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녹음 짙어 초록 물 떨어지는 화산송이 길

-- 제주, 2박 3일

by 김민재

「곶자왈 숲 속 기차여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80년대 증기기관차 볼드윈 기종을 모델화하여 영국에서 수제품으로 제작된 링컨 기차로

30만 평의 곶자왈 원시림을 기차로 체험하는 테마파크 에코 랜드입니다.

메인 역을 출발하여 에코브리지 역으로 가는 철길에 하얗게 핀 마가렛 꽃이 묻습니다.

“왜 철길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냐고, 길은 혼자 떠나는 것이라 아니라 둘이 떠나는 것이라고

멀고 험한 길 서로 토닥토닥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나란히 같이 가는 것이라고.”

안도현 시인은 말하지요.

그래요.

모나지 않고 구부러져도 꺾이지는 않는

둥근 사랑으로 둘이 함께 가는 길이 혼자 가는 길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서로 그리워서 몸을 맞대지 못하는 것.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로 남는 것.

그리워할 수 있는 삶이 있어 행복한 것.

그리움 때문에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

하지만 난 이렇게 혼자 가고 있네요.

이 길도 인생길도 티격태격할 여유도 없이 끊겨 버린 철로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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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호수를 돌아 레이크사이드 역으로 가는 길이 쉽지가 않습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자꾸 내 발목을 잡습니다.

놀이기구나 게임에 익숙한 학생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걷는 것이 고역이겠지요.

느림의 미학이 나를 세우기도 앉게하기도 하며 삶을 쓰고 지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야생화와 눈 맞추고

호수에 스며든 그림자도 안아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그러니까 청춘 이기겠지만,

멀리 디스커버리 존의 탐험선 한 척이 보입니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분들은 어서 탐험 선을 타세요.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납니다.


피크닉 가든 역 푸른 잔디가 곶(숲) 자왈(암석과 덤불이 뒤엉킨 모습) 숲길을 인도합니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화산재 알갱이.

제주도 보존자원 1호로 지정된 그 화산송이 위를 맨발로 걷습니다.

강력한 흡착력과 살균력이 있다는

화산 알갱이가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찌릿함은

추억이라는 문장을 발바닥에 꾹꾹 눌러쓰며

문장과 문장 종•횡간 사이를 누비고 있었지요.

그러다 마주한 족욕장 문장의 완성도와 함께 문화해설가의 꾀꼬리 음성이 마침표를 찍어 주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라벤더 그린티 로즈 가든 역으로 갑니다.

4월부터 11월까지만 정차하는 간이역에는 라벤더 농부 아저씨가 우리를 반깁니다.

사람이 웃음꽃일진대 왜 우리들은 웃고 있는 라벤더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보라색으로 물들고 싶어서일까요.

마음의 핏빛 내려놓고 라벤더 향이 되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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