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기대와 상처

당신이 받았던 상처는 허상이다

by 전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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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 어디에도 돌아오지 않을 애정이나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답 받지 못할 때, 즉, 관계에서 무의식 속 기대가 무너질 때 인간은 커다란 상처를 받는다. 처음부터 뭔가를 바라고 줬던 마음이 아닐지언정, 그 숭고한 헌신에 사람은 서서히 갉아먹힌다.


상처를 많이 받아 온 사람이 관계를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떤 이는 타인에게 담을 쌓고 정을 아예 주지 않으려 하고, 어떤 이는 그럼에도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


나는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의지할 곳을 갈망했던 나는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아 왔다. 상처는 매번, 내가 이 관계를 대하는 마음보다 그들이 이 관계를 대하는 마음이 작다는 것을 느낄 때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나에겐 너무나 중요했고 깊어지고 싶었던 이 관계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슬픈 사실에 번번이 버팀목을 잃고 넘어졌던 나는, 이제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경계하고 밀어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나타날까 오매불망 기다리곤 했다. 이러한 태도는, '나는 정녕 무가치하고 남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미련한 태도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즉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것은 어째서 내가 원했었는지 그 기원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나 자신이 한계를 넘어서까지 내몰려져 있을 때야 비로소 깊은 성찰을 통해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사실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만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기 급급했으니.


관계에 지친 모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뻔한 위로의 말도, 언제 생길지 모르는 깊은 인연과 관계도 아닌, 성찰의 기회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어떤 관계에서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고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상처'란 무엇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각자의 상처와 마주할 시간이다. 이제 각자의 상처와 마주할 시간이다.







1. 인간의 심리: 더불어 살아 온 우리



인간은 먼 과거부터 공동체 생활을 기반으로 생존해 왔다. 야생에서의 인간은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으며 독립하기까지 최소한 10년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안전한 생존 환경 조성과 육아 역할 분담을 하려면 무리를 지어 협력하는 것은 숙명이었다. 이후 농업이 발명되고 도시가 세워지면서 인간의 공동체는 거대하고 치밀해졌으며, 문화와 신념이 생김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끼리의 결속력이 높아지게 되었다.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라는 시스템은 인간과 더욱 깊은 유착 관계가 된 것이다. 작았던 공동체는 이제 '사회'가 된다.


동물은 생존 환경에 진화하며 적응한다. 인간 개체 중에서도 집단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기질은 가진 이들은 자연히 집단에서 추방되거나 배척되어 생존하지 못했고, 남은 인원들은 집단 생활을 현명하게 이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키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다른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추론할 수 있으며, 타인에 자신을 이입해 공감할 수 있고, 고도화된 죄책감, 수치심,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동기, 다시 말해 심리적 기제가 필요했다. 타인과 교감하거나 유대를 쌓을 때 행복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배척받을 때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감정이 사회적 행동의 강한 동기가 되어,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공동체 내에 녹아들어 스스로의 평판 관리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수십만 년동안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위한 진화를 거듭했으며 그에서 비롯된 강력한 본능은 우리에게 커다란 행복이나 때론 극도의 불안을 가져다 준다. 이것이 우리가 관계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이유이며, 또 고립되었을 때 그 어떤 생물 종보다도 극심한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2.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나 진화의 속도가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변해 왔다. 이 때문에 기존에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성들이 오늘날엔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낳는 현상인 '진화적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


단적인 예로, 과거 인류에게 지방과 설탕은 생존에 필수적인 고열량 에너지원이었지만 구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우리 뇌는 이러한 음식을 발견했을 때 강렬한 쾌감을 느끼고 최대한 섭취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넘쳐나는 현대에서는 이 오래된 본능은 비만, 당뇨, 심장 질환 등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과거 적응적 특성이 현대 환경에서는 부적응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진화적 불일치'는 신체적 특성뿐 아닌 심리적 특성에도 존재한다. 타인의 평판에 민감하고 사회적 고립에 대해 맹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심리 기제는 과거에 생존을 위한 유용한 경보 시스템이었지만, 사회적 승인과 평판이 생존에 직결되는 것은 아닌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과민 반응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고립에 대한 불안,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대한 강박, 거절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은 우리에게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경고를 주지만 실상 그것은 해묵은 본능에서 비롯된 편향된 해석이다.





