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통번역대학원 번역과 3

NHK 뉴스로 공부해서 존댓말만 가능

by 정시체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입시 준비를 하면서, 기존에 하던 읽기·쓰기에 더해 본격적으로 듣기·말하기 연습에 돌입했다. 그때 내 주된 교재는 NHK 라디오 뉴스였다. 아나운서의 발음이 워낙 또렷해서 쉐도잉(귀로 들으면서 동시에 따라 말하는 연습법)하기 딱 좋았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매일 아침·점심·저녁에 그날 일본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 사고, 오늘의 날씨 같은 것이 10분 내외로 짧게 보도되었다. 지금은 보도 시간과 빈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일본 뉴스를 쉐도잉하여 제법 귀가 열리고 입이 트였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착각이었다.


일단 듣기. 일반인은 아무도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는다. 정제된 표현을 쓰지도 않는다. 일상에서는 당연히 발음이 뭉개지고, 말과 말이 사정없이 겹친다. 사전에 없는 비표준어, 신조어, 고유명사가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예능을 떠올리면 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감이 올 것이다. 그야말로 시끌벅적, 혼돈 그 자체다. 굳이 예능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아침 교양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방송이라고 해도 보조 진행자, 패널들과 격식 없이 대화하는 형태라 알아듣기 힘들 때가 있다. 거리 소음이 섞인 시민 인터뷰까지 더해지면 더욱 그렇다.


이 문제는 결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잘 들리지 않는 것은 그 표현과 초면이거나, 이미 몇 번 만났어도 아직 서먹서먹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주 만나서 친해져야 한다. 그래서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딱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표현과 막역한 사이가 되는 데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당장 듣기 실력을 높이고 싶어서, 또 그래야만 해서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말하기.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살면서 누군가와 일본어로 허물없이 대화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변에 아는 일본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들어가서야 겨우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일본인 지인이 생겼다. 동기 중에 일본인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마침 나와 동갑이었다. 그런데 나는 반말이 서툴렀다. 앞서 말했듯 NHK 뉴스로 회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의 건조한 ‘-습니다’ 투에 익숙했다. 안 하던 반말을 하는 것도 어색한데, 거기에 ‘-니?’, ‘-네요’, ‘-걸요’ 같은 종결 어미까지 붙이려니 낯이 간지럽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나는 일본어로 된 영상보다는 압도적으로 책을 더 많이 접했다. 일본 근대소설, 특히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어려운 한자, 고풍스러운 말투가 좋았다. 그래서일까, 비록 일상에서 ‘-하오’ 투로 말하진 않았지만 내 일본어 취향은 살짝 옛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은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어떤 글을 번역하든 쓸데없이 진지해졌다. 수업 시간에 동기들의 번역과 비교하며, 어조의 차이가 너무 선명히 드러나서 실소했던 적이 있다.


입시를 준비할 때 일본어 반말은 연습한 적이 없었다. 입시 면접관 앞에서 반말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입시 학원 안에서도 반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학원 선생님에게는 물론이고, 학원 동기에게도 함부로 말을 놓을 순 없다. 애초에 한국 땅 한국 학원에서 한국 사람끼리 한국어를 놔 두고 일본어로 대화할 필요가 없고, 어느 나라 말로 대화하느냐를 두고 고민할 만큼 사적으로 친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데면데면한 채 끝인 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고스란히 대학원 동문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난생처음 사귄 일본인 친구, 그것도 동갑이라 반말로 대화해야 하는 친구는 너무도 반가운 존재이자,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결코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없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외국인이 다가와서 외국어로 말을 걸어온 듯한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한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부담감부터 덜어 나갔다.


일본인 친구와 결정적으로 마음을 튼 계기는 스터디였다. 내가 일본어에 남모를 어려움을 느끼듯, 평소 자유롭게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도 알게 모르게 한국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받침이 있는 몇몇 글자의 발음이 자꾸 뭉개지고, 가끔 긴 문장은 억양을 어떻게 처리해야 자연스러운 것인지 몰라 고민인 듯했다. 그의 한국어는 얼핏 들으면 거의 완벽에 가깝지만, 일본인임을 의식하고 들으면 확실히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어 상대방의 발음과 억양을 교정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어 또는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틀린 표현이 있으면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상대방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는 졸업 후 결혼해서 일본에서 살고 있다. 졸업 후에는 한 번도 못 봤는데, 문득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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