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퇴원 후 첫 출근 날, 기억 보안의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출근하여 보안 검색대를 지나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고 퇴근해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 중간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과음을 하고 필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수면내시경을 했을 때의 느낌과도 유사했다. 처음 몇 달 정도는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희미하게나마 회사에서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하였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 복도의 이미지 등 마치 꿈을 꾸는 것은 몽환적 잔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몇 달마저 지나가 버리자 인생의 반을 잃어버린 것처럼 회사 안에서의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 1년간은 회사 다니는 괴로움 없이 쉬는 즐거움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늦게 끝나기는 하였지만 전 직장처럼 밤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주말에도 간혹 쉬고는 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수입이 넉넉하다 보니 짧은 여가시간이라도 남 부럽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휴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무가 바빠지면서 회사 밖의 나는 출근, 퇴근, 잠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침 6시에 지친 몸을 일으켜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가면 그다음 순간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회사 앞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지만 워낙 늦게 끝나다 보니 잠잘 시간도 부족하였다. 예전에는 회사가 힘들어도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나 S전자에 입사한 이후에는 회사 업무를 알 길이 없으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퇴직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많아졌다. 그러나, 사표를 쓰는 것은 회사 안의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방법이 없었다. 그 녀석은 회사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 안의 나와 회사 밖의 나는 회사에서 지급된 사원증을 통해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사원증에는 작은 디스플레이와 마이크, 스피커가 달려 있는데 음성 녹음이나 문자로 전달사항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보안을 위해 네트워크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스피드게이트 통과를 위해 사원증을 태그 할 때 저장된 메시지가 검열되고 문제가 있을 경우 보안팀에서 조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퇴근할 때 사원증의 내용으로 보안팀에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회사 안의 내가 보안 정신이 투철하였기 때문인지 보안팀에게 조사받은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덕분에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원증에 남겨진 내용은 주로 아침에 회의가 있으니 30분만 일찍 출근해 달라거나 연휴에 모두 출근해야 하니 다른 약속을 잡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말투는 항상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식이었지만 나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대한 반감으로 나도 사무적으로만 대하였다. 퇴근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회사 안의 내게 부탁하는 일은 주로 휴가를 요청하는 일이었다.
회사밖 나 : 다음 주 금요일에 캠핑을 가야 하니 휴가가 가능한지 확인 바람
회사안 나 : 그날은 실장님 보고가 있어서 도저히 휴가를 낼 수 없어. 미안해
회사밖 나 : 자꾸 이런 식이면 무단결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바람
회사안 나 :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너도 알잖아. 이번 달 말에 진행 중인 개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일주일 휴가를 낼게. 조금만 참자. 사랑해 나의 반쪽
물론 나의 반쪽이라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였지만 회사 안의 내가 나에게 ‘나의 반쪽’이라고 부를 때마다 불편한 기분을 참기 어려웠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정신적으로 탈진해 버렸다. 어떻게든 회사에 충실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은 떴지만 그날따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점심때까지 누워있었다. 회사에서 계속 연락이 왔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날 하루는 멍하니 집에만 있었다. 저녁이 되니 조금 의욕이 돌아왔다. 다음 날은 정상 출근하였다. 무단결근 다음날 퇴근 무렵 사원증에는 나 자신으로부터 처음 들어보는 분노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야! 너 때문에 상무님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어제는 진짜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네가 다 망쳐버린 거야. 하긴 네가 뭘 알겠냐! 어쨌든 한 번만 더 네 멋대로 회사에 안 나오면 다음 달 월급 전체를 기부해 버릴 거야! 한번 돈 없이 살아봐! 그래야 내 고마움을 알지.”
그때가 처음이었다. 회사 안의 내가 나에게 ‘너’라고 말한 것이. 그 후부터 항상 나를 ‘너’라고 지칭하였다. 나도 ‘너’라고 부르거나 화났을 때는 ‘당신’으로 부르게 되었다. 3년 차가 되었을 때 회사 안의 그 녀석은 부장으로 진급하였다. 그것도 녀석이 얘기해 주지 않았다. 사원증이 교체되고 월급이 오른 것을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만나서 대화할 수 없으니 서로 풀 방법도 없었고 사원증을 통한 대화는 너무 일방적이고 오래 걸렸다. 간혹 넋두리 같은 것을 녹음하고는 하였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적이 없었다. 나도 녀석의 넋두리에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공허한 메아리만을 반복하였다.
녀석은 부장이 되고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 오히려 3년 전에 비해 업무지식도 줄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부장 되고 얼마 되지 않아 TV에서 녀석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내가 TV에 나온다며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회사의 신기술을 소개하는 기업탐방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식품용 3D 프린터를 설명하는 인터뷰였다. 회사 안의 나를 화면으로나마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녀석은 성공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를 하고 있었다. 나도 G1리서치에 다녔을 때는 저런 모습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진짜 그랬던 것인지 그랬던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지 가물가물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TV 속의 나와 TV를 보는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회사에서의 3년이 녀석을 어떻게 바꿔놓은 것일까? TV에서 녀석의 얼굴을 본 이후 한 달간은 불쾌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부장으로 진급한 이후 좋아진 것이 있었다. 예전보다 업무 강도가 조금 약해졌다. 휴가를 내기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하면 그에 맞게 퇴근할 수 있었다. 토/일요일 중 하루 정도는 쉴 수 있게 되어 주말 약속도 잡을 수 있었다. 여유가 좀 생기니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이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으니 근 8년 만이었다.
마침 오랜만에 나간 대학 동기 모임에서 여러 명에게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동기 대다수는 과장이었고 나는 국내 최고 기업의 부장이다 보니 소개팅 상대로 몸값이 높았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집에 들어와 소개팅 상대의 사진을 검색해 보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보았다. 어차피 시간도 부족한데 여러 명 만나면서 시간을 쓰기는 싫었다. 생각보다 고민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달리 눈에 띄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군계일학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 즉시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