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문재 일기 - 9월 3일
아침 방파제 산책 나간다. 벽화 마을 주민의 시어들이 하얀 담 벽에 담쟁이넝쿨처럼 딱 달라붙어 가는 길을 붙잡는다. 이 벽을 꾸미기까지 박병두 촌장의 노고를 하얀 담장들이 말해주고 있다.
난초 실 바로 옆 토문재 북카페로 출근한다. 에어컨 대신 자연의 바람이 좋다. 방충망 사이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을 알리는 듯 신선하다. 물론 한낮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태양열에 덥기는 하지만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파랑의 바다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바람에 살랑대는 처마 및 풍경소리는 점심을 준비하는 압력밥솥 추 흔들 듯 요란하다.
앞마당 녹색의 잔디와 눈 맞추고 있는 배롱나무 홍자색 꽃망울들이 자꾸 유혹한다. 함께 놀자고 그늘이 되어주겠다고 그러나 함께 놀기에는 햇볕이 따갑다.
나에게 북유럽 마지막 장이 될 뭉크미술관 정리한다. 한가람 미술관의 뭉크작품을 관람하고 쓰다 보니 늦어졌다. 뭉크미술관에서 다 보고 오지 못한 작품들과 한가람 미술관에만 전시된 작품들의 색다름이 있다.
잘 익은 무화과 열매를 7개를 땄다. 입주 선생님들과 나눔에 뿌듯하다. 촌장님이 심고 자연이 열매 맺어준 무화과 달콤하다.
바람이 너무 좋아 툇마루에 앉아 바다를 읽는다. 윤슬로 가득한 바다를 읽다가 맑아진 눈으로 조용미 시인의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를 읽는다. 툇마루는 방이나 마루 바깥에 붙여 꾸민 좁은 마루로 고주와 평주 사이 툇간에 놓인 마루를 말하는데 한옥이 주는 여유와 그리움이다.
어릴 적 고창 고향집 툇마루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먼 길 가신 엄마는 툇마루에 누워 어린 나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시면서 1개 뽑으면 1원이니까 많이 뽑아야 용돈이 많아지겠지. 조금 자라서는 1개에 10원으로 타협하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참 젊은 나이에 엄마는 흰머리가 많았던 것 같다. 딸이라서 할 수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나는 그렇게 흰머리 뽑아달라고 부탁할 딸이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염색을 한다. 그때는 왜 그리 흰머리 뽑는 게 싫었을까 한창 뛰어놀고 싶은 나이에 엄마의 흰머리는 짜증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툇마루는 고향이고 그리움과 애틋함이다. 툇마루에 앉아 추억을 소환해 보는 게 살면서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주 툇마루에 앉아 바다를 읽고 바람이 쓰고 가는 계절을 느끼며 지내야겠다.
송호 해수욕장까지 걷는다. 그때 그 길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는 산책길 덥다. 붉은 칸나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편의점에서 생수와 두부를 사서 돌아오는 길 노점의 고구마와 무화과 판매하는 사장님 가게에 들러 고구마를 산다. 그런데 3년 전의 나를 알아보다니 고맙고 반가웠다. “그때 그 작가님이시네요. 얼굴이 좋아 보여요. 살도 좀 찐것 같고요." “네, 어제 왔어요. 저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풋고추 한 줌을 준다. 풋고추 같은 싱싱함이 전해져 찐한 울림이 왔다. 시골의 인심을 주머니에 담는다. 푸짐한 오늘이다.
노을이 아름다운 송종리 마을 앞바다 지는 노을 따라 방파제로 달려간다.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바다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