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론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께요.
15회.
슬픔과 분노의 15회가 끝났네요. 다른 분들도 화병으로 잠을 설치셨겠지만 저 역시 그랬는데요. 두식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또 트라우마를 가볍게 지나칠 수도 없는 제작진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마음이 사실 드네요.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도하(조연출)의 가족들인데요. 드라마에서 그려지진 않았지만 아마 도하의 아버지가 처음에는 돈을 조금 넣었을 거고 또 어느 정도 재산증식이 되는 기쁨을 맛보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전세금도 빼고 대출까지 받았겠죠.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처음에는 10%정도의 수익률에 만족하던 사람도 주변에 20, 30% 수익률을 낸 사람이 있으면 혹하게 되는 것처럼요. 두식은 리스크가 큰 상품을 관리하고 있었고 도하의 아버지(경비원)에게는 低리스크 상품을 권해주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결국 그는 전재산을 몰아넣는 도박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와중에 부인과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투자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이기적으로 변하고 또 남 탓을 하게 되죠) 도하 역시 자신이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실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양복 때문이라고 말하며 부모님 탓을 하죠. 도하의 어머니도 자살시도를 한 남편이 가장 미웠겠지만 사랑하는 남편보다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던 홍반장 탓을 하며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겠죠. 이렇게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주변, 그리고 사람을 탓하며 화살을 남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리먼브라더스 파산(극중에서는 벤자민으로 묘사됨)이 터지며 전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사건도 있었죠. 아마 홍반장이 느낀 가장 큰 죄책감은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이 모든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요. 투자 실패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실 자산운용사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만큼 시간이 해결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또 형이 같이 해결해주겠다고 했었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투자 실패하고는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이죠. (특히 자살시도 전에 온 마지막 전화가 자신에게 온 것이라고 느꼈다면) 게다가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이 도하의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면 형의 죽음은 두식이 벗어나기에는 힘들 정도로 강렬했는데요, 전 솔직히 정우의 아내가 두식이를 원망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사람이 아프다가 죽으면 그래도 주변인이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고통이 덜하다고 해요. 그런데 (손써볼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정말 그 고통이 평생을 간다고 하네요. 아내분이 너무 절망스러운 마음에 장례식장에서 홍반장에게 악다구니를 썼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말이 마음 한편에 가시처럼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공진에 2번이나 내려와서 홍반장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거죠. 드라마에서는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역시 성현이 막후에서 활약이 컸고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애초에 떨어져 나갔을 여자 친구(혜진)도 끝까지 홍반장 곁을 지키면서 벤츠여친(차는 아우디지만)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했네요. 드라마 중간에 도하가 결국 자신때문에 아버지가 투자를 하게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며 홍반장 잘못이 아니었다는 거 안다고, 그저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정말 나쁜사람이면 좋은데, 그가 착한 사람이면 나 스스로가 더 괴로워지는 걸 작가님이 잘 말해줬다고 생각함)
홍반장은 너무 괴로워서 쌀 한 톨 못 삼키지만 14회에서 서로 오해를 풀고 재결합하기로 결심한 화정, 영국 커플은 꽁냥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부모님의 재결합에 너무 기쁜 나머지 놀이터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는 어른스러운 아들 이준이) 홍반장이 없으니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다 소화하지 못해 괴로운 마을 사람들과 그 와중에도 사랑니를 뽑고 자신의 묵은 사랑을 결국 화정에게 고백하는 초희까지. 결국 나(주인공)와 상관없이 여전히 세상은 굴러간다는 걸 제작진들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형의 죽음 앞에서 자살을 생각했었던 홍반장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상실감이 컸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 트라우마(결국 전화기를 확인하려고 다리 위에서 내려온 홍반장에게 때마침 감리씨 문자가 옴)가 그를 살리네요. 형의 환영을 보면서 홍반장이 제일 처음 한말이 "미안해"가 아니라 "너무 보고 싶었어"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형 역시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 "네 잘못 아니야"와 "괜찮아"를 해주죠. 형의 아내가 두식에게 "너도 이제 그만 너 스스로를 용서해 줘"라고 말했던 것은 그들이 그만큼 친하고 잘 알았기에 아마 가능한 말이겠죠?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 3인방이 촬영이 끝난 감리 할머니 댁을 같이 청소하고 자다가 감리씨가 숨을 거두는 걸로 마지막 장면이 끝납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먼저 소풍을 갔냐며 이야기하는 둘째 할머니의 말씀이 어찌나 슬프던지.... (아니 이 드라마는 무슨 할머니부터 어린이까지 연기 구멍이 단 1명도 없나요?!) 죽음은 언제나 슬프지만 충분히 아파해야 슬픔이 온몸을 타고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명대사인 듯요. 홍반장과 혜진 둘 다 인식하진 못하지만 넋이나간 상태로 다리에 있던 홍반장을 위해 119를 불러주는 게 혜진이란 사실은 그들이 언젠가는 이어질 인연이었던 것 같아서 좋았고, 그녀는 결과적으로 미래의 남편을 자신의 힘으로 구한셈이 되었네요.
