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치를 보고, 실패할 것을 부끄러워하고, '나'를 잃는다는 것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事象)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당신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바로 대답할 수 있는가? 가치관은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전부, 즉 삶에서의 모든 판단과 평가의 기준을 집합시킨 하나의 관점이므로, 가치관은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의 이유가 된다. 때문에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하며 살아 온 당신은 이미 당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관찰한다면 당신의 가치관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서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소년기를 거치며 자아가 형성되고, 자아가 성장하며 점차 가치관은 확립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기에 두 사람의 가치관이 온전히 같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른 고유한 가치관을 갖는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봐도 다른 감상을 남기고, 같은 말을 들어도 다른 반응을 하며, 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크기의 행복을 느낀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준이 달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당신을 향한 남들의 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다른 사람들은 늘 각자의 가치관에 기반해 서로 다른 기준으로 당신의 행동과 계획을 평가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 견해가 옳다. 그것이 그들이 정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혹은 얻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당신에게 이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언제나 남이 아닌 당신이 설정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당신 스스로가 정의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것을 양지하고 있어야 한다.
누구의 판단도, 누구의 평가도 당신의 꿈에 다가가는 것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한다. 타인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은 오로지 그들의 꿈을 이루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당신이 삶에서 어떤 요소에 집중하는지 그들은 모르며 설령 안다고 해도 납득하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당신에게 유의미한 피드백이 아닌, 단순히 불확실성만 더하거나 당신의 길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에는 깊이 매몰될 이유가 없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 인간은 사회적 평판과 신뢰 하락에 대한 거대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막심한 고통은 현대 사회에서는 불필요한 우리의 낡은 본능, 즉 '진화적 불일치'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을 두려워하는 것과 다름없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의 진정한 평판과 지위는, 집단에 잘 동조하는 것이 아닌 '꿈을 이루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기 아주 열심히 살아 온 A씨가 있다. A씨는 학창 시절부터 착실하게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견고한 스펙을 다져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으며, 최근에는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과를 올려 이대로라면 미래까지 탄탄대로였다. 가히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들도 A씨를 부러워하였고, A씨의 부모님도 그를 주변에 자랑했으며, A씨 역시도 그런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사회에서 A씨가 했던 노력과 고생이 인정받았다. A씨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만족감을 느꼈다. 어딜 가더라도 학벌, 회사, 연봉 무엇 하나 꺾일 데가 없었다. A씨에게는 더 올라가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고, 최고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면 여기에 머무르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체성 유실(Identity Foreclosure)은, 자아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겪지 못하고 단순히 주변 환경이 정의하는 '올바른 정체성'을 주입당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며, 삶의 모든 목표가 외부에 철저히 의존해서 세워지게 된다.
이 경우 오히려 가치관은 견고하다. 사회가 정의한 가치, 소위 말하는 '성공'은 그 무엇보다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외부로부터 주입된 가치관은 결국 자신이 확립한 것이 아니므로 한편으로는 취약해서 타자에 의해 쉽게 흔들리거나 때로는 무너진다. 예를 들어,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이 점차 꺼지고 부러움이 사라지는 때가 오면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도 그는 한순간에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인정과 보상을 위해 자신을 어떻게든 사회가 정의하는 '인재상'에 스스로를 계속 맞춰 넣어야 할 것이다. 평생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행동만을 하면서 살아 가는 것이 그 가치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A씨는 유소년기에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주변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외부로부터 주입된 목표를 자신의 야망과 동일시하게 되고, 성취감과 사회적 인정을 자신의 행복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외부가 정의한 '행복'은 결국은 외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모래 위에 쌓은 누각과 다름없다. 이제 A씨에게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A씨가 최고까지 오르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했거나 그 목표에 도달하기 전 극심한 번아웃이나 실패를 겪었을 경우이다. 그 경우, '다음 목표'가 사라진 A씨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뭐하지?"
"나는 왜 이것을 그토록 원했지?"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전부인가?"
이는 청소년기에 겪었어야 할 정체성 위기가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로, 이 때의 고통은 10대 때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이미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나 가족 등 지켜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진짜 나'를 이제 와서 찾기엔 포기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A씨가 계속해서 더 높은 목표를 가지게 되는 경우이다. 사회가 설정한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고는, 자신이 원한다고 착각하는 공허한 목표를 설정해 헛된 행복을 쫓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더 높은 연봉, 더 큰 집, 더 비싼 차, 더 높은 지위를 향해서 말이다. 이 경우야말로 진정 타자의 인정과 존경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외부가 주입한 목표만을 바라 보며 자신을 잃어 버린 채 살게 된다.
A씨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은, 외부에 구애되고 타인에게 휘둘릴 만큼 자신의 가치관을 얕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을 정의하는 지침서이자 설계도이다. 타인의 가치관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하여야 나의 가치관도 관철할 수 있으며, 나의 가치관을 믿고 견지해야만 나는 진정한 나의 꿈과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만 한다.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목적지와 그 방향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