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재 Jan 25. 2023

어란 여인상은 어디에

-토문재 엽서 ·7

       

인송문학촌 토문재에서 군내버스로 산정정류장까지 다시 택시로 달려온, 어란(於蘭)은 지형이 난초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비릿하고 물컹거리는 오늘이 깔려 있는 어란진항.  작업용 물김 실은 작은 보트와 보트들이 하루치의 과제를 수행하듯 출렁이고 있다.  

    


김과 갯장어가 주 생산물인 어란진항은 1971년 12월 21일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곳이다. 어업활동용 항구로 어장 개발과 어선 대피에 사용되며, 전국에 115개가 지정되어 있다.     


한쪽에선 물김 경매로 입이 말을 비우며 눈은 말을 흡수하고, 침묵과 경계로 충혈된 눈들이 낮고 깊은 호흡으로 붉은 줄 긋는다. 경매를 지켜보는 내 호흡도 긴장된다. 마치 내가 물김이 되어 기록을 지우는 손짓에 튕겨 오르는 듯 내 얼굴에 소리치는 것 같아서.    

 


포구에서는 바쁜 손들과 눈들이 물김 포대에 담아 크레인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크레인에 매달린 검은 뭉치들이 허공을 북북 그어댄다. 김 양식으로 어란은 부자 마을이라 한다. 그러나 작년 여름 가뭄으로 김이 잘 자라지 않아 길이가 짧고 품질도 좋지 않다며 건자반 공장 어르신은 어란 물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좋은 물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불도 파랑을 밀어내며 어란진항 끌어안고 있는 곳으로 해풍의 흘림체 문장하나 항구에 물김처럼 욱여넣고 그곳에서 나는 천천히 줌아웃.    

   


온종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놀아도 좋을 겨울날씨답지 않은 포근함이 해안 길 자꾸 유혹한다. 바다와 하늘 빛깔이 하나가 되고 김 양식장 검고 흰 부표 둥실 떠있는, 낱말을 갖지 않아도 물고기 문장이 되는 만호해역 바라보며 여낭터 가는 길.      


마을 주민 안내로는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고 한다. 해안도로 오르락내리락 걷고 또 걷는다. 임도를 따라오던 길 왔다 갔다 산길 헤매었지만 찾을 수 없는 어란 여인상. 이정표는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끝은 찾을 수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지만 정보가 없다.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을 이틀 앞두고 왜장 ‘칸 마사가게’와 ‘어란’ 은 통정하는 사이로 명량해로 진군 날짜를 알게 된 ‘어란’ 여인이 이 사실을 이순신 장군 측에 전달하면서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 수 있는 원인이 됐다고 쓰여 있다. 이후 어란 여인은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왜장 ‘칸 마사가게’의 소식을 듣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했지만 인간적인 자책으로 달 밝은 밤 명량해를 바라보며 투신자살하자 마을사람들이 어란의 시체를 수습하여 소나무 밑에 묻어주고 마을에서 그 영을 위로하는 석등롱을 세워 매일 밤 불을 밝혔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성룡 선생이 밝힌 사와무라 유고집에서

      


다정하지 않은 이정표가 지나간다, 어란 여인상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생생하게. 궁금증 쓸어내며 마을로 들어와 버스길 찾다 길 잃었다. 마주친 삼부수산 어르신 말씀 일반인들은 잘 찾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큰 묘가 있고 그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쉽지 않았을 거라며 여름에 다시 오라 한다.

     

배추밭고랑에 잡념들 깔아놓고 터벅터벅 그 잠깐 산정마을로 향하는 군내 버스 싱싱하게 눈꺼풀 스치고 간다. 배차 간격 두 시간. 순간을 놓친 격차가 너무 길다. 어란 여인상도 버스도 내 편이 아닌 듯 산기슭 잔설과 억새들만이 살랑거린다.  

             

                 


작가의 이전글 악마의 색, 블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