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도전을 두려워 하는 모든 이에게

우리의 불안이 허구임을 깨닫는 실질적 방법

by 전시현

직전 글에서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루었다. 꿈 없는 삶이나 꿈을 포기한 삶의 말로에는 보람이 있을까, 후회가 있을까? 한 번뿐인 삶에서 소중한 꿈을 위해 어떠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자는 감히 단언하건대 후회로 그 삶을 끝맺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조바심에 있다. 나는 그러한 부정적 감정이 '진화적 부적응'에 기인한 과장된 환상이라고 말한다. 앞선 글들을 모두 읽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적 부적응이란 시대가 변하는 속도를 진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렇게 생긴 낡은 진화적 형질은 과거에나 생존에 유리하게끔 만들었지 현재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적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럼 어째서 그러한 불안감이 합리적 감정이 아닌 진화적 부적응인가? 먼 과거부터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묵살되는 것은 물론, 심할 경우 공동체에서 추방되거나 처벌을 받기도 했다. 원시 시대부터 고대 시대까지는 물리적 추방과 사형, 중세 시대부터 전근대 시대까지는 이단 심문과 가문 멸족이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인간 역사에서 공동체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인간의 심리적 기제는 공동체 내에서 다수, 혹은 힘이 강한 자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진화해 왔다. 그것에 맞서려고 생각할 경우 극심한 불안감이 생기는 형태로 말이다.


그러한 절대적 동조 압력은 원시 시대로부터 개인의 이성과 자유를 정의하는 미국-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18세기 말까지 이어져 왔다. 매우 긴 기간이다. 근 300년은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급진적 과도기에 해당하며 공동체에 동조하도록 발달한 심리 기제가 그 방향을 틀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기도 했다. 집단에 동조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감은 과거엔 우리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적색등의 역할을 했지만, 인권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극단적 감정의 타당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직전 글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처한 상황과 감정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해보며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라는 의미였는데, 이를 통해 심리적인 부적응 역시 극복할 수 있다. 불안이나 초조함, 조바심은 대체로 필요한 양보다도 과대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째서 이런 감정이 들지?'나 '실제로 이것을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지?'를 가만히 고민하다 보면 그것이 낡은 본능에서 기인한 환상이었음을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다.


다음은 필자가 불안감 제거를 위해 실제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과 답변이다. 우리의 뇌는 실패했을 때 벌어질 일을 과대평가해서 실패 자체를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과거와 달리,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적은 인풋으로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엔 오히려 약점이 되는 낡은 심리이며 질문하는 과정 속에서 그러한 오류를 발견하고 파헤칠 수 있었다.



Q1. 무엇이 나를 두렵게 만들지?

A1.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


Q2. 왜 실패한다고 생각하지?

A2. 처음부터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시도는 선례도 적고 정답지나 매뉴얼도 없다.


Q3. 실제로 실패할 경우 무엇을 잃지?

A3. 돈이나, 주변에서 받을 따가운 시선도 두렵고,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을 잃는다는 것이다.


Q4. 어째서 시간을 잃으면 안 되지?

A4. 시간을 잃으면 다시 원래의 길로 되돌아올 때 불리하다. 늦은 나이가 되면, 이미 모두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텐데 이미 그들과 경쟁하기에는 많이 뒤처져 있을 것이다.


Q5. 거기까진 OK. 그렇다면 다시, 어째서 실패가 시간을 잃는 게 되는가? 그 사이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왜 없는가?



모든 질문에서는 이전 답변에 존재하는 모순, 다시 말해 편향(Bias)를 찾아내야 한다. 내가 A3에서 찾아냈던 모순은 '실패하는 것은 시간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전제였다. A2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 난 처음부터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고, 성공에는 실패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왜 실패가 막연히 시간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가? 정말 실패가 필연적인 과정이라면, 실패는 마땅한 과정을 밟는 것이지 시간을 잃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내 금융 시스템에 혁신을 불러온 토스를 창업한 이승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8번의 사업 실패와, 9번째에 창업하게 된 토스의 대성공. 과연 그가 8번의 실패 없이 성공할 수 있는 경로는 있었을까? 시중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업'에는 더더욱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발굴하여 완성까지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뉴얼이 없는 만큼 단박에 성공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며, 실패를 겪은 후 '이러면 안 되는구나'를 배워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창업을 한다면 목숨을 건다는 무거운 마인드로 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각 시도마다 실제로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물론 돈은 들겠지만, 창업 아이템이 타당하다면 투자도 받을 수 있으며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인터넷을 이용한 저비용 창업이 가능한 시대이다. 다시 말해, 시도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어째서 나는 하나의 실패로 끝이며 원래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편향이었다.


이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시 나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예시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 나가고자 한다.



그러한 이야기가 있다. 10점짜리 과녁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최선을 다한 일발을 명중시키는 것이 아닌 여러 발을 10점에 맞을 때까지 쏘면 된다는 것. 우리의 시도에 횟수 제한이 없다고 한다면 후자가 더욱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물론 운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은 아니다. 직전의 실패에서 '어째서 실패했지?'의 원인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다음 시도에서 그러한 실수를 경계한다면 성공으로 이르는 길은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것을 말하고 싶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두려운가? 아무도 보지 못한 커다란 결실은, 아무도 걸어 본 적 없는 길의 끝에 있다. 원래 나 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걸으며 다지고 그 끝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면, 존재하는 모든 길의 유래도 그와 같지 않겠는가? 지금에 이르러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모든 길에도 태초의 개척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왜 돼?'가 아닌, '이게 왜 안 돼?'를 당신의 불안에 질문하고 구조화하여라. 안될 이유를 찾아서 제거하고, 그게 되지 않았을 때 생길 리스크도 편향 없이 정의하여 받아들일 준비를 해라. 생각보다 당신의 불안은 불필요하게 비대할 경우가 많다.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펼치고자 노력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운 좋게 얻은 기회를 고작 해묵은 본능이 방해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모든 이가 불안하다. 모든 이가 조바심을 가진다. 다만 그것이 허황됐음을 깨달았는지와 깨닫지 못했는지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그것을 깨닫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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