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훈씨는 집중은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업무를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일어섰다. 팀원이 혼자이다 보니 혼자 식사하는 것에 익숙했다. 지하의 웰스토리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머리나 식힐까하며 산책을 나섰다. 얼마를 걸었을까 멀리서 광채가 느껴졌다. 다가갈수록 광채가 짙어졌는데 고3때 느꼈던 바로 그 여신의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정확히 보자 눈코입이 바르게 생기고 청순해 보이는 것이 상당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미인은 강남역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였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짝사랑 정도는 괜찮잖아.”하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 뒤로 임도훈씨는 점심 시간에는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산책을 하였다. 매번 비슷한 위치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둘째 날 처음 눈을 맞췄었는데 갈수록 눈 맞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달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마주쳤는데도 머리 뒤의 광채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 때 부터인가 멀티백이 그녀를 추천하지는 않을까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예비교정국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뇌파와 행동패턴을 분석해보니 스토킹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귀신 같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산책하는 것 이외에 그녀를 따라가거나 신상을 뒤지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예비교정국은 경고만하고 돌아갔다.
두 달째가 지나자 멀티백으로부터 추천이 왔다. 그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이었으나 산책 중에 마주치는 그녀는 아니었다. 그는 인생 처음으로 멀티백 추천을 거절하였다. 거절한다고 해서 산책녀가 추천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번 추천 거절을 하면 커플 매칭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추천받을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었지만 산책녀 이외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를 매일 마주친지 세 달이 되었을 때 그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하지 않을 해괴망측한 일을 생각해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려웠으나 왠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 비슷한 것이 생겼다. 마음을 먹은 다음날 점심 시간이 되어 그는 산책을 나갔다. 그의 마음가짐은 산책이라기 보다는 전투에 임하는 전사와 같았다. 저기서 그녀가 다가오자 그는 용기를 내어 이름을 물어보았다.
“저 안녕하세요. 저는 임도훈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녀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으나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고민희인데요. 왜 그러시죠?”
“민희씨, 세 달동안 매일 당신을 봐 왔습니다. 당신은 나의 이상형입니다. 혹시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녀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그의 행동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달아나듯 가 버렸다. 임도훈씨는 그날 저녁 또 예비교정국의 경고를 들었다. 이번에는 엄중경고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는 산책을 나갔다. 그녀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역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위치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면서 웃는 건지 화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명함을 건네고는 가버렸다. 그 순간 임도훈씨는 평생의 모든 굴욕과 좌절을 상쇄할 만한 극치의 승리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온 임도훈씨는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그날 저녁의 만남을 통해 민희씨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6개월 후 고민희씨에게 멀티백이 다른 남자를 추천해 주었으나 민희씨는 불량시민이나 된듯이 추천을 무시해 버렸다. 임도훈씨가 자연산이라면 멀티백 추천남은 양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기묘한 러브스토리는 입소문을 타고 마침내 TV 와 신문에 소개되었다.
임도훈씨와 고민희씨는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길거리에서의 이러한 자발적 매칭은 단군이래 처음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어느 풍속학자가 이러한 커플 매칭이 1990년대말에서 2000년대초에 대중적으로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당시에는 이것을 ‘길거리 헌팅’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믿기 어려운 연구였으나 이 연구 이후 임도훈씨의 별칭은 ‘Hunter'가 되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