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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Dec 15. 2022

악마의 색, 블루

-울릉도·2

 친구들이 꿈속 산책을 하는 시간. 어젯밤 누군가의 발자국이 흘려놓고 간 길 따라 홀로 걷는 행남 해안 새벽 산책은 바다 냄새로 가득한다. 여행에서 여유로운 시간이자 그곳의 모든 것들을 뜨겁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산책.


갈매기 저공비행을 하며 길을 안내하고 갯바위 낚시꾼들 어둠을 걷어내며 찰방찰방 걸어 나오는 길 따라 걷다 보면 김치 국물 얼룩진 식탁보처럼 펼쳐놓은 명도 낮은 붉은빛.  

   

새벽 바다는 클로네 모네의 작품『인상』을 감상하는, 아니 그 보다 더 강렬하고 다양한 빛으로 펼쳐진 미술관이다.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 간혹 실바람이 얼굴을 적시는 저동항과 행남 등대를 잇는 산책길 무지개다리 너머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피해로 복구 중이라는 안내판.    

  



연결고리가 끊어진 관계의 회복은 녹슨 대문 앞에 서성이는 일이다. 누군가 발설한 말들이 내 혀에 가시처럼 박혀 따끔거리며 아플 때마다 자연재해로 끈긴 길은 복구가 되지만 마음의 길은 복구가 되지 않고 부력을 잃은 물고기처럼 둥둥 떠다닌다.       


밤새 바다라는 책을 읽고 쓰며 담아온 항해 이야기 풀어내는 오징어 배. 경매가 시작되는 저동 새벽 어판장 소란 속에 싱싱한 오징어 회 한 접시 담아 숙소로 간다. 난 회를 먹지 못한다. 하지만 그 유명하다는 울릉도 오징어를 친구들에게 맛 보이고 싶어서 편의점에서 초고추장과 나무젓가락에 우정 가득 담은 봉지 바스락바스락. 이른 아침이라 소주잔은 건넬 수 없지만 막 건져 올린 울릉도의 상큼함을 펼쳐낸다.      

    


어제 울릉도 A코스에 이어 B코스 봉래폭포 오르는 길. 천연 에어컨 풍혈에는 관광객들로 가득 찬 곳이라 통과. 삼나무 푸름이 인도하는 그 어디쯤에서 봉래폭포를 포기하고 쉼터 벤치에 앉아 모기들과 사투 중이다. 무슨 애절한 사연 그리 많아 밤샘하고 소금에 푹 절여진 배추 잎처럼 너덜너덜과 헤롱헤롱 사이를 헤매고 있다.     


전망대에서 저동과 죽도, 관음도가 보인다는 내수 일출 전망대 오르는 길. 블루는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감추어진 악마의 색*이라고 김이듬 작가는 말한다. 불꽃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블루라서 모든 게 타고나면 재만 남기 때문일까. 그러나 햇볕에 붉게 타오르지만 오늘의 하늘과 바다색은 자연 그대로 환희의 블루다. 블루가 환희의 색이든 악마의 색이면 또한 어떠리. 아름다우면 그만인 거지.      


너무 덥다. 따가운 햇볕에 그늘 찾아 여기도 중도 포기하고 호박식혜와 주스로 목축이며 바라보는 죽도는 측면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죽도는 정면일까 윗면일까. 대신 3단의 봉래폭포와 함께 죽도를 노 베로니카의 사진으로 감상한다.    

  

봉래폭포 -노 베로니카 사진
봉래폭포 - 노 베로니카 사진


죽도 - 노 베로니카 사진
죽도- 노 베로니카 사진

바다를 빌려와서 이룬 섬들과 섬 속의 죽도를 접고 다음 일정은 우리나라 최초 해안 산책로  도동항 행남 해안 산책길 간다. 어젯밤 일행 모두 도동 성당 미사 참여에 슬쩍 냉담한 나는 혼자서 밀가루 반죽처럼 치댄 구름이 하늘과 바다에 동시 촬영 중이던, 대책 없이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며 걸었던 산책로에서 한낮의 산책로는 어떤 빛깔로 색칠하고 있을까      


울릉도는 초기 화산활동의 특징을 간직한 다양한 암석과 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지붕 없는 화산박물관이라 한다. 기괴한 암석과 절벽 옆으로 이어진 산책길 초입에서 만나는 동굴 쉼터 풍경사진 남기고, 밤에는 무섭게 보였던 해식동굴은 두려웠는데 전혀 다른 얼굴로 반긴다.     

 


거대한 화강암 절벽 사이 자연이 만들어 낸 작은 굴 터널을 지나면 철제 다리 아래로 펼쳐진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곳. 어젯밤 볼 수 없었던 윤슬로 수놓는 바다와 산책길까지 부딪히는 파도 소리 들으며 걷는 기분은 다시 오지 못할 오늘을 만지는 일이다.       


산책로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 거친 파도가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관광코스라고 한다. 그러나 친구들 태양빛 강렬하다는 이유로 산책로를 접는다. 행남 등대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 대신 찻집에 앉아 한낮의 무더위 수다로 식히는, 서로가 서로의 입가에 웃음 파도의 곡선을 그리면서 울릉도의 푸른 살 밖으로 나갈 배 시간 기다린다.   

 

    *김이듬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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