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보안 01

SF소설

by 시휴

2033년 9월 18일 화요일 오전 7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비서 로봇 ‘레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평소처럼 스케줄과 밀린 이메일을 읽어 주었지만 잠이 덜 깨어 무슨 내용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연구결과를 확인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 퇴근하여 3시간도 채 자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되기는 했지만 그러면 일정 내에 개발을 완료하기 어려울 것 같아 억지로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아침식사도 거르고 옷을 입고 있는 중에 ‘레오’가 읽어주는 이메일의 단어 하나가 귀에 꽂혔다.

‘S전자’

정신이 번쩍 들어 이메일을 다시 확인하였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입사확정 통지였다. 어제 오후 받은 이메일이었지만 연구에 정신이 팔려 미처 확인 못한 것이었다. 이메일에는 연봉협상과 입사 관련 서류 작성이 필요하니 금일 오전 9시까지 본사로 방문하라고 적혀있었다. 이메일을 전날 오후에 보내고 그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회사로 와 달라고 하다니 역시 세계 1위 기업같은 안하무인격 자세였다. 2시간밖에 여유가 없었다. 일단 회사에 부모님 건강 문제로 급한 볼일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고 목욕을 시작했다. 입을 일이 없어 옷장 구석에 모셔 놓았던 양복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맸다.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올라 타니 도착 예정시간이 8시 45분으로 표시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택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대학 시절의 나는 S전자에 누구보다 들어가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대학 1학년 때 선배들이 졸업하고 뭐 할 거냐고 물으면 언제나 S전자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라고 얘기하곤 하였다. 1학년이 벌써부터 대기업 취직이나 따진다고 면박을 줄 때도 꿈을 바꿔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 꿈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큰 외삼촌은 S전자의 펠로우급 연구원으로서 사내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분이셨다. 한국의 인공지능이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했다. 외삼촌은 S전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큰 연구를 할 수도 없었고 성과를 낼 수도 없었을 거라며 항상 회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어머니도 외삼촌 얘기를 입에 달고 사셨는데 항상 얘기의 끝은 열심히 해서 외삼촌 같은 훌륭한 분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가 듣기 싫을 때가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S전자에 들어가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하던 해, S전자 입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말았다. 다른 회사 몇 군데에 붙기는 하였지만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하였다. 어차피 연구자로 성공하려면 최소 대학원은 나와야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2년 후 대학원 졸업 직전 또다시 입사지원을 하였지만 두 번째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갈까 고민도 하였으나 어머니가 더 이상 지원해줄 마음이 없으신 것 같았다. 결국 대학 졸업할 때 붙었던 회사보다도 더 작고 영세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회사 이름은 G1리서치, 3세대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연구 중심의 스타트업이었다. 입사 당시에는 아직 매출도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 30명 내외의 작은 회사였다. 열정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만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장할 때까지 기다려 스톡옵션으로 큰돈을 벌거나 일을 배워 다른 스타트업으로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나만 조금 달랐다. 연구성과로 업계에서 인정받아 S전자에 경력직으로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 내가 동기부여 측면에서 더 유리하였던 것 같다.

회사 구석에 간이침대를 갖다 놓고 죽기 살기로 일했다. 일반 직원에 비해 두 배는 더 열심히 했다. 집에 안 들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사장이 반 협박으로 집에서 하루 쉬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4년을 죽기살기로 일해서 시제품을 시장에 선 보일 수 있었다. 당시 반응은 뜨거웠다. 투자자도 늘어나 회사 여건도 좋아졌다. 투자액에 비례하여 나에 대한 사장의 신임도 두터워졌다. 가장 기뻤던 것은 외부에 연구 책임자로 소문이 나서 업계 네임밸류가 높아진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스타우트 제의도 받았다. 사장도 이직이 걱정되었는지 연봉도 올려주고 파격적 스톡옵션도 약속하였다. 하지만, 나는 S전자의 경력직 공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톡옵션 액수가 크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다.

G1리서치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던 해, 비로소 S전자에 다니는 대학 선배로부터 입사제의를 받을 수 있었다. 기회를 봐서 경력직 모집 공고가 뜨면 입사지원을 해야지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지, 먼저 입사 제의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선배의 추천에 따라 정식으로 입사지원을 했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입사였지만 생각보다는 담담했다. 마무리 짓지 못한 기술개발이 아쉬웠고 5년을 가족처럼 고생한 사장과 동료에게도 미안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을 바라 왔던 꿈을 눈 앞에 두고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였다.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무인택시는 S전자 본사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거대한 건물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로비의 안내 데스크에 방문의사를 밝히자 복잡한 출입 확인 절차가 시작되었다. S전자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보안에 민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당하는 입장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0분간의 다양한 스캐닝과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서야 채용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채용 담당자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다소 가식적이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전형적인 S전자 스타일의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죠? 외부인 출입 절차가 갈수록 복잡해지네요. 저희도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에게 너무 죄송스럽고 일하기도 번거롭지만 회사 정책이 그러니 어쩔 수 없네요. 많이 당황하셨어요?”

“아닙니다. 이렇게 철저한 출입 절차는 처음이었지만 그만큼 굉장한 회사에 입사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채용 담당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약간의 거짓을 섞어 대답하였다.

“이렇게 우수하신 분을 저희 회사에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이직에 대한 생각은 정리하셨나요? 지금 다니시는 회사를 퇴직하는데 문제는 없으신가요?”

“네, 문제없습니다. 작은 회사다 보니 근로계약서가 복잡하지도 않아서 동일업종 이직을 제한하는 계약조건도 없고요. 아직 사장님께 말씀은 안 드렸지만 제가 그동안 박봉에 회사에 봉사해 주다시피 일해서 뭐라고 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좀 아쉬워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죠.”

“네, 알아서 잘 마무리하시리라 믿습니다. 혹시 이직에 문제가 있으실 경우 입사날짜를 조금 유동적으로 하실 수 있으니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그리고, 이건 저희 연봉 조건입니다. 워낙 이 바닥에서 유명하신 분이다 보니 저희 전무님께서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연봉계약서를 내밀었다. 5년 경력임에도 10년으로 인정해주고 연봉도 같은 직급에 비해 50%를 더 주는 조건이었다. 지금 회사에서 받는 돈의 3배가 넘는 액수였다.

“지금 보시는 것은 기본 연봉입니다. 인센티브는 개인, 팀, 회사 성과와 연동되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모두 최고로 받으신다면 최대 연봉의 3배까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그렇게 최대로 받기는 어려우실 것이고 어느 정도의 성과만 내신다면 연봉만큼의 인센티브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받고 있고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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