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통번역대학원 번역과 4

후회를 왜 해?

by 정시체

번역과에 입학했지만 통역과와도 친하게 지냈다. 1학년 때는 여러 교양 수업이 겹쳐 함께 수업을 들었다. 다른 수업을 듣더라도 같은 건물 안에서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듣다 보니 이래저래 마주칠 일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전부 우르르 복도로 쏟아져 나와 고된 학교생활에 대한 푸념을 나눴다. 또 절반 이상이 같은 입시 학원에서 공부하던 사람이라 원래부터 낯이 익었다. 학원에 다닐 때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는데, 경쟁자에서 동료가 되니 비로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입시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 다들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다.


번역과는 나를 포함해 단 여섯 명뿐이었지만 통역과는 열 명 남짓이었다. 합치면 스무 명이 조금 못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동기는 다섯 명뿐이지만, 당연히 통역과 학생들까지 모두 동기로 여겼다. 시간이 지나자 같이 듣는 수업이 사라져 전원이 모일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괜히 북적북적하고 활기찬 느낌이라 좋았다.


동기들은 정말 다양했다. 국적도, 나이도, 전공도, 공부 이유와 목표도 다 달랐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가장 많았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어렸을 적 일본에서 자란 사람도 있었고, 이른바 자이니치로 불리는 재일교포도 있었다. 이 두 부류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바이링구얼이었다. 물론 일본인도 있었다. 한국과 아무 관련 없이 살아온 순수 일본인도 있었지만,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거나 배우자가 한국인인 경우 등 어떤 식으로든 한국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회사에서 통번역 업무를 하다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 가정 주부로서 아이를 키워 놓고 다시 사회에 나아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대학 때 일본어를 전공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중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처음 일본어를 접했다. 그때 히라나가와 가타카나를 배우고, 동사 활용 같은 아주 기초적인 문법을 배웠다. 희한하게 영어와 달리 재미가 있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라 정식 루트로는 일본 콘텐츠를 접하기 힘들었던 시절이다. 만화도 전부 해적판이었고, 그나마 다음 권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해서 국내에 정식으로 발간되지 않은 만화책의 다음 권을 찾아 읽고 싶었다.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구매한, 불법 복제 일본 애니메이션 OST의 가사도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재미 삼아 일 년 정도 쉬엄쉬엄 동네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JLPT 3급을 땄다. 일본어 기초에 해당하는 급수였다. 그 후로는 쭉 독학했다. 점점 일본어의 인기가 시들해져, 더 공부할 마음이 들었을 때는 동네에 다닐만 한 일본어 학원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환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나 같은 케이스가 더 신선했던 모양이다. 자기소개 시간에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일본어를 배운 뒤 대체로 독학했다’라고 했더니 다들 놀라워했다. 나는 일본에서 공부한 다른 사람들이 더 놀라웠다. 정말 부러웠다. 나는 굳이 독학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일본에 가서 공부하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학교 안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같은 비중으로 쓰였다. 모든 수업이 일본어 반 한국어 반으로 이루어졌고, 일본어로만 진행되는 수업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데도 일본에 온 듯한 느낌으로 이 년을 보냈다. 회화에 약한 내게는 너무도 고된 환경이었다. 그래도 계속 힘들진 않았다. 모든 과정이 끝날 즈음에는 두 언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내가 들은 말이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 내가 한국어로 말했는지 일본어로 말했는지 의식할 겨를도 없이 무의식중에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유학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유학을 다녀온 듯한 효과를 거뒀다.


동기나 후배 중에서 통번역대학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부를 위해 잘 다니던 직장을 때쳐치우고 들어왔는데, 딱히 새로 배우는 건 없고 괜히 경력만 단절되었다는 말에는 충격을 받았다. 그 사람은 이미 통번역 실력자였던 것일까? 하지만 교포도 유학파도 아닌 나는 모든 게 너무나도 새로웠고 온통 배울 것투성이였다. 기본 실력도 없고 단절될 경력조차 없었다. 제자리걸음을 걸으려야 걸을 수가 없었고, 잃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통번역대학원만이 내 출발점이자 앞으로를 위한 발판이었다. 다른 건 없었다. 그래서 옆에서 다른 사람이 후회를 하며 흔들리든 말든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무사히 졸업해서 꼭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번역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우연히 번역가가 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번역가를 목표로 삼고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만 골라서 걸어 왔다. 별로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다 그럴 만하니까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조금 부럽고 질투가 난다. 지금까지 계속 발버둥을 쳤으니 내게도 이제 어쩌다 그렇게 되는 일, 우연히 잘 풀리는 일이 하나쯤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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