. 아내는 아이들을 안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보고 싶다고 연락하니 만나도록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마 아내가 아이들에게 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았다. 아이들과 서먹한 분위기가 반복되자 나도 점점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퇴직하고 5년이 지난 요즘 책읽고 TV보고 운동하고 간혹 예전 친구 만나는 별로 재미있을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팔자 좋다고 하지만 내가 원하던 삶은 아니다. 간혹 방송에 내가 개발한 식품용 3D 프린터에 대해 나올 때가 있다. 인류의 기아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기사가 나올 때면 최초 개발자로서 내 이름이 거론되곤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로 소개될 때도 있다. 퇴사하고 나니 녀석이 굉장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재수없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꽤 성실하고 열심히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도 녀석을 더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간혹 녀석과 사원증을 통해 티격태격할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녀석은 아내 말처럼 죽어버린 것일까? 5년이 지난 지금 회사의 기억을 살린다면 녀석이 다시 살아나는 것일까? 그 인격 그대로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녀석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의 반쪽으로 살고 있는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정신연령이 낮은 불안정한 인간에 불과한데…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