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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23. 2024

연두에 물드나 봄

-청남대

  며칠 전 친구들과 청남대 간다고 하니 강의 잘 듣고 오라던 아들이 묻습니다.    

   

 - “민재! 청남대에서 강의는 잘 듣고 왔나요?” 

  “그럼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오직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명 강의였지요.”

 - “교수진이 좋았나 보군요.”

  “그럼요. 영춘재 축재기간이라 수강생도 많았답니다. 아마 전국 각지에서 온 듯 연령층도 다양하더군요.”

 - “항상 혼자 놀더니만 친구들과 함께 듣는 강의가 특별하였으면 됐습니다.”

  “영산홍 교수 소개 할까요? 제라늄 강사 소개할까요?”

 - “관심 없습니다.”     


 퇴근 한 아들과의 대화입니다. 그래요 난 늘 혼자 떠돌았습니다. 함께 떠날 친구가 없었지요. 요즘의 나에게  친구들이 자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런 친구들이 고맙지요.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대청호


 친구들과 함께 연두에 물든 4월입니다. 민들레, 할미꽃, 팬지, 금어초 강의를 들으며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대통령의 휴양처로 이용되다 노무현 대통령이 충청북도로 청남대 소유권을 이양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된 산책길. 충북야생화연구회의 수목분재, 목·석부작, 바위솔, 석곡개화작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눈빛으로 듣습니다. 귀로 듣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들립니다.     


 와인시음 부스에서 홀짝거려본 사과와인에 친구들 얼굴이 영산홍 꽃으로 피었습니다. 산책길 꽃들보다 더 아름답게 빛납니다. 늙는다는 건 비밀이 많아지는 거라는데 더 늙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머물러질까요.      


 도깨비바늘처럼 훔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았던 시절 나는 나의 바깥을 떠돌았지만 지금 나의 안쪽은 도깨비바늘 떼어내는 시간입니다. 친구들과 사박사박 발자국을 걷어내며 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언어도 그려지지 않는 길은 따뜻하며 바람은 신선 합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연두가 말을 걸어옵니다. 잠시 쉬어가라 합니다. 힘들고 바쁘게 걸어왔을 삶에게 토닥토닥, 기쁨도 슬픔도 색칠되지 않아 잴 수 없어 두 주먹에 가둔 시간 봄볕에 단풍 나뭇잎 손가락 펴지듯 펼쳐보라 합니다.        


  바람이 모든 풍경의 그림자를 통과하듯 본관, 대통령 기념관, 역대 대통령들의 동상,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통과합니다. 연두에 갇혀 꽃들에 묻혀 통과하지만 다시 또 오겠다는 그때는 기념관 안에 들어가 잘 읽어보고 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겠지요.     



  대청호 바라보며 초가정에 앉아 우리를 말합니다. 수빈이 준비한 미네랄워터에 희영의 방울토마토에 복실의 견과류 송송 박힌 수제 쿠키 속에 컬러풀한 인물들 가두어 우리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면, 컬러풀한 얼굴들 나무의 껍질처럼 벗겨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속의 우리입니다. 구멍 숭숭 뚫린 문장 속에 넘겨지지 않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갇혀 꼼짝할 수 없는 오늘입니다.      


 컬러풀한 얼굴이 아닌 연두 빛에 갇히고, 총천연색들 꽃들의 노래에 컬러풀한 역사가 벗겨지는, 꿈속이 아닌 고백하지 않아도 마음 통하는 그런 내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정식: 마중가는 길 
본관 입구
사진제공  고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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