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안 04

SF소설

by 시휴

그녀의 이름은 ‘강지원’. 남자 이름 같았지만 첫인상은 너무도 여성스럽고 아름다웠다. 실물이 몇 배 더 예뻤다. 첫 만남 후 집에 돌아가는 동안 내 상상은 그녀와의 결혼 생활까지 도달해 있었다.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기에 연애를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S전자 다니신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G1리서치에 다녔죠. 얼마 전에 상장해서 신문에도 많이 나왔었죠. 계속 G1리서치에 다녔었다면 주식 대박을 맞았겠지만 S전자로 옮겨서 더 좋습니다.”

“부장이시라고 하던데….”

“네 부장입니다. 제 나이에 비해 빠른 편이죠.”

“젊으신 나이에 굉장하시네요. S전자에서 어떤 성과를 내셨길래.”

“……”

“하하, 사실 제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네?”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그녀에게 나의 능력을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다. 대신 기억 보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의 기억 보안에 대해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고 했으나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나의 무지함에 대해서는 다소 실망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녀에게 수차례 애프터를 신청하고 가까스로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항상 최고급 식당을 예약하고 만날 때마다 고가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회사 안의 녀석에게 약속 일정에 맞게 미리미리 퇴근을 부탁하여 데이트 시간에 한 번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그녀와 만난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만 소유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녀석의 집요한 추궁이 시작되었다.

"너 요즘 뭐하냐?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써? 약속도 부쩍 많아지고. 여자 만나?"

나는 알려주기 싫었지만 눈치 빠른 녀석이 카드를 정지시키겠다는 둥 약속을 펑크 나게 하겠다는 둥 협박을 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상을 알려주고 만날 때마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녀석은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랑 보는 눈이 같을 테니 이상형이었을 거다.

S전자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녀석에 비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만 만날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한 독점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녀석에게 그녀의 존재를 얘기한 지 한 달도 안되어 그녀는 녀석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 회사에서 오빠가 전화했었어. 기억 못 하지? 정말 못해?”

“…….” 나는 너무 놀라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녀석이 회사에서 사적인 전화를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근무 중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이 허용되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회사 기밀이 유출되는지 항상 모니터링되고 있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보안 문제가 없더라도 빈도가 많으면 보안팀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출세 지향적인 녀석은 조금이라도 구설수에 오를까 봐 절대로 사적인 전화는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녀석과는 통화한 적이 없으셨다.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을 때도 ‘회의 중입니다. 급하시면 문자를 남겨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면 퇴근 후 내가 전화하고는 했었다. 그런 녀석이 그녀에게 전화를 하다니 놀랄 일이었다. 그녀는 녀석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회사에서의 오빠는 지금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 훨씬 더 씩씩하고 목소리가 멋있었어. 아는 것도 많아 보이고 ……”

그녀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다소 들뜬 목소리로 녀석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사랑에 빠진 친구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지만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그녀가 녀석을 알게 된 후부터 예전보다 나에게 더 잘했다. 우리는 이제 완전한 연인이 되었다. 녀석은 그녀에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우리의 사랑은 정말 순조로웠다.

그 일이 일어난 건 만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날은 만나기 전부터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메신저로 주고받은 그녀의 말투가 영 침울한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였었다. 그녀는 만나서도 무슨 일 있냐는 나의 대답에 아무 말 않고 울 것 같은 표정만을 하고 있었다. 만난 지 30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오빠… 나 임신했어.”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그녀와 한 번도 관계를 맺지 않았었다. 결혼을 생각하는 진지한 만남이었기 때문에 지켜주고 싶어서 스킨십 진도를 최대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키스를 한지도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었다. 다음 달 휴가 때 함께 여행을 가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누구 … 애야?...”

그녀는 들고 있던 냅킨 뭉치를 던지면서 소리쳤다.

“오빠 애라고!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녀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지나 울음이 그칠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회사 안의 오빠와……”

그 순간 미칠 것 같은 분노가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증오, 당혹감, 미안함이 섞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운 그녀는 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녀석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간혹 업무상 외출을 하였고 그때마다 수 차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기억 보안 정책상 녀석은 회사 밖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에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늦은 밤까지 그녀의 긴 얘기를 듣고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그녀를 외부에서 만나는 것이 회사 정책상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녀에게 자세한 얘기를 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회사는 보안정책상 사내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출장이나 외출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했다. 만약 외부 미팅이 필요할 경우 회사로 초청하여 접견실을 이용하도록 권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부처 공무원처럼 반드시 직접 방문해야 할 경우가 있고 그러면 임원 결재를 받는 조건으로 사내 기억을 유지한 채 외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외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로열티가 검증된 소수의 인원으로 제한되는데 녀석은 자신이 회사의 핵심인력이므로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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