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에 후회 한 점 남기지 않는 유일한 방법
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치이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미래를 대비하기 급급해 '꿈'을 잃어 버린다. 당신의 주변에는 꿈을 추구하고 다가가고자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비록 가슴 한켠에 자신의 꿈을 소중히 남겨뒀을지언정, 주어진 모든 시간과 기회를 꿈을 이루기 위해 쓰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는 20대 중반만 되어도 '나만 뒤처져 있다'라는 생각에 옥죄여 괴로워 하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는데, 이럴 때 꿈은 쉽사리 등한시되곤 한다.
그것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삶의 마지막에 후회가 남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걸으니 무작정 따라 걸었던 길의 끝에 있는 것은 당신의 한 번뿐인 삶을 위로할 수 있을 만한 낙원이 아니라 단물 빠진 폐허일지도 모른다. 원치도 않았던 길을 걸은 결과는 당신을 고생했다며 보듬어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꿈이 없는 삶을 우리가 지금껏 다뤄 온 내용들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그것은 외부에서 주입된 가치관과 연약한 동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이다. 타자와 사회가 세운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 그들의 시선에 묶여 살며, 외부 환경에 나의 행복과 만족을 맡기는 삶이란 비극적인 삶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마지막에 높이 서서 모두가 우러르는 사람은 타인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어 산 이가 아닌,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의 가치관과 꿈을 믿고 관철했던 자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강력히 말하고 싶다.
무엇에 매몰되어 앞만 보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숨쉴 틈 없이 덮어 놓고 전진하는 태도가 아닌, 모든 것에 '어째서?'라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습관이다. 오히려 질문하지 않는 것이 연약한 도피이다. 괴롭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진실되게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현재 상황을 바라보아라. 그 과정을 통해 당신의 행동에 확신을 더하고, 불합리를 발견했다면 깨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을 한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꿈을 꿔야 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정의하는 것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적어도 당신에게는 그렇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걷는 길의 방향성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여라. 처음인 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내가 대신 질문을 던져 주겠다.
1. 어째서 출근하기 싫은가?
2. 어째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가?
3. 행복을 얻기 위한 시간은 불행해야 한다고 누가 정의했는가?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은,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거나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도 현 상황에 대한 불합리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굳이 불편한 접근을 할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불합리함을 느꼈다면 이 글을 마저 읽는 것을 추천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는 대답을 했다면 반쯤은 의문 제기에 성공한 것이다. 질문의 진짜 목적은 '왜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은 고통스러워야 하는가?'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참아라, 버텨라. 그러면 낙이 온다.'와 같은 조언을 한다. 그들은 마치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정도인 것처럼 말한다. 그들에게도 '어째서?'를 질문해 보아라. '어른은 그런 거야'라거나,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와 같이 명쾌한 이유가 아니라 마땅한 근거 없는 정의만 내릴 것이다. 당신도 스스로 고민해 보라. 어째서 먹고 살려면 하기 싫은 일만 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힘든 일'과 '싫은 일'을 구분짓는 게 그것이다. 물론 살면서 일은 해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회에서 생산성 없이 아무런 자리도 꿰차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또한 모든 일은 힘들다.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다만, 그것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아닐 수 있다. 그 일을 찾기 위해 우리는 바로 '꿈'을 정의하고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버티는 것은 인내도, 끈기도 아니다. 영양가 없는 일, 다시 말해 남의 꿈을 돕는 일에 당신의 유한한 시간과 참을성을 낭비하는 것이다. 꿈과 목표가 생겼다 해도 그걸 쫓는 과정이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다만, 회사에 나가는 것처럼 그만두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이제 거부감이 들지 않고 되려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것이 직전 글에서 정의한 '내적 동기'의 역할이었다.
성적, 경력, 성과, 연봉, 평판. 이들을 위해 나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정작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쇠. 남들이 볼 때는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지만 그것이 전부. 그러한 인정에 잠깐의 만족은 느낄 수 있겠지만 결국은 무너진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 들여다 보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도 가져 보며,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나를 정의해야 한다. 먼저 나 자신이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시간도 할애하지 않으면서 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주객전도일 뿐.
꿈을 꿔라.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책을 읽어도, 인터뷰를 봐도 모두 남들과 같이 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사실 꿈을 꾸는 것 자체는 달콤하고 쉽다. 상상해 보아라. 원하는 모습이 되어 원하는 삶을 향유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말이다. 지금 당장은 거창하고 숭고할 필요가 없다. 인류 화성 이주나 인터넷을 통한 세계 연결과도 같이 원대한 꿈은 당신이 높이 올라간 뒤에 꿈꾸어도 늦지 않다. 그냥 부자가 되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도 당연히 꿈이 될 수 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닌 꿈을 견지하고 밀어 붙이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암울한 불안이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왜 꿈을 꾸어야 하는지는 이제 안다. 그러나 어떻게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는 그런 불안을 만드는 우리의 뇌를 뜯어 고치고자 한다. 그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