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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15. 2022

나의 문학을 찾아 천년 숲길 걷다

토문재 엽서 · 3

송종 마을 인송 문학촌 토문재에서 땅끝 마을까지 걷는다. 스페인의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체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지 보게 될 것’이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스페인 남부의 기행문 이전 내면의 여행기다.      


영혼의 깊은 늪 속에 잠들어 있는 그것들을 찾아서 깨우지 못하는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세상 사물들을 모두 다르게 보며 로르카처럼 시적인 언어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나만의 언어로 풍경을 그리러 간다.




도로변 칸나 타오르는 불꽃처럼 빨갛게 웃는 아침. 옥수수수염이 길을 내고, 바다가 들려주는 서정 시편에 풀잎들 출렁인다. 자동차들 싱싱 날고 있다. 그 속도의 빠름에 한없이 느린 내 발걸음은 살짝 땅끝 황토나라 테마 촌으로 들어섰다. 생태수변공원, 음악분수대 등 휴식공간과 캠핑장이 있으나 묵직한 침묵이 흐를 뿐, 황토문화체험센터 옆 계단을 내려오니 그물망들 어선의 고백에도 바다로 나갈 의향이 없는 듯 부표들 옆구리에 끼고 껴껴이 쌓여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142호로 지정된 수령 깊은 해송림 모래사장과 곡선을 이루고 있는 송호해변에는 최지훈, 지대영 모래 조각가의 모래 조각품 해변의 아침 한상이 눈과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코로나 이전에는 모래 조각품이 많았다고 하는데 올해는 한 작품만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예술가의 사상과 철학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장식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로르카는 말한다. 

사상이나 철학을 제대로 들어내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잘 흡수할 수 있는 맛깔나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담백하고 깔끔한 이 조각품에서 어떤 장식적 요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언뜻 나의 사상과 척학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해변의 끝 두 갈래길 왼쪽 눈동자는 버스가 달리게 두고, 오른쪽 눈망울로 서해랑 길의 일부인 ‘땅끝 꿈길’의 시작 갈산마을 지난다. 바다에는 전복 양식장이 고추밭에서는 햇빛에 취한 노부부가 붉은 고추와 함께 익어가고 있다. 노부부의 ‘함께’는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다. 나도 한때는 '함께'였다.   

  

내 안을 들여다볼 틈도 주지 않고 눈이 먼저 풍경을 내 안에 들인다. 앞만 보고 구부러진 길만 보고 걷는 숲길은 쓸쓸한 정적 속으로 옷깃을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뿐. 내 그림자는 주변의 침묵이 불안한지 자꾸 흔들리고 그런 나를 바람은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해안초소를 위한 길이었다는 갈산의 오솔길은 동백나무 숲과 후박나무 울울창창 해남 최대의 난대림 군락지라고 한다. 곡선의 해안선 따라 끝없이 데크로 이어지는 길 중간중간 석탄 광맥 이야기 속 물무청 쉼터, 사자 포구 쉼터, 댈기미 쉼터, 달뜬봉 쉼터, 학도래지 쉼터, 당할머니 쉼터, 사자끝샘 쉼터까지 숨 가쁘게 땅끝 탑 왔다.     


우리나라의 위도상 북위 34도 17분 32초 국토순례의 시발점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인 땅끝 탑은 공사 안내판이 줄 긋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아쉬움을 소나무 갈피에 끼워두고 갈두산 사자봉 전망대 오르는 모노레일 외줄 타기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섬과 섬 사이로 견학 온 학생들 소란스럽다. “선생님!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그래, 거기가 거기고, 요기가 요기야” 선생님의 답변에 웃음 한 줌 시간의 잔해들이 뭉뚱뭉뚱 쌓여 있는 봉수대 돌탑 위에 올려놓고 바람도 맛있다는 땅끝(갈두)항으로 향한다.   


땅끝항 선착장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은 맴섬은 2월 중순과 10월 하순 경 일 년에 두 번 바위섬 가운데로 해가 뜬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는 쓰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나를 대변하는 듯 노화도 오가는 배로 한편의 시인 듯 떠있다.    

  


바다를 매립하여 공원을 만들었다는 희망공원 정자에 앉아 바다 멍 잠시, 막 들어온 작은 어선에서 갓 잡은 은빛 풀치와 잡어들 파닥파닥 울음을 꺼내고 웃음을 집어넣는 어부의 손길이 부산하다.     

 

 풀치 옆 살포시 누워 천년의 숲길 걸어온 만큼의 길이를 잰다. 누구도 읽어 주지 않지만 도로변 갓길 묵묵히 그물망 손질하는 등 굽은 어깨를 바라보다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 문장이라도 나에게 위로가 된다면 볼펜 끝 낱말들 사랑하리라. 가슴에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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