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움받기 싫었던 아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는 우리

by 전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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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날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군들 타인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겠냐마는, 나는 그게 극단적으로 싫었다. 두 명의 친구가 갈등을 빚으면 나는 항상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다. 한쪽이 확실히 잘못했더라도 그쪽을 나무라면 나와 그 친구가 멀어질까봐, 그게 두려워 항상 애매하게 답하고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결국은 둘 모두에게 질타당하고는 했었다. 내 말을 다른 친구가 무시하거나, 듣고 시큰둥하게 반응한 때가 있으면 그날은 잠을 못 잤다. 내가 그 친구에게 뭘 잘못했었나, 아니면 내 말이 기분이 많이 나빴나, 지금이라도 사과 메시지를 보내야 하나. 아니면.. 지금도 다른 자리에서 나를 욕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고민은 그 친구가 다시 내게 웃음을 보이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갔고, 모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던 난 이제 사람들의 유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욕이 섞인 농담을 좋아했고, 또 누구는 싫어했으며, 어떤 아이는 깊이 있는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했고, 마찬가지로 그것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어떤 아이는 자신의 프라이드에 금이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의 성향에 대해 내 예상이 빗나간 적은 없었다. 나는 다른 친구가 밉든 좋든, 그 친구가 나를 싫어하게 되는 일만은 피하고자 언제나 그의 입맛에 맞도록 행동하고 말했다. 대화 흐름이나 말투는 물론 웃음소리마저도 내 옆에 지금 누가 있느냐에 따라 바뀌었다. 나는 선생님들께 다른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한 아이였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나는 지금 적도 없지만 확실한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일관성 없이 행동했던 탓일까, 그저 '옆에 두면 재밌게 해주는 애'가 날 표현하는 유일한 수식어였다. 각 무리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놀 때는 항상 내가 끼지 못했으며, 중요한 얘기가 오갈 때는 투명인간이었다. 어디에서든 한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마냥 겉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하게 겉도는 아이였다.


열심히 노력했다. '미안해'와 '고마워'를 입에 달고 지냈고, 자존심을 부린 적도 한 번 없었으며, 때문에 누군가와 싸운 적도 일절 없었다. 모두의 입맛에 맞게 행동했고 분명히 반응도 좋았는데 마지막은 이런 결과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실히 알게 된 한 가지는 있었다. 내가 여태 미움받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무관심이었다는 것. 외톨이도 미움을 받지 않을 순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젠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겠지'. 아득한 안개와도 같은 불안에 잠식되고 또 압도되어 잠도 제대로 들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을 보냈었다.


그 시간 끝에 드디어 나는 생각했다. 또 고민했다. 내 상황의 근원적인 문제를 통찰하였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은 나 자신을 볼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당초 어째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그리 목을 매어 왔나. 왜 나 스스로를 잃어 버리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틀에 나를 맞추었나.




어린 시절의 나는 단지 기댈 곳이 필요했다. 어린 나의 유일한 세상이었던 집은 결코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고,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의지해야만 했던 부모님에 대해서는 마음을 아물 틈 없이 다쳐 왔었다. 격랑은 이미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었고, 스스로에게 숨기고 싶었다. 내게 있는 결핍과 욕망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냥 막연하게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면 이 외로움도 해결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였던 내 행동은 다른 친구들의 눈에는 그저 간신배였을지도 몰랐겠다. 다들 바보도 아니고, 간신배의 편이 되어줄 리 만무했던 것이다.


또 다른,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문제점은 내가 먼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먼저 뭘 해보자, 아니면 어디 놀러 가자고 말을 꺼낸 적이 전무했다. 친구들이 다가와도 애매하게 대답해 선을 그은 때가 많았고, 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자리도 먼저 뜨고는 했었다. 연고는 단순했다. 그냥 내가 먼저 다가갔다가 괜히 거절 당해 상처 받기 싫었다. 언제나 내 마음에 유념하던 한 마디는 '괜히 나대지 말자.'였다. 거절당할 바엔 내가 멀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낫다고, 미련 없어 보여야 만만해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바보처럼 생각했었다. 그래놓고 나는 뭘 기대하고 있었나.


다시는 겪기 싫은, 그러나 내면적인 성장에 있어서는 불가결했던 지독하게 긴 나날들을 뒤로 보내며 마침내 나는 찾을 수 있었다.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고 결국은 성공과 행복을 원 없이 좇을 수 있는가. 과거로 돌아가 어린 나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 주고 싶은 것들. 시작하도록 하겠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