16회.
홍반장사건으로 인해 뒤숭숭하던 공진마을은 감리할머니 장례로 인해 다시 하나로 뭉치며 자신의 장례를 잔치처럼 치르면 좋겠다는 감리씨의 말처럼 장례식이 화기애애하게 치러진다. 그녀의 자랑스러웠던 회계사 아들은 감리씨를 회상하며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늘 그렇듯 홍반장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불효자였음을 고백한다. (이 드라마는 결혼과 효도를 장려하는 드라마인것이 분명해요) 감리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혜진이 의외로 담담한 홍반장을 걱정하며 묵묵히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에게 밥을 차려주겠다고 하다가 옥수수더미 밑에 놓인 편지를 발견하는데.... 그 편지에 담긴 감리씨의 진심을 보고 홍반장과 혜진은 오열하게 되죠. 주변에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한번도 그들을 진심으로 보내지 못하고 슬픔을 꾹꾹눌러 참았던 홍반장은 혜진이덕에 충분히 아파해도 된다는 걸 깨닫고 다시 일어설 마음의 준비를 하게된다. 한편 혜진이 임상교수자리를 제안받았던 사실을 알게된 홍반장은 그녀더러 좋은 기회라며 서울에 가라고 하지만 이미 홍반장과 결혼결심을 한 그녀는 대차게 교수자리를 거절하고 공진에 남기로 하고, 그 짧은 2박3일간의 서울일정도 헤어지기 싫어 닭살연기를 하게된다. (남숙언니까지 "물린다.쟤네"라고 하는게 웃음포인트!) 혜진이 공진에 내려온 후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보다가 2박3일이나 그녀를 못보게되자 늘 혜진을 떠올리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홍반장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로 하고 때마침 혜진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 청혼하기로 결심한다. 색다른 프로포즈가 없을까 고민하는 혜진에게 미선은 초심으로 돌아가라며 조언을 해주고 혜진은 '신발 프로포즈'를 하기로 결심한다. 근데 역시 혜진의 빈자리가 메워지지 않는걸 안 홍반장 역시 혜진이 중고마켓에 팔아버린 목걸이를 다시 구매해 그녀에게 청혼하는데... (자신이 먼저 청혼하려던 계획과 달리 모든 타이밍을 불도저 혜진에게 빼앗기자 당황하는 홍반장과 청혼이어달리기를 하라는 둥 바톤터치라는 등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혜진, 또 키스를 하는가 했더니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신발잡느라 허둥대는 등 웃음만발 프로포즈였음) 역시 작가님의 장르전환능력이 탁월함을 보여준 회차였다.
15회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미선과 은철커플은 알고보니 은철이 14억로또 당첨자였고 로또이후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경찰이 되었고 또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꾸준히 기부를 해온 진국중의 진국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미선이 감동하며 내년봄 결혼을 약조했고, 홍반장과 혜진은 호칭정리를 하고 가사분담을 하며 공진에서 웨딩촬영을 하는것으로 드라마가 끝난다. 16회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지만 지나친 PPL로 인해 드라마를 보는데 약간 부담을 느낄 정도였는데 (특히 도미노는 무슨 광고보는줄) 공진즈가 거의 모든 장면에 걸쳐 다 나오며 전체적으로 잘 마무리된 것 같긴하다.
솔직히 <갯마을 차차차>는 이름부터 세련된 느낌이 아니고, 오래된 영화를 리메이크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연출이며 스토리 역시 클래식하게 만들려고 한게 보인다. 중간에 너무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약간 길을잃고 갈팡질팡한 모습도 보이지만 연기구멍이 없던 배우들은 분명 제작진에게는 복이었으며 작가님의 탁월한 통찰력('왜 사람은 죽으면 기일만 남고 생일은 기억하지 않을까?', '자기는 분명 나를 지칭하는 호칭인데 남을 가르키면 내가 너고, 너가 나라는 뜻' 같은)은 나로 하여금 드라마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었다. 갯마을 차차차덕분에 2달간 너무 행복했고 감사합니다. 제 브런치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