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둘이 일과시간 중에 관계한 것을 회사에서 알게 될 경우 해고뿐만 아니라 민사소송당할 수도 있다고 하였고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조차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녀석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녀석은 회사 안에만 있어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 상의하라고 했단다. 무책임한 녀석이었다. 그녀도 녀석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를 녀석에게서 떼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뱃속의 아이는 내 DNA 아닌가? 마음은 아니었지만 생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나의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그녀가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내심 싫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성심성의껏 위로해 주었다. 그녀를 다독이면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녀석에게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2주의 휴가를 요구하였다. 회사가 바쁘다고 하였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결국 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녀는 애를 지우기 싫어했기에 빨리 식을 올리자고 했다. 녀석은 육체적 즐거움을 독차지했고 양가 부모님께 욕먹는 일은 내 몫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부모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속도위반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지만 결혼을 허락해 주셨다. 그녀의 집에 갔을 때가 문제였다. 장인어른은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셨다. 그러고는 크게 몇 마디 화를 내시고 집을 나가버리셨다. 그 모멸감과 씁쓸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사의 녀석이 한 일이고 나는 책임 없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가에 출근하듯이 일주일 동안 매일 찾아갔고 무릎 꿇고 읍소를 드렸다. 장인어른은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하셨다.
결혼하고 6개월이 지나 예쁜 공주님을 얻었다. 친구관계도 모두 끊고 아내와 딸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내가 관계해서 낳은 아이는 아니 지었만 내 아이처럼 사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나의 진짜 첫날밤은 아이를 낳은 지 6개월 정도 지나서였다. 좋았지만 기대했던 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내의 무덤덤한 반응이 나를 위축시켰다. 애가 생기니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겼다. 회사 안의 녀석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다. 운동도 틈틈이 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녀석과 사원증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는 여전히 출근시간과 휴가 일정을 맞추는 것 밖에 없었지만 감정이 상할 일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녀석의 회사 생활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녀석에게 배신감을 느낀 이후 통화를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다시 연락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고 짜증이 났지만 모른 척하였다. 아내는 태연스럽게 녀석의 회사 일상을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재미있는 척 들어주었다. 아내가 남편의 회사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겨울 어느 날, 그날도 스피드게이트를 지나 퇴근하는데 단말기에 평소와는 다른 다정한 문자가 적혀 있었다.
‘나의 반쪽, 지하 4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봐. 차량번호 9324의 검은색 차량이 세워져 있을 거야. 그게 우리 차야. 앞으로는 그걸 타고 출퇴근해.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녀석은 부장 진급 후 3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하였다. 일반적인 진급 연한 보다 1년 앞당겨진 것이었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7년 이상 빠른 진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임원 승진 사실은 회사 안의 녀석이 이미 전화를 주어 알고 있었다. 아내는 자랑스럽다며 안아주었다. 그 순간, 아내가 녀석을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임원으로서 차를 받게 되니 출퇴근이 한결 편해졌다. 지급되는 차량은 안정적 무인 주행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어 주행 중 잠을 잘 수 있었다. 다만 업무상 술자리가 늘고 주말 골프 약속이 생긴 것이 삶의 질을 안 좋게 만들었다. 기억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임원들 술자리와 골프 약속을 진행할 수 있도록 S전자는 회사 전용 식당과 골프장을 운영하였다. 식당은 회사 밖에 있었지만 임직원들이 초대하는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식당 내에서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기억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였다. 나는 업무상 저녁 약속이 있을 때면 퇴근하여 그 식당까지 이동한 후 기억을 잃곤 하였다. 녀석은 부장까지 술을 잘 먹지 못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곤 하였다. 술자리에서 집에 온 기억을 잃은 채로 아침에 깨어나곤 하였는데 깨질듯한 머리와 쓰린 속을 움켜쥐고 출근하는 것은 또 내 몫이었다. 또, 거의 매주 골프 약속이 있다 보니 토요일 오전에는 녀석의 기억으로 지내곤 하였다. 회사 소유 골프장에서도 기억 보안 시스템이 가동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새벽 5시쯤 일어나 골프장까지만 가는 역할이었다. 그 녀석은 골프를 꽤 친다고 하였는데 나는 거의 치지 못했다. 몸이 기억한다고 해서 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연습장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3번 술자리를 갖고 토요일에 골프, 일요일에 회사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거의 잠자면서 꿈꾸는 것 이외에는 세상을 느끼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임원으로 진급하니 녀석의 업무가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는 해외 기술선과 협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영어에 서툴렀지만 회사 안의 녀석은 회사에서 노력했는지 영어를 꽤 잘하는 것 같았다. 기억 보안이 활성화된 상태로 일주일 정도 해외출장 가는 경우도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있었다. 나는 정말 소멸되어질 정도로 세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원이라는 것이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것이고 그전에 돈을 바짝 모아야 된다는 생각에 녀석에게 적극 협조하였다. 내가 돈을 많이 받아올수록 아내는 더 기뻐했다. 시간이 부족했기에 가족과 저녁에 보내는 1시간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리고, 딸 예원이와 아내의 옆에 누워 함께 잠이 드는 그 짧은 순간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예원이가 3살이 되었을 때였다. 녀석으로부터 열흘간의 유럽 출장을 통보받은 날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일찍 퇴근하여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와 예원이도 같이 유럽에 가기로 했는데…”
“응? 누구랑?”
“당신 출장 갈 때 같이 가도 된다고 해서…”
“뭐!! 녀석이랑?”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 처음으로 아내에게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아내는 자기도 애 키우느라 집에만 있는 것이 질렸다고 받아쳤다. 녀석은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가고 싶어 혼자 가는 출장을 기획한 것 같았다. 기억 보안 이전에는 출장 시 가족을 동반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기억 보안이 도입된 이후에는 가족동반 출장이 금지되었다고 했다. 녀석은 심각한 규정 위반을 감수하면서 내 아내와 딸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허락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막을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새 열흘의 시간이 지나고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한 채 기억이 돌아와 있었다. 내 손에는 출장용 캐리어가 들려있었고 시차 때문인지 몸이 극도로 피곤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와 딸은 집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