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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휴 Mar 23. 2021

덮어놓고 먹다 보면 돼지꼴을 못 면한다.

제목이 어디서 많이 본 글 같다고요? 맞습니다. 아마 나이가 좀 드신 분들 중에는 이런 표어 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실 거예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헉! 설마? 이런 글이 있었다고? 설마~ 하는 어린 친구들도 있을 것 같네요. 도저히 나라에서 지었다고는 믿기 힘든 저런 표어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버젓이 존재를 했답니다. (벽보에 붙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여튼 갑자기 저 문구를 꺼내 든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저희 집에서 제가 자주 통용시키는 문구이기 때문이죠. 늘 시리즈로 글을 쓰다가 오늘은 가벼운 생활글(?)을 적고 싶어 졌어요.


저는 원래부터 뼈대가 얄상한 편은 아니라서 40kg대에도 55를 입은 적이 없어요. (물론 40kg대였던 적도 거의 없음. 정말 마음고생 심했던 때 한번 50kg이하로 내려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죠) 아무리 살을 빼더라도 기본적인 골격이 이미 55이상이라 (어깨 넓고 가슴이랑 골반이 커서 옷 선택시에 지장을 많이 받음. 온라인 쇼핑을 싫어하고 늘 오프라인으로 옷 쇼핑을 함) 당연히 66옷을 입었어야 했고 거의 반평생을 66체형으로 살아온 것 같네요. 하지만 거의 체형이 변하지 않은 덕에 예전 옷들도 낡지만 않는다면 (옷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헤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이후에도 입기도 하는 등 덕을 본적도 많아요. 유행은 대략 10년주기로 돌고 도니까요. 저는 일평생 다이어트를 안 한 것도 아니고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를 유지해 왔는데요. 그 이유는 제 체형상 허리라인이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체중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배는 안 나오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마른 적은 없었지만 또 뚱뚱하다는 카테고리에는 들어가지 않고 언제든 딱 보기 좋은 (제 합리화일 가능성 있음. 동료들에게서 조금만 살을 빼면 훨씬 예쁠텐데 라는 평을 들은 적도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그저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하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누가 보기에도 예쁜 몸매를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적정선 정도만 유지했던 것 같네요) 체형이라는 이야길 들으면서 살아왔어요.

그랬던 제가 첫 번째 고비를 맞은 것은 바로 출산 때. 출산 직후 체중은 원래 체중으로 금방(솔직히 금방은 아님. 한 1년 넘게 걸림) 돌아왔지만 체형이 돌아온 것은 거의 3-4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출산하고 1년 후부터 운동 열심히 해서 겨우 된 것이지 둘째랑 셋째까지 낳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예전의 허리라인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 또 한 번 중대한 고비가 왔네요.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다는 갱년기가 오면서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는데 역시 3kg을 시작으로, 찌는 체중이 모두 허리에 집중된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옴) 체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걸 느낍니다. 원래 아가씨들의 고민은 거의 하체(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대개 상체가 날씬하고 하체가 통통해서 다이어트를 하게 되죠)인데 나이가 들어가면 상체가 살이 찝니다. 40대 초반에 상체가 살이 붙으면서 정말 아줌마 체형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때 스피닝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하체를 열심히 관리한 결과 상체가 비만으로 넘어가는 걸 거의 막았거든요. (지금도 상체는 열심히 홈트 중)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인지... 허리라인이 무너지고 있는데 제 의지도 점점 허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이제 반백살인데 더 이상 관리는 해서 무엇하나? 막 이런 마음!? 20대와 30대에 불태웠던 체형관리의 의지가 이제는 잘 생기지 않네요. 옆에 있는 남편의 체형도 무섭게 무너져내리니 그걸 보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일 큰 문제는 바로 대식가인 우리집의 식습관 때문입니다. (이제야 제목에 관련된 주제가 나옴) 연애하면서 남편이 먹는 양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특성상 우리 집은 엥겔지수가 어마어마하게 높습니다. 아무리 비싸도 맛의 퀄리티만 좋다면 식당을 폄하하지 않는 반면 음식값이 저렴해도 맛이 없으면 남편의 혹평을 피해 갈 수 없는데... 어쨌든 운전하며 모르는 곳을 지나갈 때에도 기가 막히게 맛집을 골라내는 남편 덕에 결혼 후에도 언제나 맛난 음식을 먹고있긴 합니다. 다만 대식가인 남편은 먹고 바로 누워도 소화기능이 엄청나게 좋은 것인지 별로 살이 찌지 않는데 저는 남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면 10kg도 찔 수 있는 사람이라 결혼 후에는 더욱 식단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어요. 아빠와 똑 닮은 아들을 보며 아이가 아빠를 닮아 대식가가 될 것을 걱정한 저는 아이에게 적절한 식단 조절을 시켰죠. 턱선이 무너지거나 살이 오르는 것 같으면 다이어트(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을 안 먹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다이어트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다이어트하고는 많이 다르죠)를 하도록 권유했고 평소에도 간식은 항상 식후에 하도록 하는 등 나름의 관리를 한 결과 아들은 역시 많이 먹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뚱뚱한 체형은 아니네요.


아무튼 20대에는 그냥 식사를 조절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순간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면, 30대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식단 조절을 해야 겨우 살이 빠지고, 40대에는 식단 조절은 물론이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살이 빠질까 말까 하는데, 50대가 되면 무슨 짓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정말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예전처럼 의지가 생기지도 않는다는 것이에요. 지금 돌이켜보면 한 살이라도 어리고 젊을 때 예쁜 옷도 마음껏 입고 화장도 하고 꾸미고 다녔어야 했는데....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길하면 저보다 더 나이드신 분들은 제 나이만 되었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바로 오늘 지금의 내가 제일 젊고 예쁘다고...  그래서 지금도 언제나 예쁜 옷을 삽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옷을' 이런 마음가짐 따위는 갖지 않아요. 언제나 제가 입고 싶은, 그리고 갖고싶은 옷이 최우선입니다. 몇 번 입지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서 옷을 사지는 않지만 어떤 옷들은 가지고 있기만 해도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옷들도 분명히 존재를 한답니다.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이제 제 목표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에요. 피해 갈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그 말을 항상 싫어했던 저지만 나이에 있어서만큼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네요. 저보다 젊으신 여러분들도 항상 현재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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