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너무 파격적인 대우에 머리가 하얘질 정도였다. G1리서치 사장이 제시한 스톡옵션으로 주식 대박이 난다고 해도 S전자에서 몇 년만 일하면 비슷한 수준이 될 것 같았다. 대학, 대학원 졸업 때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며 대기업에 취직한 동기들을 미친 듯이 질투했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내가 그들보다 높은 직급에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근무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근로계약서,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법적으로 입사를 확정 지었다. 채용담당자는 개인 신상에 대한 간단한 확인 질문을 한 후 교육일정, 배치부서, 복리후생 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복리후생은 외부에서 들은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전국 대부분의 리조트를 회원가로 이용할 수 있었고 자기 계발을 위한 학원비도 지원된다고 했다. 회사 내에는 피트니스 센터, 사우나, 안마실 등 지원시설이 있어 밤샘을 하더라도 집처럼 편하게 쉬면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무강도가 세다는 것을 제외하면 국내 최고의 근무여건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듯했다. G1리서치에서 매일 새벽 퇴근에 휴일 없이 일해 왔던 나로서는 어떠한 업무강도라 해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담당자는 3~4장짜리 서류를 주면서 서명하라고 하였다. 개인정보보호 서약서였다.
“형식적인 것인데요. 그래도 한번 쭉 읽어보시고 사인하세요. 저희 회사는 업무 부진으로 해고되는 경우는 없지만 부정과 정보보안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합니다.”
이런 서약서는 지난번 회사에서도 서명한 적이 있었다. 대충 사인하고 싶었지만 꼼꼼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외부 메일 계정 사용금지, 파일 및 종이문서의 외부 반출 금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이어졌다. 역시 보안에 빈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항목에서 눈이 멈추었다.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7-5. (임직원 기억 보안) 임직원이 회사에서 취득한 모든 기억은 회사의 고유한 자산이며 절대 외부로 유출될 수 없다.
- 모든 임직원은 예외 없이 기억 보안을 위한 회사의 정책에 따라야 하며 이에 불응하는 것은 해고사유가 된다.’
기억 보안이라는 표현도 처음이었지만 사내에서의 기억이 회사의 고유자산이라는 표현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 기억 보안이라는 항목은 뭐죠?”
“아…. 그거요? 기억 보안이라고 들어본 적 없으세요? 우리가 기억 보안 정책을 도입했다는 것이 보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업계에 꽤 소문이 났다고 들었는데…. 저희 회사에 지원하실 정도였으면 알고 계실 줄 알았어요. 모르신다고 하니 간단하게 설명드릴게요. 말 그대로 임직원들의 기억을 외부로 못 가져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동안 문서보안, 전화 보안, 인터넷 보안 등을 지속 강화해 왔지만 아무리 강화한다 해도 직원들이 회사 밖에서 말하고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보니 조금씩이나마 기술이 유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핵심인력이 경쟁사로 이직해버리면 그 사람 머릿속의 지식이 통째로 경쟁사에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의 업무과정 중에 생성된 기억을 외부로 반출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동안 너무 연구에만 집중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S전자에 그런 정책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기억을 외부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어떻게 회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죠? 제가 뇌과학이나 인체공학은 잘 몰라서 이해가 안 되는데요.”
기억을 잃게 하는 약을 먹이거나 최면을 거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차마 질문할 수 없었다.
“저도 기술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은 잘 모르는데 저희 회사에서 직접 개발해서 특허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간단한 시술이 필요한데 한 명에 대한 시술비용이 평균 연봉의 2 ~ 3배쯤 됩니다. 그만큼 보안에 투자하는 거죠. 기술이 유출되면 후발 주자에게 따라 잡히는 건 시간문제니 까요. 저희가 30년간 세계 1위를 지속하면서도 경쟁사와의 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철저한 보안정책 덕분입니다.”
“입사하시게 되면 나노 로봇 수만 개가 들어간 주사를 맞게 되실 겁니다. 로봇들은 뇌 호르몬에 반응하기 때문에 온몸의 혈관을 따라 돌다가 하루 정도 지나면 모두 뇌에 정착되게 되죠. 이 로봇들이 뉴런과 시냅스를 선택적으로 활성화, 비활성화시킴으로써 회사에서의 기억을 지우는 겁니다. 로봇은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회사에 있을 때 활성화되고 다른 것들은 퇴근 후에 활성화됩니다. 그렇게 뇌를 반으로 나누어 쓰는 거죠. 뇌를 반만 쓰면 머리가 나빠지지 않느냐고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의 뇌는 무한하니까 반만 써도 천재적인 발상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2달 전부터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잡념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머리가 더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아마 집에서도 회사 일 걱정 안 하니까 좋을 겁니다. 물론 회사에 있을 때는 퇴근 후의 기억을 안 가지고 있으니까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할 수도 없지만 말이죠.”
“그럼 회사에서의 기억을 전혀 외부로 가져가지 못한다는 건가요? 회사에서의 기억 중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기억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그건 어떻게 하죠?”
“회사 내에서 사적인 생각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복무규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채용 담당자는 단호했다. 물론 회사 내에서 딴생각을 안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의 기억을 회사에서 빼앗아 버린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몰려왔다.
“그럼 퇴직할 때는 기억을 돌려주나요?”
“아니요. 업무상 취득한 지식과 기억은 모두 회사의 자산이므로 퇴직할 때도 회사에 놓고 나와야 합니다. 직원들은 연봉으로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습니까?”
채용 담당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순간 그토록 바라왔던 입사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정보보호 서약서 서명을 거부했다면 입사가 취소되었을 것이다. 입사 확정 소식을 듣고 자랑스러워하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 고민하였지만 결국 다른 질문 없이 서명하고 말았다.
입사 이틀 전 혈관에 0.3~0.4 나노미터의 초소형 로봇 약 35,000여 개가 주사되었다. 주사를 맞은 이후 하루 동안은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로봇이 뇌에 모두 정착될 때까지는 24시간이 소요되고 혹시 몸의 거부반응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해야 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