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나의 40 번째 생일이었다. 그날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생일선물을 받은 날이자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날이기도 했다. 나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당시 S물산 건설부문의 기획팀장이었다. 상무 1년 차 팀장이었지만 사장님의 오른팔이라고 할 정도로 회사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한국 나이 41살의 임원 승진도 거의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내가 특진을 거듭하여 최연소 임원이 되고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탁월한 텔레파시 능력 때문이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텔레파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000 년대 이후 출생자부터 나 같은 네이티브 텔레 파시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환경호르몬의 영향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방사능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아직도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통은 텔레파시 능력이 고등학교 이후 각성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이미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내 주위에는 텔레파시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텔레파시로 의사소통하지는 않았으나 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 당시에는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서 부모님은 물론 아무에게도 나의 능력을 얘기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평균적으로 한 반에 2~3명 정도의 텔레 파시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텔레 파시스트들은 특유의 유대감으로 항상 몰려다녔다. 시험 볼 때 감독관 몰래 서로 정답을 공유하여 최상위 성적을 놓치지 않았고 축구나 농구같은 단체 운동에서도 서로 간의 교신을 통해 팀워크를 향상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텔레 파시스트 중에서도 나는 가장 능력이 뛰어났다. 보통 청소년기의 텔레 파시스트는 약 20m 내외의 교신 범위를 갖고 있었으나 나는 1km가 넘는 교신 범위를 가져 옆반의 아이들과도 교신이 가능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나를 중심으로 모였다. 나는 당연히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 때도 텔레파시를 활용하여 노력에 비해 높은 학점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실제 실력은 부족하였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많았다. 좋은 학점과 텔레파시를 이용한 SSAT 고득점, 면접관의 생각을 읽는 기술 등을 이용하여 운 좋게 S물산 건설부문에 합격하기는 하였으나 사원 4년 동안은 현장과 부서의 천덕꾸러기로 전전하였다.
그러던 중 S그룹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차원에서 텔레파시를 경영에 전격 도입하면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선진업체로부터 텔레파시 전문 핵심인력을 영입하여 주요 부서의 팀장 및 파트장으로 앉히고 텔레파시 경영을 확대해 나갔다. 팀장과 팀원 간에 텔레파시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의 질과 속도를 개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영 의사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을 대폭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회사는 전임직원을 대상으로 국제 텔레파시 능력 인증 시험인 토틱 (Totic : Test of Telepathy for International Communication)을 실시하였다. 당연히, 회사 내 최고점을 받은 것은 나였다. 선진사 핵심인력보다도 뛰어난 수준이었다. 난 네이티브였으니까. 그 테스트 이후 나는 텔레파시 경영 시범부서 중 하나인 기획팀으로 전배 되었다. 그 당시 기획팀장은 벡텔사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였으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텔레파시의 가장 초보단계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언어가 아닌 개념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이 단계만 되어도 외국인과 언어를 초월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뇌 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텔레파시가 가능했다.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도 가능했고 상대방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도 되었으며 신체 접촉에 따른 감각을 똑같이 느끼는 것도 가능했다. 텔레파시 경영을 위해 모인 부서원들은 영어 공부하랴 텔레파시 공부하랴 새벽 및 저녁으로 학원을 다니며 정신없었지만 나는 개인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도 팀장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사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 임원들이 텔레파시를 못하였으므로 나는 텔레파시로 회의가 진행되는 외국 회의에 사장 통역으로 동행하곤 하였다. 당연히 사장과 경영진의 신임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속 승진은 시작되었다.
2045년 거듭된 대발탁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되었어도 나의 야심은 충족되지 않았다. 나의 독보적인 텔레파시라면 S그룹의 CEO를 넘어 더 큰 자리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속 승진자에 대한 주변의 질시와 견제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허물도 잡히지 않기 위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조심하였고 부하 직원들을 대할 때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므로 술을 거의 하지 않지만 혹시 술자리가 있더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또한, 승승장구하던 임원들이 성희롱에 연루되어 집에 가시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여직원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조심하였다. 간단한 점심이나 커피라도 여직원과 단둘이 있는 자리는 철저히 피했고 단 한마디라도 여성의 외모와 관련되었거나 여성 비하로 오해될 수 있는 말은 하지 않았다.
(0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