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졸업
모국어를 A 언어, 외국어를 B 언어라고 한다. 우리 학교는 한국에 있으므로 모국어는 한국어, 외국어는 일본어였다. 주요 전공 과목은 번역하는 글의 성격에 따라 크게 기술 번역과 문학 번역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두 과목이 다시 각각 AB 번역(모국어에서 외국어로 번역)과 BA 번역(외국어에서 모국어로 번역)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총 네 과목이었다. 편의상 한국인이 아닌 다른 학우들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상 A 언어를 한국어로 간주했다. 국적에 따라 과목명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공(네 과목)
기술 번역: 기술 AB, 기술 BA
문학 번역: 문학 AB, 문학 BA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시험 개수도 주요 전공 과목과 마찬가지로 네 개였다. 즉, 과목별로 모든 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방식은 입학 시험 때처럼 100% 주관식이었다. 다만, 졸업 시험에서는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워드 프로세서에 입력하면 되었기 때문에, 긴장해서 갑자기 한자가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부담감은 덜했다.
인터넷 검색은 허용되지 않고 전자사전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시간이 촉박해서 일일이 단어를 찾을 시간은 없었다. 주어진 지문을 빠르게 읽으며 머릿속에 있는 표현들로만 단번에 쭉 번역하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훑어보면서 어색한 문장과 비문을 다듬는 정도로 마무리해야 겨우 시험 종료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관건은 누가 봐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무난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괜히 초월 번역을 하겠다면서 과감하게 의역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오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에서는 안전한 게 제일이다.
나는 예체능 전공 출신 답게 꽤 창의적인 구석이 있었다. 문학 AB 시험에서 쓸데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서 네 과목 중 한 과목을 통과하지 못했다. 일단 석사 과정을 수료로 마무리하고, 이듬해 6월 재시험을 치르고서야 겨우 졸업장을 받았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나 말고도 시험에 떨어진 동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네 과목을 동시에 통과한다는 것은 다른 동기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시 번역과에서 졸업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나까지 총 다섯 명이었는데(한 명은 휴학), 단 두 명만 제때 졸업했다. 통역과에서도 여러 명이 재시험을 치렀다고 들었다.
내 일본인 동기도 불합격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문학 BA 시험에서 떨어져 재시험에 당첨되었다. 한국인인 내가 한국어를 일본어로 옮기는 데 서툴듯, 일본인인 그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데 서툴렀던 것이다. 그 동기와는 석사 수료 직후 반 년간 따로 만나 추가로 번역 스터디를 했다. 서로 상반된 시험에서 떨어졌으므로, 함께 스터디를 하니 서로의 부족함이 딱 보완됐다. 다행히 둘 다 재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내 졸업장을 실물로 본 적은 없다. 합격 여부만 확인하고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한 고생을 생각하면 너무 지긋지긋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졸업 이후에도 웬만하면 학교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따져 보니 안 간 지 십 년은 된 것 같다.
졸업 후 몇 년 동안은 계속 악몽을 꿨다. 이미 졸업 시험에 통과했는데도 꿈에서는 아직 졸업을 못 한 채로 졸업 시험을 보고 있다. 또는 어떤 글을 일본어 또는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밤새도록 적절한 번역어를 고민하는데, 깨고 나면 나를 고민에 빠뜨린 원문은 생각나지 않고 고민의 피로감만 몰려온다. 일본어로 유창하게 말하는 꿈은 꾼 적이 없다. 다만 일본어로 유창하게 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꿈은 여러 번 꿨다. 이 경우에도 뭐라고 말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어 네이티브처럼은 될 수 없다는 씁쓸함만이 남았다. 꿈에서조차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졸업한 지 십 년이 넘은 지금, 번역과와 통역과를 통틀어 같은 기수 사람들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분기별로 동문들의 취업·이직, 번역서 출간, 공식 통역 같은 소식을 취합해서 SNS에 공유하는데, 그 목록에서 반가운 이름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든 일본어를 활용하며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 믿지만,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는데도 내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통번역가 동료가 한 명도 없어 쓸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