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 카페로 나온다. 겨우 열 발자국이면 되는 옆 난초 실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동네 한 바퀴 돌아서 온다. 푸른 바다가 보이고 갓길 무더기로 하얀 나팔꽃이 합창하는, 이슬 머금은 채 수줍게 웃고 있는 빨간 고추들 수확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눈 흘기는, 가을이 오고 있으니 어서 붉은색을 입혀달라고 손짓하는 감나무 주렁주렁한 감들에게 눈 맞추며 온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은 이미 바다 위에 떠있다. 이 풍경을 두고 노트북 모니터와 눈싸움할 수 없지 하는 생각에 해찰을 하다가 마트 가기 위해 송종마을회관 버스정류장에서 군내버스 탄다. 10분 안에 도착하는 산정 마을 가는 버스 안에서 잠깐, 기사님과의 인사가 무안하다.
버스 안 승객들이 많다. 몇 자리 없어 등 굽은 어르신들 타면 앉으라고 그냥 서있는데 기사님이 먼저 인사를 한다.
“장 보러 가시나요?”
“네! 안녕하세요.”
“얼굴에 작가님이라고 쓰여 있어요,”
“제가요? 감사합니다.”
달라 보이는 건 없다. 다만 자주 이용하는 마을 승객이 아니라서, 토문재 입주 작가들이 마트에 다닐 때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짐작으로 하는 말 같다.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기사의 인사에 고마움과 함께 그냥 부끄러웠다. 시집을 발간한 지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제대로 된 시 한 편 못쓰고 있는 내가 시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날마다 쉬는 시간, 날마다 노는 시간, 날마다 휴식시간, 날마다 재미없는 시간, 혼자 놀기 좋은 시간. 며칠 씨름하다 마지막 ‘나에게 북유럽’을 마무리하였다. 뭉크의 작품이라 쓰는 게 조심스럽고 쉽지가 않아 망설이다 그냥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 찍어온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30분마다 열리는 <절규>의 세 가지 버전을 다 감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의 넋두리로 마무리한다.
생각을 집어넣는다는 것. 마음을 꺼내본다는 것. 복잡한 것 집어던지고 땡볕에 나간다. 사전에서 어슬렁거리다 뜻은 ‘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 다니다.’로 나온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걷기에는 위험한 찻길이다. 인도길이 없고 보길도와 땅 끝을 오가는 차들이 싱싱 무섭게 달린다.
천천히 걷다 도로변 옆 창고 앞에서 참깨를 털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오전 마트 갈 때 송종 버스 정류장 앞에서 뵌 분이다. 등 굽은 몸으로 유모차 끌고 마을 노인정 가실 때 인사하였는데 구부정한 어깨가 쉴 틈을 안 준다.
도로변 갓길까지 뻗은 호박 줄기와 여린 호박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참 예쁘다. 이곳에 온 후로 농사짓는 분의 노고와 자연이 키운 농작물을 볼 때마다 매번 무릎을 낮추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둥그렇고 예쁜 호박 한 덩어리 그냥 주신다. 가격을 지불하겠다고 하여도 극구 사양하여 마음이 무겁다. 어렵게 농사지은걸 그냥 받아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어르신의 깊은 마음을 저버릴 수는 없고, 더위와 씨름하는 모습에 감사의 마음으로 시원하게 드시라 카페에서 시원한 딸기음료와 냉커피를 사서 들고 다시 갔다.
이 더위에 왜 다시 왔냐고 하면서 표준어국어사전에 없는 말로 표현하자면 질색 팔색 이시다. 나는 감사의 마음 서랍이 가득 찼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 것보다 훨씬 큰 또 다른 호박 한 덩이를 덥석 안겨준다. 난감했다.
수고로움이 가득한 호박과 손쉽게 뽑아낸 커피의 무게와 질량의 간극에서 순간 멈칫했다. 비교할 수 없는 비교되지 않는 그분의 고마움을 내 마음 서랍 안 깊숙이 넣어둔다.