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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pr 27. 2024

출렁과 울렁 사이에 멀미

-원주 소금산

  여사모(여행을 사랑하는 모임)와 함께 굿모닝여행사를 통해 원주 그랜드밸리로 봄나들이 갑니다. 예측할 수 없는 도로 불안하여 용인에서 새벽 첫차를 탔습니다. 참 여유롭게 1시간이나 빨리 도착하여 잠실역사 의자에 앉아 20여 년 전 기억의 한편을 누르니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뽑혀 나오는 추억 하나.   

  

  2001년 이상문학 수상작으로‘제2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돼 있는 신경숙 작가의『부석사』를 읽고 부석사가 궁금하였습니다. 소설에는 부석사가 나오지 않고 가는 길만 나와 더 궁금증을 유발하였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생애 처음으로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여행사를 통해 혼자서 떠난 부석사행. 낮 가림 심한 내가 무슨 용기가 그리 있어 여행사에 동참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도 새벽 서울역사 앞이 오늘 같았습니다.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준임이 버스 맨 뒷자리 찜해 향숙, 정애, 영희 다섯은 나란히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앞 좌석 자꾸 힐끔거리는 눈초리를 걸러내며, 가이드의 설명은 마스크 안으로 스며들어 잘 들리지 않아 맨 앞자리를 노려보며, 고요와 소란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얼기설기 엮어내는 수런거림이 재미있습니다. 서로 나눠먹는 간식 뽀스락 거리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여행은 마음의 풍경을 향해 가는 것이라 합니다. 삼삼오오 짝지어가 속닥거리며 가는 부석사행에 나는 차장 밖 풍경과 마음의 풍경만 읽으며 갔었지요. 낯선 여행객 옆자리 앉아 참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오늘과는 사뭇 다른 시간이었지요.       


사진제공: 김준임


   소금산 출렁다리는 높이 100m, 길이 200m로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다리였다지요. 몸을 부풀린 바람이 다녀갑니다. 출렁다리 한가운데 바람의 혀로 우리의 얼굴을 핥고 가는 잠시 설렘 스쳐갑니다. 순한 햇볕이 손가락 틈 사이를 비껴갑니다. 출렁다리 한 끝에 앉아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몸에 선을 긋고 지나가며 춤추는 팔들 바라봅니다. 데크 산책길, 잔도길 연두에 접힌 소금산 여린 나뭇잎들 그림자 사이로 우리는 송홧가루 색을 얻어 봄을 그려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찍는 사진은 액자로 걸리겠지요. 우리들만의 마음속에.       


 부석사·1     

   좌판에 깔린 봄나물 가닥가닥 빗금 치는 마구령을 넘는 한낮. 사과 꽃 휘몰아치는 9품 만다라 돌계단 올라 무량수전에 들어선다.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지상의 극락은 뜬 돌처럼 무거운지 선묘 낭자 석룡으로 누워있는 봉황산 기슭 바람이 차다. 골 깊게 파인 선묘의 아픈 사랑 석등아래 묻어 두고 나 뜬 돌로 떠 있다. 조사당 앞 골담초 철조망 뚫고 나온다. 극락정초는 마음 안에 있다고 사그락 사그락 산죽 소리로 수런거린다. 저뭇한 해거름 흙길 내려오는 사과꽃불 환하다. 탱자나무 푸른 가시에 하나둘씩 내리 꽂히는 별빛 마을로 가는 길 아직 멀다.      *의상대사의 법성귀                         

                                                                                                        시집『꿈꾸는 불』에서    


    스카이타워 아슬아슬 계단 내려와 높이 110미터 길이 404미터의 울렁 다리. 다리 이름 그대로 속이 울렁거립니다. 우리네 인생 또한 출렁출렁, 울렁울렁 그런 세월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그렇게 짐작해 봅니다. 나는 일상이 울렁거리는 삶을 살아왔지만요.       


   울렁 다리 앞 한글 자음 모양을 딴 상징 조형물 배경으로 인생 샷을 남깁니다. 앞으로 20년 후 그때도 이 자리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20년 전의 오늘이 함께 있는 것처럼 그때도 그러길 바라면서 산길 내려오니 간현천은 조심히 잘 가라며 맑게 웃어줍니다.      

 

사진제공: 김준임


   무제한 횡성 한우 점심 한상이 푸짐합니다. 다섯의 입이 모여 풍성하고 다섯의 마음이 움직여 풍요롭고 다섯의 사랑이 뭉쳐 충만합니다.     


  안동에서 점심 헛제사 밥도 안동 찜닭도 함께할 짝이 없어 마음으로 먹고, 안동고등어 소박한 차림 혼자 먹는 그날의 잘 구워진 고등어자반 가시는 덤불 속 나뭇가지처럼 내 마음 황망하였지요.    

   

  치악산 품 안의 구룡사 황장목 숲길 걷습니다. ‘황장목’은 임금의 관으로 쓰던 질이 좋은 소나무로 몸통줄기 한가운데 심에 가까운 부위가 단단하고 빛깔이 누런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금강송’은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며 ≪조선왕조실록≫에는 황장목으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자연의 소리들에 취에 걷는 산책길. 「복잡한 머리를 용서하면 나의 좌표는 간결해질 수 있다」고 말한 하미정 시인 표현처럼 계곡에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각자의 방식대로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안동 하회마을 담장 기웃거리고 골목 어슬렁거리다 솔밭 쉼터에 앉아 부용대를 바라보며 한참을 혼자는 참 외롭고 심심한 여행이구나! 그때는 그랬답니다.      


한올 카페
사진:  김준임


보호수 200년된 은행나무
구룡사

 

영희 엉덩이는?


   원주 소금산 휘돌아 횡성 한우를 만나고 치악산 황장목 숲길에 우정의 다섯의 발자국을 새기면서 20여 년 전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본 하루입니다.  

   

  영희는 어쩔 수 없는 주부인가 봅니다. 서울로 출발할 버스를 기다리며 어깨너머로 머윗잎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엉덩이 뽐내며 쑥 뜯는 손톱 끝에 쑥 향 물들이고 있습니다.


 “머윗잎과 쑥으로 뭐 할 건데?”

 “부침개 지져서 더덕막걸리로 봄을 마셔 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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