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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08. 2024

다섯 시를 두고 오다

  연두에 찔리고 꽃들에 붉은 마음 흘리며 상처 난 자국들 길 위에 뿌리면 내가 원하는 문장들이 찾아올까. 좋은 글을 보면 훔치고 싶은 마음처럼 아름다운 꽃들과 만나면 자극이 되어 좋은 글이 내게 찾아올까. 손을 뻗어 벚꽃 잡아보지만 바람에 꽃잎만 날릴 뿐 잡히지 않은 꽃잎처럼 오지 않는 문장을 찾아 벚꽃터널 속으로 들어갑니다.      


  고향친구이자 여고동창들 7명은 한 친구의 딸 혼사로 모였습니다. 47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는 반가웠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학교라는 울타리가 주는 친근함은 마치 어제 만나 듯 포근하고 든든하게 다가옵니다. 흰머리 희끗희끗 눈가에 잔주름 아름답게 그어지고 살아온 삶의 농도는 다를지언정 우리가 녹는 온도는 변할 수 없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편안함이 던지는 마음 색깔에서.     


  4월의 첫 주말 우리는 석촌 호수 수많은 인파 속 헤집고 들어갑니다. 일열 횡대 혹은 일열 종대 사진 찍기 참 연식이 있는 포즈들입니다. 우리들의 포즈가 신기한 걸까요. 해맑게 웃고 있는 표정이 아름다워서일까요 지나가던 젊은 외국인 친구 우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친구의 표정을 마음 안에 담습니다.      


  공원의 카페. 우리 앉을자리가 없어 서성이다 듬성듬성 다른 거리를 두고 잠시 앉았습니다. 각자 살아온 거리만큼 간격과 간격은 크지만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측량될 수 없는 관계이겠지요. 어릴 적 친구는 학교 친구는 그런 거 아닐까요.    

 

 우리들 사이로 아이크림을 든 부부가 앉았다가고, 아이스커피 출렁이는 연인들이 쉬었다고 가고, 잠시 쉴 곳 찾아 서성이는 가족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방울 송골송골 맺힌 맥주잔 들이켜는 옆 좌석 젊음이 소란스럽게 즐겁습니다. 호수의 물결은 고요한데 사람들은 출렁이며 밀려가는 모습들을 음료수 잔에 담아내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이토록 사소한 주말 오후. 생각을 접고 마음을 비우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순간 덮치는 문장 찾기에 나는 또 침울해집니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좋은 글은 찾아지지 않는데 구부정한 자세로 노트북과 놀다 보니 목 디스크로 어깨 통증을 선물로 받고, 스트레스로 얻어낸 간과 위장병은 일상이 어둔 터널 속 같지만 오늘만은 환한 꽃 터널인데 나는 또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 답 없는 질문을 하다 피식 웃음이 머문 자리 먼 길 떠나신 엄마의 그리운 잔소리가 스치고 갑니다. "돈도 안 되는 시는 뭐더러 쓰면서 늘 아파 골골거리냐며"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수 없이 다녀갔을 우리들의 4월. 수많은 꽃들이 왔다 갔지만 오늘의 4월이, 꽃구경이 친구들에게 깊이 잘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나의 문장도 잘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다음 만날 날 약속하며 오후 다섯 시를 호수에 담가두고 벚꽃 터널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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