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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an 28. 2023

나 홀로 카페, 고계봉

-토문재 엽서 ·8

       

밤새 바람은 토문재 처마 풍경을 요리하는지 압력밥솥의 추처럼 딸랑거린다. 새벽까지 원고 뭉치 입자 고운체로 골라 보지만 걸림돌이 되는 단어들만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마음의 허기 채워지지 않는 원고 뜨끈뜨끈 황토 온돌 한 귀퉁이 널어놓고 두륜산행 군내버스 탄다.   

   

마스크로 덮어진 버스 안 운전기사와 승객 사이에 냉기류가 흐른다. 기사의 속상한 기분 어떤 위로와 공감에도 편하지 않을 오늘이 될 듯하다. 목적지 정류장에 내려주지 않았다고 심한 욕설 던지고 내리신 어르신 때문에 마음 상한 버스기사. 미리 하차 벨을 누르지도 않고 내려야 할 정류장 지났다고 막무가내로 내려달라는 어르신의 무례함이 원형교차로처럼 자꾸 빙빙 돌고 있다. 기사는 오전을 끊고 오후로 넘어가도록 속상함 바닥에 닿아 있을, 내려야 할 곳을 놓치지 말라는 약속의 하차 벨은 누구의 입장일까.  

   

인연


모형 연리지 나무 횡하니 주차장을 지키고 있다. 언덕길 터벅터벅. 텅 빈 미로파크. “보르헤스는 작품 속 환상으로 과거의 환상 문학을 비판하고 싶어 했으며 미로는 보르헤스가 설치해 놓은 우리 시대의 목소리다”라고 전기철 소설 『거미의 집』에서 시인은 환상역 어디쯤에 헤매고 있을까 묻고 있다. 미로. 한번 들어가면 방향을 알 수 없어 헤매는 길. 방향을 찾지 못하는 내 삶은 날마다 미로 속이다.   

   

두륜산 케이블카 20분 간격으로 운행 중이다. 올라가는 것도 공중에 매달리는 것도 동경한 적은 없지만 먼 곳을 밟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1.6km 선로에 초속 3.8m 케이블카 탄다. 그 8분 허공의 시간 마음을 멀리 두고 보면 계곡도 울창한 숲도 그대 곁 외롭지 않을, 목적지 묻지 않아도 도착하는 곳.     

 

한반도 지도 마을


286개의 목재산책로 계단 오르다 뒤돌아서면 멀리 한반도 지도마을이 보인다. 앙상한 겨울나무 배경이 되지 않아서일까 계단 군데군데 마주치는 좋은 글귀들 선명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중 문장 한 줄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속에서만 살아간다.’ 억울하게 당하고 마음깊이 품어 온 분노에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계단계단 엮어지면서 무거워지는 발걸음. 분노의 질량과 바보의 질량이 분해되지 않아 슬펐지만 ‘어디를 가든 마음을 다해 가라’는 문장에 내 어깨 토닥토닥 전망대까지 왔다.     


영암 월출산, 강진 주작산, 광주 무등산이 보인다고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로 가득한 날씨  눈부시다는 다도해 아슴하고, 주작산만이 손 닿을 듯. 우문성 작가의 작품 ‘하늘, 바람, 사람’ 전망대 한가운데 우뚝. ‘관람객이 종이비행기의 반쪽날개가 되어 꿈을 향해 춤을 추듯 날아다니며 땅끝 하늘 에너지 가져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 담아있다.     

 


눈 쌓인 해발 638m 고계봉 표지석 곁 산등성이들 녹지 않은 눈꽃 바람에 푸석푸석 날리는 나 홀로 카페. 내 엉덩이는 바위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바람이 전하는 쓸쓸함은 가슴이 막아주며, 그 누구도 방해받지 않고 보온병에 챙겨 온 커피 한잔의 여유 그리고 얼굴과 손등에 가득 스킨십해 대는 햇살과 잘 놀고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이다.          

*『거미의 집』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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