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안 06

SF소설

by 시휴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유럽여행 어땠어?”

“….”

아내는 말없이 나를 무심한 듯 쳐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예원이만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회사 안의 녀석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아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건넌방에서 잠을 잤다. 그때부터 한동안 아내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도 다른 방에서 잤다. 집에서 식사도 하지 않았다.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원 아빠, 나 둘째 가졌어. 2개월째야. 어제 산부인과에서 확인했어.”

“…..”

“당신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아내와 관계를 안 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생긴 애가 확실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도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 후로 형식적인 대화는 간혹 하곤 했지만 예전처럼 관계가 회복되지는 않았다. 입덧을 할 때도 애를 나을 때도 옆에는 있어 주었지만 사랑이 담긴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녀석에게 아내를 뺏긴 이후로는 마지막 남은 사랑마저 증발해 버렸다. 아내는 처음부터 그 녀석의 여자였고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녀석은 임원이 된 지 3년 만에 전무가 되었다. 다른 상무에 비해서도 3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연봉을 받게 되었다. 전무를 3년만 해도 노후 걱정은 문제없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전무가 되니 상무 때보다 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아내와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나에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서너 달에 한 번씩 녀석의 출장에 동행한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생각하여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거나 따로 여행을 가곤 하였다. 적막하고 의미 없는 인생이었다.

내가 퇴직 후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때쯤이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었다. 지루한 밤을 집에서 혼자 보내기 싫어서 심야 영업을 하는 할인마트에 갔다. 다음날 먹을 것도 사놓을 겸, 사람 구경도 할 겸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아는 척을 하였다.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아! 전무님 되셨죠?”

나는 알지 못하는 회사 동료나 거래처 사람이려니 하고 그냥 미소만 지어 보였다.

“아, 기업 보안 때문에 저를 못 알아보시겠구나.”

“저는 정기훈이고 전무님 밑에서 7년 넘게 일했습니다. 지금은 S전자를 나와서 다른 데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다 불현듯 이상함을 느꼈다. 어떻게 이 사람은 퇴사 후에도 회사 일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

“회사 기억을 갖고 계신가 보네요?”

“말하자면 긴데, 저는 회사 기억을 살렸죠. 살리지 않으면 취업이 어려우니까요. 요즘 꽤 많이들 합니다.”

그 사람은 목소리를 죽이면서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죠? 입사할 때 서명을 해서 법적으로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전무님, 세상 일에 신경을 안 쓰셔서 잘 모르시는군요. 시간 괜찮으시다면 잠깐 차 마시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혼자 와서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 둘은 카페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저는 중국 회사 다닙니다. 가족도 거기 다 있습니다. 출장차 잠깐 들렀다가 잠이 안 와서 여기 나와 봤습니다. 호텔이 이 근처거든요. 중국 업체들이 요즘 S전자 직원들을 채용하려고 난리예요. 그래도 중국보다 기술적으로 앞선 곳은 S전자뿐이잖아요.”

“이직을 위해 기억을 살리게 되면 S전자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옵니다. 이직하는 중국 업체에서 손해배상 소송액을 부담해주는 조건으로 옮기니까 그건 그나마 괜찮습니다. 제일 골치 아픈 게 형사처벌입니다. 기억 보안을 살려서 넘어가는 경우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어요. 제가 2년 전에 퇴사했지 않습니까? 근데 소송 때문에 이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이 핵심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로 진행되었습니다. 유죄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히도 집행유예를 받아서 감방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죠. 손해배상액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저 정도면 잘 풀린 편입니다.”

“어떻게 회사의 기억을 살려냈죠?”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하기는 어렵고요. 중국에 가면 꽤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하나는 약물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불법 의약품인데 FDI 승인도 안 받은 겁니다.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꽤 위험하지만 예전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입원해서 주사약을 맞으면 그게 뇌에 있는 나노로봇을 부식시켜 망가뜨리는 겁니다. 그게 사실 독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약을 맞고 제독하고를 일주일 반복하고 나면 사람이 거의 폐인이 됩니다. 몸을 다시 추스르는데만 6개월이 넘게 걸리는데 후유증도 심하다고 합니다. 근데 그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회사 안의 기억과 밖의 기억이 모두 살아나니까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억 보안 시스템에서 3년 이내 정도만 일한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데 그것보다 길게 근무한 경우에는 이중인격 비슷하게 되는 거죠. 심하면 정신분열증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S전자에서도 퇴직할 때 그런 부작용을 얘기하면서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어요. 어쨌든 요즘은 약물요법은 거의 안 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간단한 건데 기억 보안 시스템을 다른 곳에서 작동시켜서 회사 안의 기억을 살리는 거죠. 그게 제일 쉽습니다. S전자의 기억 보안 시스템이 2년 전에 해킹 됐거든요. 중국 놈들이 못하는 게 없어요. 그냥 계속 회사 안의 기억 모드로 사는 거죠. 뭐 간단합니다. 기억 보안 시스템을 계속 켜 둔 채로 두세 달 정도 되면 활성화된 나노 로봇 중에 일부 모드가 바뀌는 것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불법 시술 업체를 방문하여 처리를 받으면 됩니다. 아시겠지만 한 번에 1분도 안 걸리고요. 간단합니다.”

기억 보안 시스템이 해킹당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회사 안의 녀석은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신문도 별로 안 보고 세상과 담을 쌓다시피 살다 보니 알지 못했다.

“시스템이 해킹되었으면 S전자에서는 가만히 있었나요?”

“그게 워낙 불법으로 암암리에 되는 거니까 잡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대부분 외국에서 되는 것이라. 제가 듣기로는 시스템 해킹 이후 입사자들은 보안이 더욱 강화된 나노로봇을 주입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전 입사자들은 방법이 없죠. 나노로봇을 교체할 수도 없고 추가로 넣었다가는 뇌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요즘은 손해배상 소송을 집요하게 한다고 합니다. 정부와 협조하여 산업기술보호법 처벌도 강해지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무조건 구속 수사 원칙이라던데요.”

“그럼 회사 밖에 있던 자아는 사라져 버린 건가요?”

“저도 그게 좀 아쉽죠. 회사 밖에서 만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고 가족들과 쌓았던 기억도 사라지는 것이니까. 회사 기억을 살리는 결정은 회사 밖의 내가 해준 거니까요. 뭐 먹고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었죠. 저는 부장까지 하고 나왔으니 회사에서 퇴직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겨우 먹고만 살 수 있는 정도죠. 애들 교육까지는 어렵거든요. 가족들은 기억이 없어진 것 말고는 그전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기억만 반씩 나눠 가졌을 뿐 같은 사람이잖아요. 아내는 좀 낯설어하는데 애들은 더 좋아합니다. 애들은 적응이 빠르니까요. 오히려 아빠가 더 똑똑해졌다고 좋아합니다.”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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