3. 상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인간이 어째서 타인에 의해 쉽게 부정적 감정에 노출되는지를 알아 보았다. '상처'라는 내적 경험 자체의 근원도 그와 다르지 않다.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실제 외부에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실체가 아닌, 우리의 낡은 본능이 만들어 내는 정서적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은 생존에서의 협동을 위해 타인과 유대를 쌓고 교류해 왔다. 이때 관계를 맺으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호적인 보살핌이나 역할에 대한 암묵적 계약을 맺게 됐는데, 이 계약을 위반했다고 인식했을 때 우리의 본능은 우리에게 이 관계를 지속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 다시 말해 투자와 보상 사이의 불균형은 생존에 있어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삭임의 수단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닌 거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의 형태를 띠는데, 그것이 바로 '상처'이다. 부정적 영향을 받은 우리의 심리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켜 스스로의 인지를 다음 중 하나로 바꾸려고 한다.



1. 관계의 가치를 평가절하: 어차피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어 - 또 그럴 것이라 여기며 상대방의 모든 행동을 의심함


2.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야 - 누구에게도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으려 함



어떤 방식으로 인지가 바뀌든 간에,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대에 어긋나는 외부 사건이 발생하면, 오래된 본능이 경보를 울리며, 극단적으로 뻗어 나간 인지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준다. 우리는 이 일련의 프로세스에 개입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거부하여 사건을 재인식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옥죄이던 고통의 사슬을 끊고 오늘날의 사회에 맞추어 진화보다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4. 상처를 환영하여라



상처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이제 그 이해를 도구로서 활용할 차례이다. 목표는 상처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균열을 인식하고 그것을 기회 삼아 더 단단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핵심은 상처라는 감정을 '아픔'이 아닌 '정보'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신체적 통증이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았음을 알려주듯, 정서적 통증은 나와 상대방 사이에 가치관, 기대, 혹은 소통 방식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를 해석하고 다루는 과정으로 다음의 단계를 제안하고자 한다.



1. 상황 객관화: 감정적인 언어와 판단을 배제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건조하게 기술한다.


2. 무의식적인 기대 파악: "나의 어떤 기대가 깨졌는가?"를 명확히 한다.


3. 대안적 관점 탐색: "상대방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스스로 질문하여 극단적 인지에 맞선다.


4. 해결책 탐색: "이 사건은 우리가 (애정/시간/약속/소통 방식/...)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라는 해석을 통해 어떻게 해야 상대방과 내가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제어하여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 방식은 상처가 관계를 망치거나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상처가 주는 고통의 크기가 허상임을 인지하고 오로지 내가 처한 실제 사실만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상처를 정보로서 대하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다음에 있다. 하나의 데이터로는 추세를 알 수 없지만 그게 반복된다면 그 데이터 집합은 일정한 패턴과 추세를 형성하는 집합이다. 만일 당신이 상대방과의 소통을 통해 이성적으로 기대를 조절함에도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고통을 주는 관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낡은 본능이 보내는 상처라는 신호는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사형 선고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상처는 당신과 더 잘 맞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라는 표지판이다.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만난다. 타인과 교감하고 정서적으로 의지하게 마련인 인간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언제나 서로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 마음을 여는 속도가 같을 수는 없다. 상대도 이렇게 해 주길 기대하며 건넸던 말과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당신 역시 누군가의 호의가 버거워 되돌려주지 못한 적이 있을 것이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관계가 당신에게 의미 있었다는 방증이고, 그것은 어느 한쪽의 잘못도 아닌 단지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해도 상처를 마냥 짊어지거나, 단순히 환상이라 치부하며 넘어갈 필요는 없다. 우리 뇌가 보내는 부정적 신호는 통제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굳이 그래야 할 필요조차 없다. 외부에 실재하는 요소만을 바라보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 보아라. 정녕 그 사람이 당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가? 없다면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관계에 목매고 매달려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상처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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