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균형 잡는 게 필요해!
우리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무슨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학원을 가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서 조금 더 집에서 학습을 했을 뿐이다. 집에서 학습을 하다 보니 할 일이라는 명목으로 <To do list>가 생겼고 그게 조금씩 늘어 어느덧 하루에 해내야 할 양이 9개로 늘었을 뿐이다. 그런데 5학년이 되고 나니 3, 4학년 때와는 달리 수업시수도 많이 늘고 학습강도도 세졌다. 예전처럼 10분 안에 할 일을 하나씩 해치울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 두 번째는 독서, 그리고 마지막이 나머지 할 일들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수업시간에 엄청 집중하고 막상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줌 수업이 끝나는 3시쯤 되면 굉장히 피곤해해서 좀 쉬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도 좀 놀고 싶고 (유튜브도 봐야 하고 게임도 좀 해야 하고) 또 좋아하는 인라인도 타야 하니 본격적으로 '할 일'을 시작하려면 어느덧 5-6시쯤 되는 것이다. 할 일에는 1시간의 독서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이는 늘 시간이 부족해했다.
10시에 자야 하는데 점점 취침시간이 11시로 늦어지는 녀석을 보고 나는 무리하지 말고 할 일을 줄이자고 말했다. 그런데 아들은 힘들어하면서도 꾸역꾸역 할 일을 해치워 나갔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자꾸 문제도 건성으로 풀고 (틀리는 문제가 많아짐) 글씨도 날아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단호하게 할 일을 6개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거부했는데 '할 일을 줄이는 것=실패 혹은 낙오'처럼 생각이 되었나 보다. (혹은 엄마가 화나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나) 하지만 나는 이런 좋지 않은 행동들이 습관처럼 굳어질까 두려웠고, 한번 나쁜 습관이 든 것은 정말 되돌리기 어렵다며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과 대화 도중 예전에 내가 했던 무리한 나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20대 초에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었는데 거의 무엇보다도 교회활동이 최우선인 적이 있었다. 그래도 대학교 때는 그런 생활들이 즐거웠다.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았고 뭔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보람이 있었고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고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회에 진출하고 회사에 가기 시작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생활은 학교생활과는 요구되는 집중도에서부터 비교가 되지 않았고 나는 훨씬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회사생활에 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시절에 했던 종교생활에 대한 관습을 버리지 못해 많은 일을 떠맡았다. 책임감이 강한 탓에 어떻게든 주어진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싶었지만 나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나는 그저 기도만 하면 어떻게든 다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힘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일 거라고만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으나 어쨌든 순진한 20대 때는 그랬음) 그 생활을 2년을 계속하던 어느 날, 나는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잠시 혼절을 하고 말았다. 그때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교회도 그만두고 회사도 그만두고 쉬기로 하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만다. 내가 미리미리 조절을 해나갔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었다. 나는 그 이후 그보다 더 좋은 직장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었으며 나와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친구들과도 하루에 절연하는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의 모토는 '균형을 잡는 것. 무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무리했던 대가는 컸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서 20대 이후 교회를 다시 나가는데 거의 20년이 걸렸으며 시니컬한 사람으로 돌변해 다시 예전의 성격을 되찾는데 한참을 허비했다.
우리 아들은 처음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지만 엄마의 진심 어린 호소를 받아들이고, 결국 할 일을 6개로 줄이기로 했다. 초3, 4의 스케줄과 초5, 6의 스케줄은 다르고 학교 스케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바로 그 첫걸음이었다. 본인이 할 일 6개를 여유롭게 해내게 되면 반드시 7,8,9개로 늘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공부머리 학습법>의 저자도 말했듯 왜 초등학교에서 보이던 이 많은 똑똑한 아이들이 중학교에만 가도 생기를 잃고 공부에 흥미를 잃는지.... 나는 학원 스케줄을 알아보는 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5학년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는데 대부분의 학원이 아이들의 하교 스케줄에 맞춰 3시부터 6시까지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영, 수만 학원을 다녀도 모든 아이들은 6시 반에나 집에 올 수 있다. 그러면 저녁을 먹고 숨 돌릴 틈도 없이 학원 숙제든 학교 숙제든 해야 한다. 하지만 영/수만 할 수 없기에 다른 걸 조금이라도 더 하려면 주말밖에는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걸 몇 년간은 할 수 있지만 12년을 할 수 있는 어린이는 (아니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수업은 건성으로 듣게 되고 (그때라도 쉬어야 하니까) 결국 점점 무리하고, 나중에는 어떠한 에너지도 안 남는 게 아닐까?
어쨌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최선을 다하되, 최선을 다해 무리하는 삶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후유증을 몸소 겪은 사람이기에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잘 안다. 나는 그때 이후 최선을 다해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지만 내가 걱정하던 일은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 외려 아니다 싶을 때 '아니'라고 말했고, 못하겠다는 걸 '못하겠다'라고 했을 때 나는 내 건강도, 내 시간도, 그리고 내 마음까지 다 지켜낼 수 있었다. 물론 몇몇은 불만이었을 것이고, 나에 대해 수군거리고 했겠지만 나는 '남'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했다. 내가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남'을 지킬 필요도, 그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에게도 무리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남편에게 또 아이에게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면 그들은 고마우면서도 부담감을 느낀다. 적정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나는 20대의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게 내가 남편과 아이에게 사랑받는 일종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 (재수 없으셨다면 죄송~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