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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May 04. 2024

텃밭에 심은 그리움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5월은 포근하거나 뜨겁고, 서늘하거나 미지근하고, 쌉쌀하거나 들쩍지근한 계절인 듯하다. 꽃 진 자리 푸름 가득한 봄인 듯 여름인 것 같고 내 마음 또한 그렇다.    

 

 시집 불씨와 식빵과 여행기만 무료 분양하던 내가 주말농장 텃밭 한 두렁 분양받아 임대료 지불하고 야채 모종하러 백암 텃밭 가는 길.    

  

 신갈 IC에서 환승 백암터미널 종점까지 60여 개의 정류장을 거치며 가는 10번 버스길은 휘어져 있고, 풍경은 낯설고 차창 밖은 지루한 숫자들만 반복되고 있다. 갈라지는 이팝꽃 나뭇가지들과 가로수 옆 논들은 모내기 준비로 고여 있는 물 그렁그렁. 늦봄일까 초여름일까 구분되지 않는 계절을 달리고 있다. 

     

 하두자 시인과 텃밭 주인장 이상국 부부와 백암 오일장 구경한다. 좌판에 깔린 두릅나물 움켜쥐며 두릅나물 같은 말투를 배우고, 호떡 한 잎 베어 물며 달콤한 언어를 낳고 싶은 이곳에서의 우리는 여행자.   


 시장 길바닥에 가판대에 열 지어 있는 각종 모종들 서로를 견디며 온 시간만큼 어느 텃밭을 향해 가야 할 곳 기다리듯, 일생을 한쪽 구멍난 상처 견디며 건너온 내 삶이 모종을 닮은 듯 아픔 한 끝 바질 향에 문질러 본다.  


 

  점심은 밭에서 갓 따온 상추와 미나리 쌈으로 부부의 정성 융숭히 대접받고 장터에서 구입한 고추, 가지, 옥수수 어린순들을 밭고랑에 심는다.      


  소녀 적 한창 뛰어놀 시기에 엄마는 붉은 고추를 따야 한다면서 따야 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나를 끌고 밭으로 가던 지난 시간들 소록이 밭고랑에 얹혀 명치끝이 아리다. 엄마의 수고로움에 풍성하였던 식탁.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면서 그때는 왜 그리 밭이라는 단어가 싫었을까.  

    

  결혼 후 가끔씩 다녀오는 친정집 아빠의 꽃밭은 야금야금 엄마의 텃밭으로 변해 영산홍 붉은 꽃 대신 보라색 가지들 주렁주렁. 노란 수선화 꽃빛보다 하얀 부추와 대파 꽃이 화려함을 장식하고 어제의 장미꽃 향은 오늘의 모시 잎 송편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사라진 고향집. 지금은 고창읍성 주차장으로 양보하고 꽃밭도 텃밭도 내 안에 숨 쉬다, 등 구부리고 모종들 심다가 엄마의 나이보다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그리움의 그리움이 밭고랑 마른 흙으로 부서진다.     

 

 밭에서 갓 수확한 미나리 한 봉지에 오물조물 담긴 선물꾸러미 부부의 정 가득 들고 작별하며, 우리가 심은 어린싹들 잘 자라면서 텃밭은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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