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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07. 2022

땅끝에 온 까닦

토문재 엽서 · 1

 나는 왜 땅 끝까지 왔을까?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여기까지 왔을까?

우울하지 않는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나의 남도 여행일지는 지독한 안개이거나 진한 먹구름, 혹은 굳은 비로부터 시작됩니다. 의도하지 않은 우울이 거미줄처럼 쳐지는 일요일,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입소하는 날에도 역시 먹구름에 하늘은 버무려졌습니다.   


해남버스터미널에서 송호면 송호리 송종 토문재까지 군내버스로 한 시간. 차창 밖으로 스치며 지나는 초록의 논에서는 벼들이 밀어를 속삭이고 밭에서는 하얀 참깨 꽃이 쓰고 있는 연서를 바람이 먼저 와 읽습니다. 함께 읽어보는 참깨 꽃 연서에서 메말라버린 연정이란 언어가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지 모를 감정을 꺼내보려 하지만 빈 껍질로 버석거릴 뿐입니다. 

  

송종마을회관 앞 정류장에서 트렁크 바퀴소리만 울리는 마을의 고요를 끌고 오른 토문재 앞마당. 풀들은 풀에게서 비껴서고 나는 나에게서 비켜서며 박병두 촌장과의 인사도 잠깐, 할 일이 너무 많기라도 하는 듯 발이 바쁘고 손은 수선스럽습니다.   

   


일상이 잡초처럼 무성하여 작가로서 작품을 쓸 시간이 부족하여 안타까운, 작가들에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텃밭을 마련하기 위해 펜 대신 황토 흙 분칠한 장화가 친구가 되었다는 촌장의 농부 차림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박병두 촌장은 해남에 인문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문학마을로 만들고자 오늘도 혼자서 동분서주 하십니다.      


쓰다만 시처럼 읽다만 소설처럼 완성되지 않은 작품 끌어안고 온 땅끝마을 토문재 난초실에서 나의 열흘을 어떻게 풀어낼지 모르겠지만 황토 흙 내음 그윽한 이 공간에는 촌장의 배려가 깃든 시집과 각종 문학지, 그리고 산문집이 방안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토문재 인송정에 앉아 바라보는 앞 바다는 새로운 구름 몇 장과 해무로 가려져 있습니다. 해풍이 전하는 언어가 들척지근하게 머릿속을 맴돌다 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무엇이 이루어질 것 같은 공기가 정자를 휘감아 돌고 있네요. 진돗개 두 마리와 풍산개 한 마리 문학촌 지킴이는 나른한 오후를 즐깁니다. 나는 어슬렁어슬렁 마을길 탐방에 나섭니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앞바다는 새로운 구름 몇 장을 인화하고 해무로 가려집니다. 해풍이 전하는 언어가 들척지근하게 머릿속을 맴돌다 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무엇이 이루어질 것 같은 공기가 정자를 휘감아 돌고 있어요. 진돗개 두 마리와 풍산개 한 마리 문학촌 지킴이는 나른한 오후를 다듬고, 나는 어슬렁어슬렁 마을길 탐방 나갑니다.      


에곤 실레의 작품 <양 팔꿈치를 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처녀> 모습처럼 넝쿨째 뻗어난 호박꽃 밭에 탐스럽게 궁둥이 내밀고 뒹구는 누런 호박, 담장을 넘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를 안과질환과 해독에 효험이 있다는 대롱대롱 열린 여주, 썰물에 미처 따라나서지 못한 어선 한 척 찰방찰방 방파제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입소 첫날 인송 문학촌 토문재 처마에 매달린 밤의 풍경소리 청량하기도 하고 그 울림이 내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듯 어둠과 바람에 뒤섞여 밤하늘에 빗살무늬를 그리고 있습니다. 가방 가득 한 살림 끌고 온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무엇을 쓰려고 여기에 왔는가?’ ‘무엇을 쓸 수나 있을까?’ 두고 온 도시의 걱정거리들이 불쑥 또 하나의 가방인 양 머릿속에서 튀어나옵니다. 나는 맘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어 봅니다. ‘제발, 제발……’ 고개를 저어 봅니다. 



글을 토해낸다는 뜻의 ‘토문재’에서 나는 무엇을 토해낼 수 있을까, 해남의 이동주 시인의 「사랑의 용광로」 한 부분을 되새겨봅니다. “지금 내 곁에 다가온/사랑을 찾아보세요.//눈이 없어도 손이 없어도/가슴에 요동치는 마음으로/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면//당신은 그 사랑으로/행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통증을 우려내는 새로운 글을 쓰리라는 다짐을 하며 한 편의 감성을 적어봅니다.     


기억을 더듬어 만져지지 않은 얼굴을 꺼내고 

나에게 말을 걸지 

등 시린 길을 건너 온 나의 기록은 버렸어

모든 배경이 통증이었던 시절은 지나갔어

오래 전 지워진 이야기야

애야, 

통증은 사라져도 내면에 스며든 상처는 남는 거다

미황사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틈새로

물이 필요하다고 물을 달라고 마지막 나를 통과하던 

먼 길 떠난 엄마가 내게로 왔다  

살고 있는 계절을 놓쳐버리지 말라고 한다

걷고 있는 이 길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

빛과 공기가 들어올 틈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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