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 그리고 이명, 어쩌면 환청
정말이지 더는 번역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웬일인지 하루에 두어 번 오른쪽 손목 주변이 저릿하게 마비되곤 했다. 그럴 때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타자를 치기 힘들었다. 번역에 방해가 되었지만, 번역가로서 기반을 다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번역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마비가 시작될 때면 손목에 초강력 파스를 붙이고 손목 보호대를 칭칭 감은 채 하던 번역을 이어 나갔다. 마비 증상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잦아졌고, 점점 더 오래 지속되었다.
이 증상은 하루이틀 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 처음 생겼다. 내가 지망하던 번역학과의 입학 시험은 빈 종이에 번역한 문장을 손으로 적어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번역 연습을 할 때 모든 글을 손으로 썼고, 학원에서 매일같이 보던 쪽지 시험도 전부 손으로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느 날, 쪽지 시험 도중 갑자기 오른쪽 손목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목의 저릿함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 필기구를 제대로 꽉 쥘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번역하기 힘든 표현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혹시 모르는 단어가 있거나 한자가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매 시험마다 고민하고 마음을 졸이는데, 손목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눈앞이 아찔했다. 무슨 정신으로 답안지를 제출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시작으로 가끔 마비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입시에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입학 시험 당일에 손이 마비되면 어쩌나, 늘 불안이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입시에 붙고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어쩌다 가끔이었는데, 이제 툭하면 마비 스위치가 눌렸다. 수업이나 시험에서 긴장을 했을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지치는 일이 있으면 불쑥불쑥 마비가 일어났다. 당을 보충하면 나아질까 싶어 초콜릿을 한 움큼씩 들고 다녔다. 내게 초콜릿은 일종의 마비 제어 장치였다. 하지만 마비와 당 보충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뭐든 좋으니 마비라는 불청객에 맞설 무기가 필요했다. 늘 초콜릿을 곁에 두다 보니 어느덧 동기들에게 나는 초콜릿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입시와 학업, 졸업을 거쳐 번역가가 될 때까지 마비 때문에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원래는 아주 가끔 찾아오는 미미한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공부하고 일하느라 내 몸을 찬찬히 음미할 겨를이 없어서 심해졌다는 자각도 없었다. 자각하고 나서는 바빠서 병원에 가는 시간이 아까웠고, 한편으로 병원에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비는 4년 넘게 방치되었다. 그동안 그놈의 지긋지긋한 마비는 서서히 세력을 넓혀 나갔다. 처음에는 오른손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른 팔뚝, 오른 다리까지 번졌다. 초고수위 성인 만화를 번역할 즈음이 절정이었다. 걸핏하면 맥없이 늘어지는 손목을 졸라맨 채 타자를 쳤으니까. 그나마 손글씨로 써서 납품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마비 증세와 함께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증세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이명이다. 이 또한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조짐이 보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일상생활이 불편할 만큼 심각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귀가 예민해져 작은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정도였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이 거슬렸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이웃집이 일으키는 악질적인 층간 소음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공부를 하다가, 또는 번역을 하다가 와락 신경질이 치밀어 올라 허공에 고함을 지르고 천장을 두드렸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귀를 쫑긋 세우고 유령처럼 아파트 복도와 계단실을 서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 현관을 나서면 나를 괴롭히던 소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집 안에 들어서면 다시 소음이 들려왔다.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아도 귓가에 달라붙은 듯 떠나지 않았다. 귀마개 위에 산업용 방음 헤드셋까지 덮어써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비로소 이웃집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환청이었을까? 나는 분명 무슨 소리를 들었고 시끄럽다고 느꼈는데, 같은 집에 사는 엄마는 전혀 시끄럽지 않다고 했고 때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윗집에는 초등학생 아이가 둘 살았고 자주 뛰었다. 옆집이나 아랫집에서는 종종 음악을 크게 틀었다. 다만, 그게 객관적으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웠는지 묻는다면, 그랬다고 장담할 수 없을 뿐이다.
소음이 실재했었다고 백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해 보겠다고 설치다가 결국 미쳐서 헛소리를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 것 같으니,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 소리는 틀림없이 있었고, 간헐적으로 반복되었으며,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명을 유발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