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휴 Mar 27. 2021

취미 부자 01.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예전에도 다른 글에서 밝혔지만 나는 강남 키즈이다. 그리고 부모님보다 못 사는 1세대이기도 하고...

강남 키즈라면 누구나 조금은 느끼겠지만 대부분의 강남 키즈에게는 악바리 정신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렸고 친구들 또한 굴곡진 인생을 경험한 애가 드물다 보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지금의 이 판을 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누리고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더 강해지면 전문직들은 직업의 세습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정치에서도 강남이 항상 보수층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강남의 집값이 항상 고공비행을 하는 이유는 (이건 순전히 내 생각 혹은 추측이지만) 강남 키즈들은 어지간해서는 강남을 떠나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떠나는 자는 없는데 들어오려는 사람만 있으니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늘 강남 집은 부족하다. 이건 내 주변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강남을 한번 떠나면 다시는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초인적인 물가에도 불구하고 그냥 버티고, 생활의 불편(의외로 강남살이가 불편하다. 언제나 차가 막히고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대형마트도 없고 동네슈퍼도 없음)도 감수한다. 그리고 이제 강남의 어디든 골목골목마다 상업화돼서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 앞에서도 마음 놓고 놀기 어렵다.




서론이 길었네요. 아무튼 거의 1세대 강남 키즈인 내겐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리는 일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요즘 아이들처럼 많은 예체능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피아노도 배우고, 미술도 배우는 등 요즘에는 흔하지만 1970년대 초반생에게는 흔치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서 배웠던 많은 것들이 막상 나이가 들자 내 좋은 취미생활로 바뀌었다. 나는 피아노를 꽤 잘 쳐서 전공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일생을 피아니스트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전공을 결정하지 않아도 체르니 50쯤 들어가면 피아노를 즐겁게 치기는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많은 연습량이 받쳐주어야 하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도 이미 '즐겁게 피아노 치기는 물 건너갔구나~'를 깨달은 거죠) 제가 어렸을 때에는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어요. 예체능 교육은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욱 비쌌고 당연히 예체능 교육을 받으려면 전공을 해야 했죠. 제가 非피아니스트의 삶을 선택하자 우리 집에서 피아노는 치워졌고 오랜 기간 피아노를 칠 기회조차 없었지만 결혼 후 저는 다시 저만의 피아노를 갖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합니다. (왜 그렇게 치라고 할 때는 하기 싫다가 막상 피아노 치지 말라고 하니 또 피아노가 그리운 이유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몇십 년 만에 피아노를 처음 대하니 예전과는 다르게 악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콩쿠르를 준비했던 곡만큼은 손이 기억을 하고 있어 손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그 부분에서 피아노는 정말 운전하고 비슷한 걸 느꼈음) 혼자 모차르트를 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소나티네와 소나타를 독학으로 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전에 못했던 쇼팽을 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는데 쇼팽은 악보가 너무 복잡해서 독학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초빙해서 쇼팽을 배웠는데 처음에는 전문적인 선생님을 모시는 게 부담스러웠다. 아마 주부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는 데는 돈을 써도 내 취미생활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복지관 같은 곳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그곳의 선생님이 좋은 분이실리 없는데도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더 이상 저렴한 비용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어려워진 것. 그때부터 나의 피아노 선생님 찾기는 시작되었다.


집 근처 피아노 학원도 가 보았으나 정말 학원의 피아노들은 거의 하나같이 상태가 좋지 않더라. 주로 바이엘과 체르니, 소나티네 정도를 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다들 나 같은 성인(특히 피아노를 오래 친)을 꺼렸고 금액도 너무 비쌌다. 아이가 어렸기에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하고 싶었지만 동네에 오시는 피아노 선생님들은 다 성인 교습은 하지 않는다고 거절하셨고 나는 동네 카페에서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선생님들을 한 명씩 두 명씩 만나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음대가 그렇게 많고 피아노 전공생도 발에 차일 만큼 많은데 내 눈에 딱 드는 선생님을 찾는 것은 생각 외로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 선입견이 있어서 피아노 선생님은 화려한 선생님을 선호했다. 내 경험상 어릴 때부터 무대를 자주 선 경험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화려한 쪽으로 의상이든 메이크업을 하게 되어 지나치게 수수한 선생님은 배제했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크게 개의치는 마시길~)


어쨌든 마음에 드는 피아노 선생님을 물색하지 못해 지쳐 갈 때쯤 나는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방문 피아노>에 대한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딱 봐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업체 같아 크게 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컨택해본 결과, 저렴한 가격에 교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거기서 만난 선생님과 나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쳤고, 그 동네에서 또 다른 동네로 이사 온 이후에도 역시 그 업체에 컨택해 (전국적으로 지사가 있음)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그 선생님들은 본인들도 상당히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났고, 또 내가 연습을 성실히 해오는걸 잘 알기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나를 가르쳤다. 나는 현재 베토벤과 쇼팽을 번갈아가며 치고 있는데 전공자에 비한다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피아노 치는 것이 내 삶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지 모른다. 물론 아이가 아직 어리고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최소한 우울증엔 안 걸릴 것 같아 다행인 것 같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