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웹툰)
나는 정확히 초등학교 3학년을 기점으로 만화에 빠졌는데 만화책을 보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나는 책으로부터 멀어졌다.(그 전에는 부모님께 "책 그만 좀 읽고 잠 좀 자라"는 말을 허구한 날 듣곤 했음) 예전에는 학습만화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만화책은 정말 재미를 위해서 존재했는데 각종 해적판(일본 만화를 복사해서 대사만 한글로 번역해 조악하게 편집하던 행위)도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특히 순정만화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한 만화가는 바로 황미나였다. (이 글에서는 선생님 호칭 생략) 나는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보고 거의 전율을 느꼈는데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한 듯한 이 만화에 나는 푹 빠지고 말았고, 그 이후에는 그녀의 또 다른 책인 <불새의 늪>도 찾아서 보며 점점 만화방(만화책을 빌려주는 곳. 요즘에는 만화카페가 있어서 시간제로 만화책을 보지만 예전에는 비디오테이프 대여처럼 만화책을 대여해주고는 했어요)을 찾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그 후 내가 또 좋아한 책은 <북해의 별>! 가상의 국가이지만 거의 프랑스혁명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이 책 덕분에 나는 세계사는 거의 식은 죽 먹기처럼 해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까지... 정말 그 당시에는 너무 주옥같은 만화들이 많았다. 순정만화계의 거장들인 이 분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만화가로서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나갔고 딸이 만화책을 보는 것에 (이제 더 이상은 책을 보지 않는 것에) 근심이 크신 부모님과의 언쟁은 높아만 갔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게시판에서 '만화동아리'가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가입을 했고 (1차로 만화 그리기, 2차 면접 같은 절차도 거쳤답니다. 현재도 존재하는지 몹시 궁금하네요)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하기보다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만화에 푹 빠져서 살았다. 그때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 만화과 같은 것이 존재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문하생 생활이 필수적이었는데, 만화가에 뜻이 있는 내가 대학교 진학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고 장녀의 탈선(?)에 기가 막히신 아버지께서 대학교를 진학하면 금일봉을 하사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그냥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를 갔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회를 가게 되면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내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긴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나도 혹 그 이후에 이름을 날리는 만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영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도 남들보다 훨씬 적게 본다. 만화는 아무리 봐도 피곤하지 않지만 영상은 1시간 정도 보면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 하다못해 야동도 질색하는 편이었는데 야설이나 야화는 싫어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사춘기 때 로맨스 소설에 많이 빠지게 되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한동안 로맨스 소설(하이틴 같은)을 탐독했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로맨스 소설의 말도 안 되는 점 (늘 주인공만 바뀌고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함. 가장 큰 특징은 여자는 무조건 처녀이고, 남자는 경험이 많은 바람둥이인데 여주인공을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뜸. 중반 넘어가면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오해로 이별하고 마지막에 혼자 오해를 풀면서 해피엔딩)을 알게 되면서 내가 그토록 읽어댔던 로맨스소설이 알고보니 참 허접한 이야기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20대에 만화와 멀어지고 나서 나는 한동안 만화책을 읽지 않았고 그 사이에 만화방들도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출판만화가 웹툰으로 바뀐지조차 모른채 만화와 담을 쌓고 살던(무려 20여 년이 흐름) 어느 날 나는 네이버에 웹툰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 살펴보다가 우연히 <프리드로우>라는 만화를 보게 된다.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이 만화는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려주었고, 나는 그 당시 이미 200화 넘게 연재되고 있던 만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다. 남편의 구박을 받으면서 본 이 새로운 세계는 내게 잊고 있던 만화의 재미를 일깨워주었고 한동안 프리드로우가 연재하는 토요일을 기다리는 낙으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육아만 하는 엄마들에게는 낙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미생>도 빌려보고(미생은 다음이죠. 그래서 책으로 보게 됨) <치즈 인 더 트랩>도 보게 되고 웹툰계의 메가 히트작들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이미 많은 웹툰들이 드라마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나는 요즘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가 즐겨보는 웹툰들의 라인업을 구축했다. 가끔 내가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만 보고도 남편은 내가 웹툰을 보는지 금방 알아채는데 내 왼손이 스크롤을 올리느라 분주하단다. ㅎ 나와는 달리 영상쪽인 남편과 아들은 웹툰을 보지 않지만 (그 둘은 애니메이션을 본다) 나는 만화보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웹툰보는 할머니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나이가 있다 보니 얘기도중 "라테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안 쓸 수 없지만 젊은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내겐 힐링이 된다.
내가 현재 보는 만화들을 소개할게요.
월 : <소녀의 세계> (4명의 소녀들 이야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나 오해로 인해 틀어진 두 친구가 고등학교 때 재회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둘을 주축으로 2명이 더 붙으면서 총 4명의 고등학교 생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 만화에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이 연예인급 미모를 자랑하고 주인공은 열등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긍정적이며 착한 성격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며 현재는 고1을 지나서 고2생활이 펼쳐지는 중)
그 외에 <순정 말고 순종><두근두근 네가 좋아서><원하는 건 너 하나>도 가끔 봅니다. 최근에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가 드라마 됐었죠.
화 : <여신강림>(얼마 전에 드라마 됨) 그림체에 비해 스토리가 좀 후달리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니 끊기 어려움. 의리로 보는 중. <달콤 살벌한 부부>(정말 재미있어요. 그림체가 좋기도 하고 현실적인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한동안 <은주의 방>(예전에 드라마 됨)도 즐겨봤는데 너무 늘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중간에 그만 봄.
수 : 수요일은 그 유명한 <복학생>(기안 84작)이랑 <연놈>이 있는데 둘 다 딱히 보고 싶지 않고, 끌리는 만화가 없어서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쉬는 날.
목 : 병맛 느낌의 <어차피 남편은!>을 몇 주 전부터 보기 시작했고, 어제 신작이 떴길래 살펴보니 <불편한 관계>가 재미있네요. 검증된 만화도 보지만 주로 신작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에요.
금 : <구남자 친구가 내게 반했다> (아침드라마와 미니시리즈를 섞은듯한 묘한 느낌의 웹툰입니다) 그림체도 잘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못 그리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랄까요? 역시 신작이라서 보기 시작.
토 : 대망의 토요일이네요. 계속 순위가 내려가고는 있지만 끊을 수 없는 <프리드로우>, 얼마 전에 보기 시작한 <힙한 남자><광해의 연인><좋은데 어떡해><모두 너였다>까지 토요일엔 보는 만화가 많아서 금요일 밤에 상당히 바쁘네요. ㅎㅎ
일 : 일요일도 쉬는 요일이었는데 신작이 떠서 입문했네요. <동생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